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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52) : 라스코 동굴 벽화(6)

Que sais 2021. 2. 14.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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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학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대부분의 벽화가 그려진 동굴사람이 전혀 살던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동굴의 퇴적층을 발굴하면 그곳에서 살았던 인류가 먹고 남긴 찌꺼기인 동물의 뼈나 그들이 사용한 석기를 포함한 지층이 발견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동굴벽화가 그려진 곳에서는 이런 주거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남부 프랑스 랑구독 루실론 지역에 있는 유명한 토타벨에서는 7010만 년 전에 이르는 장기간 동안 수많은 고인류들이 살았다. 그러므로 긴 세월에 걸쳐 성격이 다른 수십 개의 주거층이 발견된다. 이는 수십만 년 동안 고인류들이 거주할만큼 생활여건이 좋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라스코 동굴의 경우 단 하나의 주거층이 아닌 문화층밖에 발견되지 않았다.

라스코의 문화층에 남아 있는 것은 벽화를 그리는 데 필요한 등잔이나 물감 그리고 벽화를 새기는 데 이용된 석기 등이다. 동물 뼈도 발견되었지만 많은 양이 아니어서 그림을 그리던 크로마뇽인들이 먹었던 흔적으로 추정한다. 더구나 황소의 방에서는 투창 16개와 바늘 1를 포함해서 모두 28개의 골각기가 발견되었는데 이것도 주거 유적이 아님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크로마뇽인들은 라스코 동굴에 그림을 그릴 목적으로 들어온 것이지 생활했던 것은 아니라는 추정이다. 이런 현상은 특별한 지역을 제외하고 동굴벽화들이 많이 발견되는 도르도튜 지역의 동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동굴벽화가 그려진 장소는 말하자면 일종의 성역이었으며 동굴벽화는 선사시대 사람들에게 일종의 갤러리이자 전설 또는 믿음을 그린 것으로 추정한다.

현대인들도 들어가기가 두렵고 설사 들어갔더라도 나오기가 위험하고 힘든 은밀한 폐쇄된 공간에서 등잔불 등만 갖고 거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이유를 고고학자 혹스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벽화를 그린 화가들은 우선 사자와 거대한 곰의 서식처로서 화랑으로 쓰일 동굴을 찾아야 했다. 고작 횃불이나 동물과 고래 기름 등불을 밝혀놓고 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다가 불이 꺼졌을 때 부싯돌로도 불을 켤 수 없는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이들이 익숙한 외부 세계와 동굴 입구에 있는 가족들의 생활 공간과 멀리 떨어진 땅속 깊숙한 곳에 동물의 형상을 재현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강렬했는지 느낄 수 있다.’

 

이 말은 크로마뇽인들의 벽화가 예술을 위한 예술로 그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프랑스의 르루아 구랑 교수는 매우 특이한 시각으로 크로마뇽인들의 벽화를 해석했다.

 

구석기 시대의 예술35000년 전오리냐크 문화에서 시작되어 12000년 전마들렌 문화 말기에 끝나는데 그동안의 기술적 진보는 놀라울 정도. 그러나 2만 년 동안 예술적 테마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동굴 벽화의 주제는 어느 시대든 말과 소로 정해져 있었다. 이것은 크로마뇽인들이 고집스럽게 전통에 억매어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빙하 시대의 도래와 함께 기후의 변화에 따라 수렵의 주요 대상물이 말이나 소에서 순록으로 변했지만 그림의 주제까지 변화시키지는 않았다.’

 

크로마뇽인들이 전통을 중요시했다는 루루아 구랑 교수의 지적이 놀랍기만 하다.

또 하나의 가설은 그림의 주제와 수렵의 대상물은 무관하다는 것이다.

 

크로마뇽인이 각지에서 성공적인 정착에 성공했더라도 인구가 매우 적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까지만 해도 힘 있는 쪽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을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떠 올랐다. 동물에게 피해를 보더라도 동물들이 있어야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한마디로 동물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동물을 인간보다 더 중요한 존재로 인식하면서 인간들은 동물의 힘이 자신들에게 전달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취한 행동과 생각은 소박하다. 자신들이 원하는 동물들을 동굴 등에 그림으로써 자신들에게 동물의 힘이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동굴벽화는 누가 먼저>

인류학자들이 동굴 벽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동굴벽화야말로 현생인류의 최고의 자존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굴 벽화를 그렸다는 자체가 문화의 최고 수준에 도달하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크로마뇽인호모사피엔스라 명명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근래 고인류 벽화부분에서 두 가지의 강타가 터져 나왔다.

우선 유럽인들의 자존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동굴벽화다른 대륙에서도 발견되는데 그 제작 년대도 유럽인들을 상회한다는 것이다. 호주 그리피스대 등 국제 과학자 팀이 보르네오섬 동쪽 칼리만탄 지역의 동굴에서 발견된 벽화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손바닥을 벽에 대고 입으로 염료를 뿜어 손의 윤곽을 새기손바닥 스텐실이 무려 5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다. 또한 함께 발견된 소로 추정되는 동물 그림은 최고 4만 년 전에 그려졌다고 알려졌다. 이는 기존에 알려진 가장 오래된 유럽에서 발견된 벽화보다 최소한 5000년 전에서 12,000년이나 빠른 것이다.

그동안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크로마뇽인들이 그린 쇼베, 라스코 등 동굴벽화는 대체로 1만년에서 3만 년 전의 그림이다. 스페인 엘 카스티요 동굴에서 발견된 벽화는 35000에서 37000년 전 그림이지만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벽화들은 이들을 훨씬 뛰어넘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 그림들이 단순간에만 그려진 것이 아니라 계속 전수되었다는 것이다. 보르네오 섬의 경우 칼리만탄에서 약 25km 떨어진 리앙방텡 동굴에서는 보라색 염료를 이용해 손바닥과 나무 등이 그려졌는데, 이곳은 2만 년 전에 그려진 것이었다. 52천 년 전의 동굴벽화에 비해 무려 3만 년 후의 일로 그동안 계속하여 동굴벽화가 그려졌다는 것이다. 한 동굴에서 2만 년 이상의 간격을 두고 서로 다른 인류작품 활동을 한 경우도 있었다.

이를 학자들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고인류가 동굴벽화라는 예술이라는 개념을 계속 견지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형우 전북대 교수2만년에서 3만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동굴 벽화를 그렸다는 것은 한마디로 이곳을 계속하여 그들이 점유하며 작품을 남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벽화를 그리는 동굴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