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2) : 고대 이집트 들여다보기(2)

Que sais 2021. 2. 2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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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상의 많은 문명 중에서 특이한 이집트 문명을 탄생시킨 나일강의 이집트는 고대 이집트어로 검다는 뜻을 가진 'kem'의 여성형 명사 케메트(Kemet)이며 이후에 등장한 이집트의 콥트어로는 케머(Ⲭⲏⲙⲓ /kʰeːmə)라 부른다. 이는 이집트에서 나일강이 범람하게 되면 상류에서 기름진 토양이 쓸려내려 왔는데 이 토양의 색이 검은색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집트를 애급(埃及)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로마에서 이집트를 부르던 호칭인 아이깁투스한자 음차 표기

세계 4대 문명중 하나인 고대 이집트 문명이 나일강 연변에서 탄생한 것은 나일강이 매년 정기적으로 범람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제일 긴 강으로 알려진 나일 강은 에티오피아에서 발원하는 청나일(Blue Nile)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에서 시작하는 백나일(White Nile)카르툼(Cartum)에서 합류하여 본류를 이룬다. 나일 강의 본류는 대사막을 달려서 하 이집트의 부챗살과 같은 삼각주 지역을 거쳐 지중해로 빠져나가는데 총길이가 6,400킬로미터에 달한다.

이집트는 상하로 나뉘는데 나일 강의 물줄기를 따라 상 이집트는 제1폭포로부터 멤피스에 이르는 구역으로 넓고 급격한 형태의 폭포가 있는 건조지대에 위치한다. 상 이집트에서 남쪽으로 누비아 지방에 이르는 구역을 다시 북부의 와와트와 남부의 쿠시 즉 현재의 수단으로 나누기도 한다. 반면에 하 이집트는 멤피스로부터 지중해에 이르는 구역으로 비옥한 델타지역으로 지중해성 기후.

특히 이집트는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으므로 오랜 동안 외국과 전혀 교류가 없었다. 외국과 접촉하는 창구로 지중해가 있을 뿐인데 이곳을 통해서도 크레타섬, 가나안 지방 그리고 멀리 떨어진 메소포타미아 등과 접촉을 유지할 정도다. 이것은 이집트가 외부 세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집트의 지역적 특수성에서 남다른 것은 현재는 아스완 댐의 건설로 수위가 조절되지만, 전통적으로 매년 7월부터 9월까지 나일 강이 범람했다는 점이다. 나일강이 매년 범람하는 이유는 청나일강으로 부르는 나일강 상류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에 5월경부터 내리는 계절성 폭우 때문이다.

매년 정확하게 나일강이 범람하면서 영양소가 풍부한 부엽토, 부식토를 하류 이집트로 옮겨준 후 물이 빠진다. 그래서 비옥한 땅으로 변모되었는데, 씨앗을 뿌리기만 하면 식물들이 잘 자랐기 때문에 특별히 농사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이집트의 역사를 두고 나일 강 범람의 역사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해마다 범람하는 나일강이 처음부터 사람들이 편히 살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일강의 범람은 예측이 가능하므로 사람의 거주지는 범람이 되도 홍수피해가 없는 안전한 곳에 건설하고 정기적인 홍수가 지난 후 비옥해진 땅에 농사를 짓는 방법을 배웠다. 한마디로 이집트인들이 범람에 대처하는 토목과 관개 기술을 병행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의 농경사회에서의 문제는 연작할 때 지력이 저하되어 농작물 소출이 떨어지는데 나일강변은 매년 홍수가 지력을 보충해주었다. 한마디로 나일강 연변은 농경사회를 유지하는데 천혜의 지역이었다.

또한 자연 현상에 기초한 그들만의 신화를 창조해 나가면서 후세 사람들이 고대 이집트 문명이라고 부르는 위대한 문명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이집트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연대표가 정확하느냐 즉 믿을만하냐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이집트의 연대는 대체로 믿을만하다는 설명이다. 이 문제는 이집트인들이 시간을 어떻게 계산했느냐와 이집트 각 왕조의 존속 연대를 우리가 사용하는 서력 연대와 어떻게 접목시키느냐이다.

이집트는 과거 달 모양의 변화를 기초로 1년을 계산하다가 추후 1개월을 30일로 계산하고 12개월에 나머지 5일을 합하여 1년으로 계산했다. 365이다.

이집트 력719일부터 시작되는데 이 날은 멤피스에서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에 시리우스 별이 동북 지평선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며 또한 나일강의 범람이 개시되는 날이다.

현재의 태양력은 365일과 약 6시간이므로 시리우스 력은 태양력에 비하여 4년에 1이 늦어진다. 이 비율로 계산하면 태양력의 1460년은 시리우스력의 1459년에 해당한다. 이를 활용하면 시리우스력으로 확인된 역사적 사실이 서력 몇 년인지를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이집트의 왕명표및 기타 자료에 나오는 연대 등을 포함하여 이집트 고대사의 거의 전체의 정확한 연대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신관 마네토가 분류한 31왕조 방식에 의한다. 그는 상하 이집트를 통일한 메네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나르메르부터 이집트 출신의 마지막 파라오 넥타네보 2의 죽음 즉 기원전 343년까지를 기록했다. 그러므로 프톨레마이오스의 32왕조는 거론되지 않았다.

마네토가 기술한 이집트 역사는 그가 태어나기 2700년 전부터의 이야기이므로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많이 있지만 그의 분류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의 통일 왕조를 크게 세 시기로 나누었다.

처음 통일왕국이 등장할 때부터 왕국이 혼란에 빠지는 기원전 2200년경까지의 고왕국 시대, 혼란이 수습된 이후부터 힉소스인에 의해 정복당할 때까지의 중왕국 시대, 그리고 힉소스로부터 독립한 후 아시리아에 정복당할 때까지의 신왕국 시대다.

 

<이집트 통일>

기원전 1만 년 경 기온이 급격히 올라 빙하기 때까지 사막이었던 사하라 일대는 풀과 키 작은 관목으로 뒤덮히기 시작했고,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기후가 되면서 이들 지역에 사람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하라 사바나는 또 다시 기온 변화로 기원전 6000년에서 5000년 전에 다시 사막화가 진행되었다그러므로 이들이 기후 변화를 따라 이동하여 정착한 곳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지역으로 두 곳 모두 4대 문명의 발상지.

놀라운 것은 2016,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450km 거리의 나일강 유역 소하그 지방에서 기원전 5316년경 무려 7300년 전으로 추정되는 고대도시와 고분이 발견되었다고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여하튼 기원전 4400년경의 초기 문명 유물들이 나일계곡에서 발견되는데 놀라운 것은 대규모 원정을 암시하는 정복자의 기념물, 귀족의 것으로 보이는 화장용 파레트, 무기 등이 등장한다. 이 시기를 '나카다 문화(Naqada culture)' 라고 부르며 후대에 이집트의 간판스타인 이집트 상형문자의 전신으로 보이는 원시적인 기호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대체로 이 시기를 기원전 3500년으로 추산한다.

학자들은 6,000년전 정도  대체로 기원전 36세기부터 상이집트, 하이집트로 나뉜 국가가 등장했다고 추정한다. 6,000년 전이라면 북유럽 끝자락에 매머드가 남아있을 때인데 이때 이미 이집트에서 파라오가 등장하였다. 

이집트는 통일 직전까지 크게 상, 하 이집트의 두 왕국이 존재했으며 왕국 안에는 30여 개의 도시국가들이 자치를 누리며 살았는데 이를 나르메르가 통일하여 1왕조를 세웠다. 기원전 3200년경의 일이다.

 

나일강의 혜택을 입어 생활이 안정되고 인구가 증가하자 기원전 3500년경 유력한 부족을 중심으로 국가 형태의 연합체가 만들어진다. 당연히 풍족해진 수확물을 지키기 위해 외적의 침략을 막는 군대가 구성되고 왕과 같은 특권층도 생겨났다. 이들은 기후와 관습 등이 유사한 북부의 하 이집트와 상 이집트로 나뉘는데, 남부지역에서 걸출한 왕자, 메네스가 태어나 상 이집트 전역을 자신의 지배하에 통합시켰다. 그리고 북부지방의 통치자들을 굴복시켜 마침내 통일왕국을 세웠다. 메네스가 이집트를 최초로 통일한 때는 기원전 3200년경으로 추정한다.

일반적으로 메네스스콜피온과 나르메르가 혼합된 호루스 왕, 또는 전설적인 인물 나르메르로 간주한다. 나르메르는 통일 제1왕조와 제2왕조의 왕들의 묘지 안에 최초로 기념묘를 세운 통치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리스어로 히에라콘폴리스로 불리는 네켄에서 발견된 유명한 팔레트에는 그가 상하 이집트를 통합했다는 중요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팔레트는 눈 화장을 위한 화장품을 만드는 데 쓰인 석판으로, 이집트인들은 강한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눈 화장을 했다.

 

메네스(나르메르) 팔레트

팔레트 뒷면에는 상 이집트의 왕관을 쓴 메네스 또는 나르메르가 철퇴로 적의 머리를 내리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반면에 앞면에는 나르메르가 하 이집트의 통치자임을 뜻하는 붉은 색 왕관을 쓰고 있다. 그 밑에는 S자 모양으로 서로 목을 꼬고 있는 암사자 두 마리가 있는데, 이는 상하 이집트가 통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르메르가 메네스이든 아니든 메네스는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의 국경이자 전략적 요충지인 델타의 하단에 수도를 정하고 이름을 멤피스라고 했다. 멤피스는 백색의 벽이란 뜻이며 그곳은 죽음과 소생의 비밀을 관장하는 오시리스 신이 묻힌 곳이다.

메네스는 상 이집트의 백색 왕관과 하 이집트의 붉은색 왕관을 합친 이중 왕관을 사용했으며 왕을 파라오라고 불렸다. 메네스의 아들이 멤피스에 궁전을 세우면서 위대한 거처인 페르-라고 명명했는데 파라오는 바로 페르-에서 파생되었다고 알려진다.

메네스는 이집트 전역에 제방을 세우고 운하를 팠다고 알려진다. 메네스가 사망한 후 첫 두 왕조는 계속 그의 유지를 이어나갔고, 2왕조 말엽 이집트는 완전히 체계가 잡힌 부유한 통일왕국으로 발돋움한다.

 

그런데 또 다른 자료에는 왕조 창시기에 나르메르와 아하이라는 두 왕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메네스, 나르메르, 아하이를 동일 인물로 추정하지만 확실치 않다. 이들을 대체로 네메스로 통일하여 부르기도 하는데 학자들은 제1왕조를 창시한 메네스가 매우 걸출한 인물이라는데 동의한다. 메네스가 타니스 출신이므로 이 시대를 타니스 시대라고도 한다.

통일 이후 약 천 년 간을 고왕국 시대라고 부르는데 피라미드가 등장하지 않는 전기 500년의 제1, 2왕조를 초기왕조 즉 트리니트 왕국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1왕조의 마지막 왕인 제트(Djet)구리 확보를 위해 시나이반도로 원정을 떠나는 등 왕국의 체계를 갖추며 이집트의 영향력은 2폭포까지 확대되었다. 이 당시 수도는 아비도스, 멤피스. 그의 묘는 오랜 세기에 걸쳐 약탈당했지만 정교한 세공으로 만든 황금 장식품이 발견되었다. 이집트가 홍해 방면으로 진출한 것은 와디 파라오 때인데 그는 사왕(蛇王)으로 불리며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뛰어난 조각으로 간주되는 기념비의 주인공이다.

1왕조에서 제2왕조로 넘어간 경위는 명백하지 않지만 여하튼 제2왕조의 파라오들 위세가 떨어져 상하이집트의 균형이 허물어졌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이는 종래의 주신인 호루스 신으로부터 개를 심벌로 하는 신으로 바뀌어졌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