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5) : 고대 이집트 들여다보기(5)

Que sais 2021. 2. 2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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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거부한 이집트인>

학자들은 선사시대 이집트인들을 지중해 민족으로 추정한다. 길쭉한 두상에 달걀형의 섬세한 얼굴을 가진 호리호리한 민족이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종족적 특징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입된 민족과 혼합되면서 변해갔다고 생각된다. 넓적한 두상에 강한 뼈, 굵은 손목과 발목이라는 신체적 특징을 갖게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집트인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살았다.

이집트는 동시대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과일, 잠두콩, 제비콩, 아마 등이 풍부했고 밀, 기장 등의 곡물은 인근지역으로 수출할 수 있을 만큼 부유했다. 그런데다 이집트인들은 금동 등 금속을 다루는데 매우 능하여 일찍이 고왕국 시대부터 반지, 팔찌, 귀걸이, 목걸이와 같은 금속장신구 착용을 즐겼다. 이집트인들은 무역에도 능했다. 그들은 누비아, 아라비아, 페니키아인들과 거래하여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품을 조달했다. 누비아를 상대로 말과 양파, 무기와 보석, 목재와 가죽, 금과 상아를 바꾸었고, 질 좋은 향신료와 목재는 각각 아라비아와 페니키아에서 수입했다. 그리고 제18왕조부터는 더욱 적극적으로 지중해 각국과 거래했다.

이집트의 농부는 고대의 다른 전제국가와 달리 노예 신분이 아니라 자유민이었다. 그래서 파라오나 귀족, 신전의 신관을 위해서 땅을 경작하기는 했지만 법의 기준을 벗어나 무조건 복종을 받는다거나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일이 없었다. 또한, 수확한 작물 대부분을 지주에게 바쳐야하긴 했지만 그 나머지는 자신의 몫으로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농민들은 사후에 가지고 갈 인형우샵티 혹은 샤웁티는 물론 일상용품 등을 물물 교환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집트에서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이 점령하기 전까지 화폐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집트가 잘 돌아갔다는 것은 화폐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생활의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나일강의 혜택으로 동시대의 다른 문명인들보다 풍족하고 건강한 생활을 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혜의 입지 조건으로 인해 외적의 침투가 거의 없었다는 것도 한 이유다.

이런 이집트에 대해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 역사에서 제2권을 모두 이집트에 대해 할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은 이집트인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취하고 있는 원칙은 각각의 사람이 말하는 바를 들은 그대로 서술하는 것이다.’

 

물론, 현대 학자들은 헤로도토스가 이집트에 대해 적은 상당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한다. 피라미드에 관한 서술도 상당히 오류가 있을 뿐 아니라 연대를 기록하는데도 상당한 오차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로도토스의 이집트 서술은 매우 생동감이 있다.

 

거의 모든 점에서 이집트인들은 다른 민족과 정반대되는 풍속과 습관을 갖고 있다. 예컨대 여자는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는 데 반해 남자는 집에서 옷감을 짠다. (중략) 짐을 운반할 때도 남자는 머리에 이고 여자는 어깨에 진다. 소변을 볼 때도 여자는 서서 보고 남자는 쭈그리고 앉아서 본다. (중략) 사제들은 다른 나라에서는 머리를 길게 기르지만 이집트에서는 삭발한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는 상을 당하면 죽은 사람의 가까운 친척들이 머리카락을 자르는데, 이집트인들은 그때까지 짧게 깎고 있던 두발과 수염이 길게 자라도록 내버려둔다. 또한, 다른 민족은 가축과 따로 생활하는데 이집트인은 가축과 함께 산다.’

 

학자들은 고대의 전제국가 중에서 이집트처럼 남녀의 차별이 많지 않았던 경우도 드물다고 말한다. 여자들은 자신의 재산과 하인을 소유할 수 있었으며 자신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었다. 친형제는 물론 남편도 아내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었다.

 

이집트인 농사짓는 장면

고대 이집트에선 여자전문 직업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악사, 미용사, 재단사 등은 여자들이 주로 하는 일로 인식되었는데, 많은 하인들과 집안일을 총 관리 감독하는 감독자도 여자들이 담당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자들이 궁전이나 사원의 고위직으로 임명되기도 했다는 것과 남편이 고위관리일 경우 그의 아내는 남편을 대신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결혼은 모든 여자들에게 의무였다. 그러므로 미혼여성이나 미망인은 가족 구성원 중에서 가장 홀대받는 위치였다. 결혼은 까다로운 의식이나 절차 없이 쌍방 간의 간단한 계약으로 이루어졌는데, 놀라운 것은 결혼계약 결혼 전에 얼마든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는 점과 여성이 이혼에 대비해 결혼 당시 자신의 재산목록을 작성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집트에서 여자와 남자의 대등한 권리는 수많은 부부 조각상으로도 알 수 있다. 아내는 다정한 손길로 남편의 등을 감싸고 있는데 이는 사랑의 표현이자 남편을 보호하는 몸짓이기도 했다. 부부는 가능한 한 많은 아이를 낳는 것을 이상적으로 여겼으며 양자도 허용되었으나 친자식을 갖는 것이 바람직한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이혼부정이나 불임같이 비난받을 만한 근거가 있어야 허용되었다.

고위관리의 부인들은 가사를 남자 하인들에게 맡겼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은 집안일을 돕기 위해 남자와 함께 들판에서 일을 하거나 부호의 집에서 일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장례식곡을 해주는 전문직업인이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여자였다.

 

<이집트 의상>

이집트는 종합적인 문화의 성격을 갖추고 복식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서양 복식사의 기원으로 간주된다. 의상이라는 것은 원래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뜨겁고 건조한 아열대성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통기성이 높은 리넨(linen)으로 허리 아래만 간단히 두르거나, 몸의 곡선미를 반투명하게 보이면서 느슨하게 둘러 입는 드레이퍼리(drapery)형의 의상을 입었다.

고대 이집트의 의상은 기본적으로 상징성과 화려함을 반영한다. 특히 아름다운 보석, 머리 장식과 헤어 스타일과 함께, 주름 잡아 드리워진 주름살 등이 기본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마 이집트인은 착용자의 사회 계급을 의미하는 드레스를 사용했다. 한마디로 착용된 보석을 보면 그들의 신분을 곧바로 알 수 있다.

화려한 목걸이와 함께 가발을 사용한 것이 이집트 복식의 특징이며 색상은 주로 흰색이었으나 후기로 갈수록 여러 가지 색과 복잡한 문양이 사용되었다. 이집트인들은 벌레나 햇볕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향유(perfume oil)를 하루에도 여러 번씩 발랐으므로 귀족의 저택에는 향유를 바르는 방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같은 이유로 남녀 모두 화장을 하였으며 은 주로 청색으로 그렸다.

남성의상은 기본적으로 이집트의 덥고 습한 기후에 적응하도록 설계되었다. 특히 다른 지역과는 달리 추위가 없으므로 이에 대처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에도 지배자들은 가죽옷을 입었고 그리스인보다 짧은 망토를 착용했다, 또한 셔츠와 튜닉같은 허리에 두르는 갑옷 등을 입었다.

이집트의 의상은 통상적으로 하얀색이다. 군인의 경우 보병은 짧은 스커트, 허리에 두르는 갑옷을 입었으며 스커트는 주름을 잡았다. 스커트의 길이와 스타일은 시대를 따라 달라지는데 치마의 길이가 달라지는 것은 물론 엉덩이에 밀접하게 장착시키기도 했다. 신왕국시대에 스커트는 큰 삼각형 장식 패널을 붙이기도 한다.

사제들은 일반적으로 머리를 밀고 흰색 리넨 옷을 입고. 어깨 주위에 실제 또는 모조 표범 가죽을 착용했다. 신들과 여신은 머리 장식과 신성한 상징으로 장식했다

여성 의상도 신분에 따라 다르다. 여성의 가슴은 신분에 차이없이 때때로 노출되는 옷을 입었다. 특히 여성들은 주로 보석, 화장품, 정교한 모자로 자신을 장식했다.

ICRD의 주관으로 중앙대학교 정홍숙 교수 등에 의해서 복원된 고대 이집트 의상 중에서 파라오, 왕비, 이시스 여신의 복식은 다음과 같다.

 

이집트 왕비

 

파라오

투명한 얇은 리넨으로 된 한 장의 직사각형 하이크를 입었고 허리에 띠와 센도트를 둘렀는데 보석 등으로 세공하여 매우 정교하고 호화스러웠다. 파라오의 머리 관은 호루스()와 우라노스()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상하 이집트를 통치하는 지배자임을 나타낸다. 파라오가 들고 있는 도리깨는 왕권을 의미한다.

 

 

이시스 여신

왕비

이집트에서는 파라오만이 신이자 인간이었으므로 왕비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신이 아닌 평민이었다. 그러나 파라오와 함께 사는 왕비로서의 역할은 막중할 수밖에 없었다. 후대에는 파라오와 함께 왕비가 공식적인 장소에도 등장한다. 19왕조 람세스 2세의 왕비인 네페르타리는 직사각형의 반투명한 리넨 천 가운데에 목둘레선을 내고 옆선을 터놓았다. 뒤폭을 앞쪽으로 당겨 허리띠를 매었는데 허리띠에 장식된 연꽃 문양은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 또한 죽음의 땅에서 보호 역할을 하는, 왕가의 상징인 독수리형 머리 장식을 쓴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여신

복원된 이시스 여신은 구슬을 단 쉬스드레스를 입고 앙크를 들고 있다. 머리 위에는 둥그런 태양을 황소의 뿔이 받들고 있는 모양의 관을 썼다. 전면의 은 태양의 신 의 적을 몰아낸다는 뜻을 갖고 있다.

 

참고문헌 :

고대 이집트, 나무위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wheofh12&logNo=50192091997&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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