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8) : 상형문자 해득하기(3)

Que sais 2021. 2. 2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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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형문자 해득 경쟁>

수많은 당대의 천재학자들이 상형문자 해득에 투신했음에도 모두 실패하고 최후의 승자는 샹폴레옹이다.

언어 해독의 천재 샹폴레옹은 처음부터 토머스 영이 예상했던 가설을 채택하고 상형문자 해득에 들어갔다. 샹폴레옹은  탁본 복사판만을 가지고 로제타석 원문을 한 번도 본 일 없이 해독작업에 들어갔다.

샹폴레옹은 어려서부터 언어적인 면에서 천재성을 보였는데, 일설에 의하면 고대 언어의 구조를 잘 알고 있는 샹폴레옹이 탁본을 보자마자 해독에 성공했다는 설도 있다. 샹폴레옹은 그리스어로 써진 로제타석의 글이 프톨레마이오스 왕을 칭송하는 것이므로, 이집트 상형문자로 써진 글에도 프톨레미마이오스왕의 이름이 반드시 들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샹폴레옹은 기호들 가운데 유독 타원형으로 둘러싸인 기호카르투슈에 주목했는데, 이는 로제타석을 해독하려고 노력했던 다른 선임자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샹폴레옹의 상형문자 해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필레의 오벨리스크에서 발견된 타원으로 둘러싸인 기호인 프톨레마이오스클레오파트라였다. 영국의 영 박사가 발견한 것으로 로제타석에도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클레오파트라는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왕비이며 이집트의 왕비였기 때문이다.

샹폴레옹클레오파트라프톨레마이오스카르투슈 안에 적혀있으므로, 두 문자를 비교해 공통으로 나오는 P, O, L을 찾았다. 그는 자신이 찾아낸 이 기호들이야말로 P, O, L을 소리내는 발음기호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고, 이어서 표음문자가 되기 위한 발음기호들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가설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며 가설을 정리해나갔다.

샹폴레옹이 다른 학자들이 성공하지 못한 상형문자 해독에 성공한 것은 상형문자가 표음문자인 동시에 표의문자일지도 모른다고 가정했기 때문이었는데, 그의 가정은 확실히 옳았다.

샹폴레옹 모두 850여 개의 기호들로 구성된 상형문자가 복잡한 것은 다른 언어에서는 보기 힘든 독창성을 갖고 있고, 세 가지 기호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상형문자는 세 가지 문자를 모두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대상이나 사물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그림으로 된 표의문자는 서로 겹쳐 사용되기도 하면서 추상적인 개념까지 표현했다.

둘째 소리를 표기하기 위해 표음문자가 사용되었다.

셋째 문맥 속에서 어느 한 기호가 구체적으로 어떤 대상이나 사물을 지적하는 것인지 알려주는, 부호역할을 하는 결정문자로 되어 있다.

 

샹폴레옹

이를 보다 설명하면 신성문자 즉 상형문자는 처음 그 도형이 나타내는 사물을 의미한 그림문자로 출발한 표의문자. 예를 들면 원반의 도형은 태양, 소나 뱀의 그림은 각각 그 동물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방식으로는 구체적인 사물밖에 나타내지 못하므로 추상적인 개념을 보여주기 위해 도형에 비유적인 의미를 겸비했다. 원반을 태양과 함께 낮과 시간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뿐이라면 이집트의 문자는 답보될 수밖에 없는데 발달 과정에서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접목된다. 즉 도형이 그것을 직접 연상시키는 사물이나 개념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다시 사물이나 개념의 명칭이 지닌 음가(音價)도 표시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판독그림과 같은 것으로 이를테면 괭이를 나타내는 도형은 사랑한다동사의 의미로도 사용했다.

더불어 여기에서 오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별도로 발음 보어가 되기도 하며 한정사가 되기도 하는 보조 도형을 추가했다. 이 방법은 여러 가지 도형을 결합하여 모든 사물과 개념을 기술할 수 있다는데 중요성이 있다.

상형문자의 문장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밑으로 읽을 수 있는 등 한글과 유사한 면도 있다. 표음문자는 일종의 알파벳 역할을 하는 30개의 홑소리글자80여 개의 겹소리글자, 그리고 50여 개의 세겹소리글자 등으로 구분된다. 상형문자의 특징은 거의 완벽하게 구어를 기록할 수 있는데다 구체적인 대상은 물론 추상적인 개념도 잘 나타낼 수 있으므로 농업, 의약, 법전, 교육, 종교 예배, 전승, 기타 문학 일반에 관련된 자료를 모두 기록할 수 있었다.

 

<고정관념을 깬 언어의 천재 샹폴레옹>

샹폴레옹1790년 프랑스 남부 피지에크에서 태어났는데 나폴레옹이 이집트로 원정 갔을 때는 그의 나이 7이었다. 샹폴레옹은 여섯 살도 되기 전에 읽고 쓰기를 마친 천재소년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많은 한국인들은 6살에 글을 읽는 것이 무슨 천재냐고 반문하는데 그것은 프랑스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문법을 정확하게 구사하는 것이 어렵다고 보기 때문에 한국으로 보면 초등학교 4학년부터 비로소 프랑스 문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1801년이 되자 동생의 재능을 알아본 맏형 자크가 11살 난 샹폴레옹을 그레노블의 사립학교에 입학시킨다. 샹폴레옹이 언어에 소질을 보여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쉽게 익히는 것을 보고 훌륭한 학자가 될 것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그해 어느 날 나폴레옹과 함께 원정에 따라갔던 푸리에가 샹폴레옹을 집으로 초대해 이집트에서 가져온 유물들을 보여주었다. 샹폴레옹은 로제타석을 아직 해독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해독하겠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일설에는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참가했던 샹폴레옹 대위푸리에보다 먼저 조카인 샹폴레옹에게 로제타석 탁본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180791, 17살 난 샹폴레옹은 파리국립고등학교에서 파라오가 다스리던 때의 이집트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교수들은 어린 소년의 빼어난 통찰력과 확고한 논리에 놀라 19살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역사학과 조교수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후 샹폴레옹은 도서관이나 연구소에 파묻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와 아랍어, 페르시아어를 공부했다. 중국어와 이집트의 기독교인들이 사용했던 언어인 콥트어도 익혔는데, 특히 콥트어 실력이 매우 뛰어나 그가 콥트어로 쓴 일기를 본 어떤 학자가 옛 이집트 문헌으로 착각하고 주석을 붙일 정도였다고 한다.

샹폴레옹 형제는 나폴레옹과 직접 만나기도 했다. 나폴레옹이 실각한 후 엘바 섬에서 탈출 다시 황제가 되자 그는 샹폴레옹에게 콥트어사전이 출판되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항간에는 샹폴레옹의 능력에 감탄한 나폴레옹이 그가 있는 학교까지 찾아가 콥트어를 이집트의 공용어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다는 소문까지 떠돌았다.

여하튼 1822년 샹폴레옹은 마침내 상형문자 푸는 기초 원리다시에 씨에게 보내는 편지, 음운 상형문자의 자모에 관하여(Lettre a M. Dacier, relative l'alphabet des hieroglyphes phonetiques)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의 주제는 상형문자가 소리글자인 표음문자와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 또한 샹폴레옹은 27개나 되는 파라오의 이름을 해독해 이집트 상형문자의 음가(音價)를 밝혀냈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서른하나였다.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했다고 발표하자 샹폴레옹에게 응분의 보상이 따랐다.

샤를르 10는 이집트학 강좌를 열도록 칙령을 내릴 정도였다. 그러나 샹폴레옹은 유명한 콜레주 드 프랑스의 초대교수로 임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83234일에 너무 이르다. 할 일이 많은데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떄 그의 나이는 마흔하나였다.

샹폴레옹의 상형문자 해독은 그야말로 학계를 강타했는데 그에 의해서 이집트에 대한 여러 가지 점을 알게 되었을 뿐더러 이집트가 당대 세계의 주력 중 하나이므로 고대 세계의 세계사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당대 세계 최고 문명인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으므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철저하게 기록했고 또 이를 보존하는데 열중했다. 놀라운 것은 이들 기록이 기원전 3천 년 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이다.

학자들이 놀란 것은 그들이 기록한 내용이다. 그들은 신왕국 시대에 이미 왕명표로 왕의 이름, 재위 연월일, 중요 사건을 철저하게 기록했다. 이 밖에도 중요 역사적 내용을 각 신전이나 무덤 등에 적었는데 그 중 피라미드 텍스트, 세티 1세의 아비도스 리스트, 카르나크 신전에서 발견된 카르나크 비문, 람세스 2세의 무덤에서 나온 사카라 비문, 이집트 사에서 반드시 거론되는 토리노 파피루스등이다.

피라미드 텍스트5왕조 및 6왕조의 피라미드 안에 새겨진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사료라고 볼 수 있는데 이에 의하면 매우 오래된 시대의 전통을 전하고 있다. 이는 이집트에서 선사시대부터 이미 정치행정 조직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토리노 파피루스」가 이집트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인정되는 것은 이집트 신화시대를 비롯하여 시대별 파라오들의 이야기들이 적혀있기 때문이다. 팔레르모 돌이라 불리는 6조각의 비문에는 기원전 2500년 전 경의 제5왕조 시대의 이야기로 연대별로 전쟁, 제사, 행사, 건축물은 물론 나일강이 범람했을 때의 수위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집트의 중요성은 이들 3000년의 역사 동안 줄기차게 큰 변화없이 자신들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적었다는 점이다. 장례 절차, 전쟁의 승리와 정복 과정, 납세 기록, 특히 왕궁과 신전의 세입 품목들을 철저하게 기록하여 이집트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게 해준다.

그런데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에 있어 샹폴레옹이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긴 했지만, 이집트 상형문자가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샹폴레옹은 상형문자 가운데 어떤 것은 알파벳과 같은 소리(음가)를 나타내고, 어떤 것은 부호 하나가 그대로 한 낱말이기도 하며, 또 어떤 부호는 그 하나로 아주 복잡한 뜻(개념)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밝혔는데 이 수수께끼들이 완전하게 모두 풀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직도 상형문자로 써진 글의 정확한 발음을 파악할 수 없다는 점으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고대 이집트어로 된 글을 읽을 때 학자마다 발음을 서로 다르게 적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아마도 이런 불편함은 또 다른 샹폴레옹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참고문헌 :

고대 이집트, 나무위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wheofh12&logNo=50192091997&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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