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11) : 신과 신전의 나라 이집트(3)

Que sais 2021. 2. 2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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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의 나라>

이집트의 신이 700여명이나 된다는 것은 그만큼 신전이 많다는 뜻이다. 이집트야말로 신전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다.

나일 강은 매년마다 홍수가 진 후 물이 물러갈 때마다 진흙 섬을 드러냈다. 이집트 신화에 따르면 메마른 대지의 언덕이 태초의 혼돈이 가져온 홍수에서 솟아나 최초의 신 아툼이 존재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 이집트에 산재한 많은 신전들은 바로 이러한 태초의 섬을 건축물로 구현했다고 볼 수 있다.

이집트의 신전이 다른 나라의 신전과는 달리 위압감을 느끼는 것은 이집트의 건물들이 건축 계획상 본질적으로 길고 곧으며 위로 향하는 통로로 구성된 상인방식 건물이기 때문이다. 이 통로는 햇빛이 들어오는 열린 마당과 다소 어두운 내부 구조를 갖는 출입문을 거쳐 홀을 지나 마침내 가장 안쪽에 있는 성소에 이른다. 천장에는 별이 그려진 경우가 많아 더욱 신비감을 준다. 신상을 모신 신의 거소인 내부의 성소는 모형배가 들어 있는 방이나 승려들의 사무실로 둘러싸여 있다. 특히 통로는 가장 안쪽에 있는 작은 폐쇄 공간에 접근할수록 천장도 낮아져 신에게 다가가는 인간들로 하여금 경외심을 갖도록 만든다.

반면에 지붕은 그냥 편평한 뚜껑에 불과하다. 초기 신전을 떠받치던 목재 기둥은 파피루스로 만들었는데 이는 태초의 섬에 자라던 초목을 상징했다. 이후 건축술이 발전하면서 석조로 바뀐다.

이집트 신전을 더욱 신비롭게 만드는 것은 신전의 입구에 서 있는 기념비처럼 생긴 탑문인 파일론이다. 일반적으로 신전 앞에 파일론을 세웠는데 이곳에 각종 깃발 또는 다채로운 부조 및 거대한 조각상으로 장식된다. 대형 거상과 오벨리스크파일론을 앞에 세웠다.

그렇다고 모든 신전이 통일된 규범에 따라 건설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테베의 카르나크 신전 형태를 구사하지만 파라오에 따라 건축규모는 물론 형태도 달라지므로 일일이 설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곳에서는 이집트 신전의 대표로 볼 수 있는 테베의 카르나크 신전, 룩소르 신전, 람세스2세의 아부심멜 신전에 대해서 설명한다. ‘왕가의 계곡왕비의 계곡에는 수많은 무덤이 있으므로 이들 계곡 자체를 신전의 계곡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들은 뒤에서 별도로 설명한다.

 

<이집트 역사의 도시 테베>

카이로로부터 676킬로미터 남쪽, 카이로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 정도의 거리인 나일강 상류 즉 이집트의 중앙 지역에 자리 잡은 고대 테베(Thebes)야말로 고대이집트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중왕국과 신왕국의 수도가 된 이후 1600년 동안 이집트 왕국의 중심지로 크게 번성했던 곳이다.

룩소르라고도 부르는 이들 지역은 이집트에서도 이름난 곡창지대로 많은 사람들이 거주한 곳이다. 특히 신왕국에서는 국력이 왕성하여 많은 건축물을 지었는데 큰 틀에서 불 때 고대 이집트의 역사·예술·종교관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테베를 방문하는 것이 첩경이다. 특히 고대이집트 파라오로부터 로마 황제까지 수많은 통치자가 이곳에 건축물, 오벨리스크, 조각품을 제작했다. 그러므로 생()의 찬미는 산 자들의 테베에서 발견할 수 있고 사()의 찬미는 죽은 자들의 테베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산자와 죽은 자의 터전이라는 설명이다.

테베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와세트() 즉 왕위로 불렀는데 나일 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 지역과 서쪽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집트의 중왕국과 신왕국 시대, 이집트 사람들은 베셋이라고 불렀는데 이후 그리스 사람들은 테베라고 불렀다.

테베가 고대 이집트에서 중요하게 인식된 것은 지리적 잇점 때문이다. 테베는 광물 자원이 풍부한 동부 사막과 누비아에 인접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왕국 시대 이래 테베는 제11왕조의 몇몇 파라오와 제18왕조 모든 파라오의 탄생지로 그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이 도시의 황금기는 제18왕조로 전 이집트의 수도가 되었을 때다. 그러므로 신전은 전국에서 가장 풍부하고 중요했으며 그 신 아몬신들의 왕으로 인식되었다.

18왕조 말에서 19왕조에 걸쳐 수도가 이전되었음에도 테베의 권위는 사라지지 않아 국가 행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추후 델타가 이집트의 정치적, 경제적으로 부상했을 때에도 신전의 위상은 요지부동이었다.

테베는 그리스 시인 호머가 일리아드에서 탑문이 100개나 있는 도시라고 했던 곳으로 인류 역사상 탑문이 100나 있는 도시로 기록된 곳은 테베가 유일하다.

 

카르나크 신전

탑문이 100개라는 것은 신전이나 궁전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문이 100나 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만큼 이곳에 많은 신전과 궁전이 세워졌으며 크게 번성한 도시였다는 걸 말해주는데 신왕국 전성기에는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테베에 살았다고 한다. 현재 인구가 45만 명인 것을 생각해 보면 당시 룩소르가 얼마나 큰 도시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테베의 기원은 이집트 문명 초기로 올라가지만 테베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신왕국 초기인 제18왕조부터 전 이집트의 수도가 되었을 때다. 테베가 그동안 이집트의 수도였던 멤피스를 몰아내고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이는 당대에 국내 및 주변 나라에서 부가 흘러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테베의 지방신에 불과했던 아몬이 이집트의 주신(主神)이 되었다. ‘숨겨진 존재혹은 알 수 없는 것을 의미하는 아몬신과 더불어 그의 아내인 여신 무트, 달의 신인 그들의 아이인 콘수도 숭상받았다. 아몬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지나, 그를 숫양, 거위, 허물을 벗음으로써 자신을 새로이 하는 뱀의 모습으로 나타낸 장면도 존재한다.

아몬은 이후 헬리오폴리스(태양신)''와 결합되어 전 이집트에서 가장 높은 신인 '아몬-'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며 국가 최고의 신에게 바치는 카르나크 신전(아몬-레 대신전)이 건설된다. 이후 테베는 아몬-레의 비호를 받으며 오랫동안 정치경제와 신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신왕국 시대가 끝을 맺자 테베의 위치는 델타가 이집트의 정치적, 경제적으로 부상하여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몬-레 신앙의 중심지로서의 위치는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18왕조 말에서 19왕조에 걸쳐 수도가 이전되었음에도 테베의 권위는 사라지지 않아 국가 행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 아슈르바니팔은 기원전 664년에 이집트로 원정, 멤피스와 테베를 함락시켰다. 그는 테베의 왕궁을 파괴한 후 나는 막대한 전리품을 갖고 돌아왔다고 자랑했지만 카르나크과 룩소르 신전 등은 위용에 놀라 파괴하지 않았다.

테베는 사실상 고대 이집트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이집트에 세계인들이 놀라는 것은 3200여년에 걸친 장구한 세월동안 강력한 기마군단 아시리아, 로마는 물론 이슬람-아랍의 침입에도 꿋꿋이 견뎌 오늘날의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르나크 신전

이집트를 대표하는 신전은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규모면이나 역할 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신전은 신왕조 동안 이집트의 수도였던 테베의 카르나크 신전이다.

테베는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베셋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기원은 이집트 문명 초기로 올라간다.

카르나크 신전은 기원전 2000년경 중왕국 시대 때 짓기 시작하였지만 테베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신왕국 초기인 18왕조부터다. 즉 테베가 그동안 이집트의 수도였던 멤피스를 몰아내고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카르나크 신전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세운 것 가운데 가장 커다란 신전으로 이집트의 후반 역사는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몬 신전은 고대 이집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아몬 신전이 있는 카르나크는 신전보다도 거대한 신전 복합체라고도 부른다. 카르나크 신전이 유명한 장소라는 것은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볼 수 있는 낙서2,000건이나 남아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들 낙서는 페니키아어, 키프로스어, 리디아어, 콥트어 등 국제적으로 이는 서력 기원이 시작되기 전부터 카르나크 신전이 전설적인 장소였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