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13) : 신과 신전의 나라 이집트(5)

Que sais 2021. 2. 26. 09:38

youtu.be/LGyK5tjvvRc

람세스 2세 신전

이집트를 방문하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집트 공항부터 카이로로 들어갈 때까지 곳곳에 있는 람세스 2세의 유물들이다. 거의 20미터나 되는 대형 조상들인데 근래에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거의 전부 진품이라는데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놀란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 전의 삼국시대 초기의 유물이 많지 않은 것에 비하면 이집트의 유물들이 왜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는 지 알 수 있다.

기자에 있는 쿠프의 대피라미드의 경우 기원전 2500여 년 전, 4500년 전에 건설된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크기를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엄청난 숫자와 규모의 람세스 2세의 유물들을 생각하면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다.

람세스 2세는 제18왕조의 말기에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프라메스는 원래 제18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호르엠하브의 재상이었는데 1,295년경 호르렘하브가 후손 없이 사망하자 파라오가 되면서 람세스 1로 개칭하고 새로운 왕조인 제19왕조를 세웠다.

람세스 1세는 14개월 동안 이집트를 통치하였고 이어서 그의 아들 세티 1가 파라오가 된다. 아버지 세티가 즉위할 때 여덟 살이었던 람세스 2는 열 살 때 이미 국방의 책임자 지위에 올랐다. 기원전 1,279세티 150세의 나이로 죽자 람세스 2우세르-마아트-라는 이름으로 스물넷의 나이에 파라오에 올랐다.

람세스 2세는 우와디 에세부아(Ouadi es-Seboua)의 신전에서 발견되는 기다란 리스트에 의할 경우 67년을 통치하면서, 최소한 6명의 정부인과 여러 명의 후처와 후궁들이 있으며 55명의 왕자와 55명의 공주가 있다. 그가 워낙 오래 살았기 때문에 많은 자식들이 일찍 죽었는데 그가 88살 또는 90살에 사망했을 때 13째 아들인 미네프타가 왕위를 계승했을 정도였다.

람세스 2는 왕위에 오른 통치 초기에 광대한 건축 설계에 몰두했다. 그는 북쪽의 나일 강 삼각주에 있는 타니스로부터 남쪽 누비아 지방의 아부심벨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전역에 걸쳐서 방대한 도시들과 기념물들을 건설하여 건축의 대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람세스 2는 영화 십계에서 모세(찰턴 헤스턴)의 상대역인 파라오(율 부리너)로 출연하여 우리들에게 간접적으로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물론 일부학자들은 모세가 살았던 시기를 그보다 약 100년 전 투모세스 3 시대로 설명하기도 한다.

여하튼 람세스 2는 기원전 1290년경 또는 기원전 1286년 경, 히타이트의 무와탈리 왕과 세계 전쟁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투 중 하나인 카데시전투에서 승리하여 이집트가 당대의 제국임을 세계에 알렸다. 카데시전투에서 승리한 람세스2세는 국내외 상황이 안정되자 곧바로 대형 공사에 착수한다. 학자들은 이 전투가 람세스2세의 기록과는 달리 무승부 또는 패배로 추정한다. 이곳에서는 람세스 2세의 신전인 라메세움과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발족시키는 단초가 된 아부심멜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고대 이집트의 영광인 람세스 2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설명한다.

그는 카데시 전투로 국내외적으로 안정을 찾자 이집트 북쪽의 나일 강 삼각주에 있는 타니스로부터 남쪽 누비아 지방의 아부심벨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전역에 걸쳐서 방대한 도시들과 기념물들을 건설했다.

람세스 2세가 건설한 또 다른 역작은 멤논의 거상북쪽에 있는 자신의 장제전 즉 백만년의 신전으로 불리는 라메세움이다. 이집트인들은 데이르알바리의 천애의 절벽을 배경으로 수백만 년을 견딘다는 14개의 장제전을 건설했다. ‘건축의 대왕람세스 2, 아멘호테프 2, 세티 1세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 장제전 입구에는 규암으로 만든 거대한 멤논 거상 2개가 있는데 각각 높이 23미터에 무게는 무려 1,000톤이나 된다.

라메세움은 거친 벽돌로 축조한 성벽 내부에 돌로 건설되었고 북쪽에 궁전이 배치되었다. 이 궁전은 엄밀히 말하면 세티 1세와 왕비 투이에게 바쳐진 소신전이다. 특히 라메세움에는 람세스 이름이 찍혀 있는 벽돌로 지은 여러 개의 부속물도 있다. 북쪽과 서쪽, 남쪽에는 스핑크스의 통로가 성벽을 둘러싸고 있다. 사람들은 동쪽에 위치한 두 개의 탑문으로 출입했으며 그곳에서 오시리스형의 기둥이 있는 두 개의 회랑식 뜰을 동서방향으로 통과한 후 중앙홀에 종 모양으로 된 48개의 기둥 위에 세워진 다주식 방에 이른다. 이어 점점 더 작아지고 어두워지는 세 개의 방을 통해 지성소에 다다른다. 지성소에는 축제 행렬에 사용되는 아몬의 배가 놓여 있다. 정원에는 람세스의 거상이 문들을 둘러싸고 있는데 람세스, 왕들의 태양이란 거상은 높이가 17미터에 달한다.

라메세움은 백만 년 장례신전이라 불리는데 람세스 2세 당대에는 물론 후대에도 매우 중요한 종교, 경제, 문화적 전당의 역할을 했다. 또한 라메세움은 강렬한 지적 활동과 깊은 신학적 성찰의 구심점이자 광활한 토지와 유명한 포도원을 관리하는 행정적 요지이기도 하다.

 

람세시움

람세스 2세는 람세스 2세 양식이란 기념물을 창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그가 건설한 신전은 제국, 인간적이고 신적인 그 안의 주민들 그리고 신인 왕의 장엄함을 정화시키기 위한 용도로 계획하여 이집트 신전의 건축 구조를 완전히 확립시켰다고 평가한다. 그것은 거대한 사다리꼴 탑문 뒤에 하나나 여러 개의 뜰을 만들고 그 뒤에 세 개의 홀(한 개의 중앙 홀과 더 낮은 두 개의 측면 홀)로 된 거대한 기둥의 다주식 방이 배치된다. 이후 점점 더 좁아지고 어두워지는 일련의 방과 어둠 속에 예배당이 있는 성소, 즉 신의 장막으로 이어지는 구조인데 앞에 설명한 라메세움이 대표적이다. 거대한 조상과 오벨리스크도 가미한다.

람세스 2세 양식이 갖고 있는 또 다른 특성은 음각 부조를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예술적, 기술적 새로움은 태양의 빛과 그림자가 주는 극적인 효과를 느끼게 한다. 특히 그가 건설한 신전의 벽에 의례를 행하는 장면이나 전쟁을 치루는 장면을 가득 그려 극적인 강렬함을 표현했다. 이를 위해 겹쳐지는 평행선으로 공간을 수평으로 나누는 대신, 모든 공간을 장식으로 둘러싸도록 계획했다. 여하튼 람세스 2가 이렇게 수많은 건축물들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 석공이나 채석공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등 노동자들을 격려하는데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람세스 2세가 누비아의 금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물을 파게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노동자들의 복지와 건강에 남다른 관심을 기우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집트의 대형 건물에 대해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은 당대의 대형 공사는 거의 대부분 나일강이 범람 때 국민들을 위한 구휼사업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이집트는 긴 강의 둑에 형성된 좁고 긴 땅으로 그 너머로 사막이 펼쳐져 있다. 에티오피아의 산악지대에서 비옥한 침니를 가져오는 청나일 강이야말로 이집트의 문명을 가능하게 하는 일등공신이다.

나일강에 아스완댐이 건설되기 전까지 이집트의 기후는 거의 천편일률적이다. 6월에서 나일강은 10월까지 급속하게 불었다가 서서히 줄어든다. 그러므로 농업도 물이 빠지기 시작하는 10월부터 가능했다. 홍수기 동안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으므로 정부에서 무언가 대안을 세워주어야 했다. 항상 굶주린 사람들이 생기는 것은 물론 노동력이 남게 되면 사회의 불안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즉 이집트에서 건설된 대형 건축물들은 당시의 사회생활상과 통치철학을 절묘하게 조합시킨 시스템의 일환으로 탄생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나일 강의 범람기에 농부들을 기아에서 해방시켜 굶주림에 따른 국민들의 소요를 미연에 방지하고, 파라오에게는 자신의 위엄을 마음껏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집트의 대형 건축물은 파라오의 과시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인들의 생활을 보장해주는 대형 근로사업의 일환이었다. 현재 우리나라로 치면 공공근로사업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정부는 노동자들과 채용계약을 했음이 이를 증명한다.

 

<세계를 놀라게 한 아부심멜 신전>

람세스 2세가 건설한 기념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아스완에서 320킬로미터 떨어진 누비아의 천연 사암층의 벽면을 깎아 만든 아부심벨 신전이다.

아부심벨은 기원전 1264년에서 기원전 1256년까지 비교적 빠르게 건설되었는데 그곳은 강 양쪽 가까이에 산이 솟아 있어 평지에 건물을 세울 수 없는 장소였다. 따라서 아부심벨은 나일 강 서쪽 기슭 사암질 바위산을 파서 만든 암굴 신전으로 아부심벨 신전은 정면이 람세스 2세의 모습을 닮은 4개의 거상을 전면에 새겼다. 각 조상은 높이가 20미터, 얼굴의 귀에서 귀까지의 거리가 4미터, 입술의 폭이 1미터에 달하며 정면을 지지해주는 기둥들의 높이는 31미터나 되는 엄청난 크기다.

람세스 2세의 좌상은 양 손에 권력을 상징하는 채찍과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는 설도 있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또 이마에 장식된은 태양신을 상징한다.

람세스의 다리 옆에 서 있는 작은 석상은 파라오의 가까운 가족을 나타낸다. 그중에는 네페르타리의 석상도 있고 람세스의 어머니, 세 딸, 두 아들을 묘사한 석상도 있다. 왕좌에는 파라오가 전투에서 정복한 왕국들과 사람들의 모습도 새겨져 있다. 또 신전의 출입구 바로 위에는 매의 두상을 가진 라(Ra) 신 또는 태양의 신, 라 호라크티가 새겨져 있다. 신전의 정면 맨 위에 있는 돌림띠에는 22개의 원숭이가 조각돼있다.

신전의 기본은 대신전과 소신전으로 나뉘어진다. 대신전의 안 길이는 63미터다. 신전의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면 여덟 개의 오시리스 원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넓은 다주실(多柱室)이 나오고 이어서 좀 더 작은 다주실이 나온다. 그곳을 지나 두 번째 소신전으로 들어가면 신상이 안치되어 있는 내실(cella)가 나온다. 내실에는 작은 제단이 있고 당시 가장 중요한 4개의 신상이 모셔져 있다. 사자(死者)의 왕국과 관련이 있는 멤피스의 프타신, 테베의 아몬 라신, 헬리오폴리스의 라 호라크티 그리고 신격화된 람세스 자신의 조각상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부심멜 신전은 이들 4명의 신을 모시기 위한 것이나 다름없다.

신전의 배치에 따르면, 신전의 정면은 물의 보호자로 간주되는 개코원숭이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다. 이곳에 매년 춘분과 추분 아침 6시경이면 아침 햇빛이 원숭이 상을 비추고 신전의 가장 깊숙한 곳에 도달해 제4실에 있는 프타하(Ptah), 아문레(Amun-Re), 람세스 2, 그리고 레호라크티 (Re-Horakhty)의 전신을 비추게 되어 있다. 그러나 죽음의 신 프타하만은 이때도 어둠 속에 있다고 한다. 또한 사랑의 여신 하토르에게 바쳐진 두 번째 신전이자 작은 신전은 람세스 2세가 가장 사랑했던 아내이며 그가 태양은 그녀를 위해 빛난다라고까지 일컬었던 네페르타리를 위해 건축되었으므로 하토르는 네페프타리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오른쪽 기둥에 새겨진 한 비문에는 진정한 강자 람세스가 경애하는 왕비 네페르타리의 성스러운 신전으로 조영했다라고 쓰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