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12) : 신과 신전의 나라 이집트(4)

Que sais 2021. 2. 2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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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카르나크 신전이 그 어느 곳보다 중요했던 것은 파라오가 외국 원정으로 획득한 전리품과 세금 등으로 받은 막대한 국가 재산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로운 파라오가 정상적으로 파라오 역할을 하려면 아몬 신전을 반드시 장악해야 했다.

카르나크 신전을 얼핏 보면 매우 복잡하게 보인다. 그것은 여러 세기에 걸쳐 많은 파라오들을 기리는 신전 즉 기둥으로 구성된 안마당이 하나둘씩 늘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안마당이 생길 때마다 그 앞에 파일론이 세워졌는데 이는 권좌에 오른 파라오들이 자신의 신전 용도로 연이어 건설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통로도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거대한 기둥의 숫자만 해도 134개나 되는데 모두 상형문자로 장식되어 더욱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들 상형문자는 원래 아름다운 색채로 칠해져 있었으므로 현재도 곳곳에서 아름다운 색채가 있는 부분을 볼 수 있다.

카르나크 신전의 구조를 입구부터 따라간다.

백양궁(白羊宮)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는 숫양의 머리를 가진 아몬의 상징인 스핑크스의 거리를 따라가면 신전 입구에 있는 1파일론 즉 탑문에 보이는데 실제로 제1파일론은 6개 탑문 중 가장 늦게 30왕조 네크타네보 1가 건설한 것이다. 안으로 나 있는 통로를 따라가면 탁 트인 첫째 안마당을 지나 2파일론에 이르게 되는데 그 앞에 람세스 2 조각상 두 개가 세워져 있다. 이 파일론은 다시 지붕을 떠받치는 거대한 기둥이 늘어선 홀로 통한다. 가장 큰 기둥은 높이 20.7미터, 둘레 9.9미터나 된다.

중앙 통로를 형성하는 이들 두 줄의 거대한 기둥들은 그 너머에 늘어선 보다 작은 기둥들을 왜소하게 만들지만 이들 규모도 작은 것은 아니다. 단지 중앙 통로의 기둥보다 작으므로 작게 보일 뿐이다.

전체적으로 통로를 계속해서 따라가면 어두운 내부의 홀을 지나게 되는데 계속하여 금으로 만든 문은으로 만든 마루가 있었다는 세 개의 파일론이 나온다. 이들을 통과하면 드디어 태양신을 모시는 성소에 이른다. 투트모세 1가 지은 이 성소가 바로 신전 전체의 중심부. 이곳은 파라오와 승려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원래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아몬의 조각상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2파일론 후면에 위치한 아몬 신전의 중심은 거대한 기둥이 늘어선 대열주실인데 길이 100m, 53m에 달하는 웅장한 공간이다. 대열주실에는 높이가 23m15m인 기둥 134개가 16줄로 늘어서 있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을 준다. 홀을 장식하고 있는 부조의 연대는 세티 1세와 람세스 2세 시대로 추정하는데 많은 파라오들이 홀을 추가하여 확장하거나 부조로 미화했다.

여자 파라오 하셉수트도 이곳에 자신의 주랑을 세웠는데 그녀는 이집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벨리스크를 건설했다. 붉은색 화강암으로 높이 29.5미터에 달하는데 이 오벨리스크가 수많은 약탈에도 불구하고 외국으로 반출되지 않은 것은 무게가 320톤이나 달하기 때문이다. 이집트인들이 오벨리스크 건설에 열중한 것은 금박을 입힌 오벨리스크의 끝이 다른 건축물보다 더 높이 솟아있어야 좋은 에너지를 신전 쪽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떤 밀폐된 공간을 따로 설치한다는 것은 곧 안에 존재하는 것과 밖에 존재하는 것의 차이를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안식처를 찾으려는 인간의 욕구전지전능한 신과의 연관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즉 성스럽고 고결하며 자비로운 공간과 평범하고 불경한 외부 공간을 완전히 별개로 구분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가장 성스러운 곳까지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 여러 장애물을 거치도록 만든다. 당연히 이러한 공간에 들어가는 사람은 먼저 몸을 깨끗이 닦아야 함은 물론 입장 또한 특정한 사람에게만 허용된다. 내부영역과 외부 영역은 크기로 확인할 수 있는데 크기가 작을수록 더욱 내적인 영역이다. 그러므로 성소의 크기는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만들기도 한다.

여하튼 이집트인들은 그 조각상에 아몬 신이 산다고 믿었으므로 하루에 세 차례씩 몸을 씻기고 식사를 바치며 깨끗한 아마포를 입히는 등 신상을 보살폈다.

아몬 성역의 북쪽은 일반적으로 매의 머리로 묘사되는 테베의 고대신 즉 몬투(Montu)에 봉헌된 곳이다. 이곳에서 가장 소규모인 이 복합구조물에는 몬투 신전, 몇 다수의 신전과 성스러운 연못이 포함되어 있다. 반면에 아몬 성역 남쪽은 그의 부인으로 흔히 독수리 가면으로 재현되는 무트 여신 영역이다. 양편에 숫양 두상의 스핑크스들이 늘어선 기념비적 가도가 이어진다. 상스라운 연못에서 승려들이 의례를 거행하기 전에 몸을 씻는 데 사용했다.

 

잔치가 있는 날이면 아문의 신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마치 황홀경에 빠진 여인이 자기 방 앞에 앉아 아름다운 가슴 위로 긴 머리를 풀어헤친 듯하다.’

 

위의 말은 람세스 2세의 비문에 기록되어 있는데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은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 거의 모두 동의한다. 디오도로스후세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아름다운 무덤을 남겨 줄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그리스 시인 호머테베를 탑문이 100개가 있는 파라오 왕국의 수도라고 말했다.

1802나폴레옹을 따라 이집트에 온 비방 드농여행기에 이렇게 적었다.

 

이 유적지를 전부 살펴보며 뻗어나가는 환상의 날갯짓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그만 생각이 멈추었다.’

 

룩소르 신전

테베에 카르나크 신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쪽의 하렘으로 불리는 룩소르 신전으로 아멘호테프 3(기원전13861349)람세스 2가 건설했다. 그러나 후대의 많은 파라오들이 부조와 비문으로 신전을 장식하고 다른 부속 건물들을 추가했다.

카르나크에서 약 3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데 스핑크스가 도열해 있는 포장된 긴 행렬을 따라가면 룩소르와 연결된다. 신전 전면에 람세스2세의 탑문파일론이 있고 벽면에 유명한 히타이트와의 카데쉬(Kadesh)' 전투와 관계된 부조와 비문이 있다.

입구에는 분홍색 화강암으로 된 오벨리스크가 한 개 서 있다.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 숭배의 상징으로 세웠던 기념비로 보통 2개가 서로 마주 보거나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이곳에도 원래 2개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이집트 총독이었던 무하마드 알리1836년에 이곳에 있던 오벨리스크를 프랑스에 기증하여 지금은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 세워져 있다.

룩소르의 길이도 260미터나 됨에도 카르나크에 비하면 어린아이와 다름없다. 신전의 입구는 시리아와 히타이트 원정 장면으로 장식하였고, 람세스 2의 거대한 안마당과 배 보관소로 이용되는 예배당으로 연결되어 있다.

탑문 즉 출입문 양옆의 좌상은 람세스 2세를 묘사한 것이다. 이를 지나면 첫 번째 궁실로 들어가는데 이곳은 여러 신 앞에 있는 파라오의 부조상을 새긴 74개의 파피루스 문서형의 원주로 이루어진 람세스 2세의 작품이다. 신전은 3대 신인 아버지 아몬, 어머니 무트, 부부의 아들인 달의 신 콘수(Khonsu)에게 헌정되었다. 아몬과 무트는 독수리 혹은 사자의 형태로 재현되어 있다.

2신전은 웅장하고 거대한 입구와 돌기둥, 안마당과 긴 원주로 지탱된 공간이 있고, 아멘호테프 3의 지휘 하에 건설되었다.

이 신전은 룩소르 신전을 대표하는 열주로 대표되는데 아몬 신전의 기둥들보다 높이도 낮고 크기도 작지만 18m 높이의 기둥 14개는 무엇보다 돋보인다. 원래 지붕이 있었던 첫 번째 내실 즉 원주의 홀로 합쳐진다. 여기서부터 양편으로 방들이 배치된 네 개의 대기실을 통과하면 신전의 가장 안쪽에 아멘호테프 3세에 세워진 이른바 성소인 산크타 산크토름이 나타난다. 그곳은 12개의 원주로 이루어진 현관 객실에서 세 개의 예배당으로 이어지는데 그 중앙의 예배당에 아몬 신의 조상이 안치된 감실이 있다.

 

룩소르 신전

그런데 열주를 에워싸고 있는 넓은 벽면에는 오페트 축제에 관한 부조가 오늘날 사람들에게 오페트 축제에 대한 정보를 전해 주고 있다.

사실 룩소르 신전은 오페트 축제를 위해 건설한 것이다. 해마다 한 번씩 나일 강이 범람할 때가 되면 카르나크 신전에 모신 신들을 배에 태워 룩소르 신전으로 옮기는 의식을 치렀는데 이 의식을 오페트 축제라고 한다.

오페트는 이집트의 규방, 하렘을 의미하는데 아몬 신의 아내로 성스러운 어머니로 알려진 무트 여신과 보내기 위해 룩소르를 방문한다. 그러므로 오페트 축제 행렬은 아몬이 카르낙에서 룩소르 신전에 있는 규방까지 가는 길을 상징했다. 일 년 내내 지성소에 보관되어 있던 아몬의 조각상이 성스러운 배를 타고 카르나크 신전을 떠나기 전 향을 피우고 마실 것과 음식을 바치는 등 여러 가지 의례를 치룬다. 초기엔 육로를 이용했지만 후기엔 아몬 신을 룩소르로 모셔가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된 운하를 이용했다. 엄청난 군중과 악대, 젊은 무희들이 길을 가득 메웠다.

물론 현재 아무도 성스러운 혼례식을 볼 수 없지만 성스러운 혼례식은 아몬 라가 무트와 결합하는 동시에 처녀인 신부와 왕위 후계자를 낳는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이런 신과 인간 권력의 결합을 통해 국가가 영원한 번영을 보장받는 것이다.

파피루스의 기록에 의하면 카르나크에서 열리는 아몬신에 대한 제사에는 약 2만 명의 사제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이때 사제들은 제단 위에 있는 아몬상을 금칠한 나무배에 태우고 룩소르 신전까지 옮기는 행렬을 벌렸다. 아몬 숭배는 로마에 의해 기독교가 전파되었던 4세기까지만 유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오페트 축제가 부활하여 성대한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라마단이 시작되기 전 룩소르는 3일 동안 거대한 대 행사장으로 변한다.

 

카르나크와 룩소르의 반대편인 나일강의 서쪽 제방에는 테반 공동묘지가 있다. 이 뒤로 바로 사막이 나오고 조금 멀리 리비아 평원의 언덕들이 나타난다. 신왕국의 파라오들은 자신들의 매장지로 그곳의 계곡을 택했는데 바로 왕가의 계곡이다.

그 밖의 지역을 테베인들이 묘지로 사용했고 경작지와 언덕 사이에 왕실 영안실용 신전이 위치하는데 그 주요 기능은 왕의 계곡에 매장된 파라오들의 숭배를 유지하는 것이다.

아멘호테프 3세를 이어 람세스 2세까지 룩소르 신전은 증개축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