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17) : 죽어야 산다(2)

Que sais 2021. 2. 2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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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가 된 , 악어, 따오기>

고대 이집트인들의 특징 중 하나는 생활 주변에서 발견되는 동물들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사카라, 테베, 부바스티스에는 원숭이, 고양이 등 성스러운 동물들을 미라로 만든 무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생각한 동물은 소. 이마에 검은 반점을 붙인 하얀 소특별하고 성스러운 존재로 취급됐다. 성스러운 소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죽은 뒤에 오시리스의 양자가 되고 죽은 사람들의 신으로 추앙되며 서쪽의 주인이라 불.

놀라운 것은 소 무덤에서 관이 있는 방으로 가기 위해 바위를 뚫어 만든 길이 400미터나 되는 경우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소의 미 속에 부장품이 많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소의 무덤도 도굴꾼에게 약탈당했다. 1851프랑스의 고고학자 마리에트도굴당하지 않은 소 무덤을 발견하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성스러운 소 아피스의 무덤에 들어가면서 나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몇 천 년 동안 인간이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며칠 뒤 나는 벽으로 막혀 있는 방을 하나 발견했는데, 기원전 1270년에 람세스 2가 막았다는 기록도 있었다. 벽과 바닥에는 마지막으로 손을 댄 이집트인의 손자국과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기대한 대로 소 미라 또한 완벽한 모습이었다.’

 

소뿐만이 아니다. 이집트인들은 악어와 따오기 성스러운 동물로 생각했다. 주요 신전은 사카라 남쪽 오아시스인 파이움에 있는데,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도시를 크로코디로폴리스악어의 도시라고 불렀다.

테베 주민들은 악어를 극도로 신성시해 직접 사육하기도 했다. 악어의 귀에 유리나 황금으로 만든 귀걸이를 해주거나 앞발에 팔찌를 끼워줄 정도였다. , 악어가 죽으면 미라로 만들었다. 악어에 관련해 죽은 사람들도 특별대우를 받았다. 악어물리거나 혹은 강물에 휩쓸려 사망한 경우 시체가 떠오르면, 시체를 발견한 그 도시의 주민이 유해를 미라로 만들어 신성한 묘지에 매장해야 했다. 물론 미라는 가장 정교한 방식으로 만들어야 했으며, 그런 경우 누구도 시체에 손을 댈 수 없었다. 악어로 인해 사망한 시체는 인간 이상의 존재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나일 강의 신에 봉사하는 사제들이 직접 매장했다.

따오기에 대한 특별대우도 이에 못지않다. 고고학자 사미 카브라가 발견한 따오기 무덤34미터 길이의 120개 계단으로 만들어졌다. 큰 홀에는 수많은 복도로 이뤄진 복잡한 미로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한 복도의 길이는 무려 120미터나 되었다. 벽에는 수많은 구멍이 뚫려있고 신성한 따오기의 관을 넣어 두었는데 그 숫자가 무려 4000개나 되었다. 아마도 전국에서 모인 따오기들은 이곳에서 영원한 휴식을 보장받았을 것이다.

고양이 역시 특별대우를 받은 동물이었던 반면에 돼지는 이집트인들로부터 차별대우를 받았다. 헤로도토스고양이와 돼지에 대해 매우 흥미 있는 이야기를 기록으로 전한다.

 

화재가 일어났을 때 참으로 기괴한 일이 일어난다. 사람들의 관심은 불 끄는 데 쏠리는 것이 아니라 온통 고양이에게만 쏠린다. 이집트인들은 불이나면 죽 늘어서서 고양이를 지키는데 고양이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거나 그 위를 뛰어넘어 불 속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면 이집트인들은 매우 슬퍼하며 그 죽음을 애도한다. 고양이가 자연사를 했을 경우에는 그 집 가족 모두가 눈썹을 민다. 가 죽었을 경우에는 머리와 전신의 털을 깎는다. (중략) 이집트에서는 돼지부정한 짐승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길에서 우연히 돼지를 건드리면 곧 옷을 입은 채로 강에 뛰어 들어가 몸을 씻는다. 또한 돼지를 기르는 사람은 이집트 내 어떤 신전에도 들어갈 수 없으며, 그에게는 누구도 딸을 보내려하지도 않고 그의 딸을 얻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돼지를 기르는 사람들은 그들끼리 시집보내고 장가간다. 이집트에서는 일반적으로 돼지를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을 금하고 있는데, 이시스로 추정되는 세멜레와 오시리스를 차용한 디오니소스에게만은 보름 때 돼지를 제물로 바치고 그 고기를 먹는다.‘

 

학자들이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미라의 숫자를 계산했다. 미라가 기원전 3000년경부터 만들어졌다고 보며, 그때부터 제작된 미라의 수는 대략 15000이 될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 미라 1구당 10점의 부장품이 있다고 쳐도 모두 15억 점이 된다. 이점을 이해하면 근래에 이르기까지 이집트에서 도굴 열풍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죽어야 산다>

이집트인들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저승에서의 부활이다. 그들이 환생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동생 세트에게 살해된 오시리스가 여동생이자 아내인 이시스에 의해 부활했던 것을 떠올리면 간단하다. 여신 이시스가 한 것처럼 행하면 누구든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부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혼과 육신이 결합해야 했다.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육신도 영혼도 절대 파괴당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집트 사람들이 그렇게도 미라에 집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집트인들은 영혼이 (Ka)와 쿠(Khu)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카는 영()에 해당하고 쿠는 혼()해당하는데, 여기에 제3의 개념으로 영혼의 새인 바(Ba)가 있다. 카는 모든 인간에게 그림자와 마찬가지로 따라다닌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일생 동안 따라다니며 당사자가 죽으면 묘에 남는다. 특이한 것은 는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든 모든 것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사자의 묘 앞에 물과 음식, 생전에 사용했던 물건, 도구를 제공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들이 믿었던 카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는 인간의 육체 속에 있지만 인간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몸속을 빠져나가 여기저기를 오가며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때 사람들이 불가사의 한 꿈을 꿀 수도 있는데, 꿈속에서 죽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은 죽은 사람의 쿠가 산 사람의 쿠와 만났기 때문으로 보았다.

는 매우 독특한 이집트인들의 상상력의 발로이다. 바는 사람의 머리에 새 모습을 하고 있는데 생전에는 육체에 있지만, 사후에는 몸 밖으로 빠져나가 사자의 미라 주위를 선회하거나 미라 위에 앉아 있다가 다시 몸속으로 들어간다.

이집트인들은 가 묘지의 여신으로부터 식물과 음식을 부여받아 생존한다고 믿었다. 이처럼 몸에서 빠져나간 바가 다시 사체와 결합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그들의 믿음은 곧 어떠한 경우라도 사체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집트인 특유의 관념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집트의 부활은 동양에서 많이 믿고 있는 인과응보적인 윤회사상과는 다르다. 이집트인들은 생전에 악행과 악업을 저지른 사람은 오시리스의 법정에서 혼을 파괴당하므로 사람에 따라 그들의 바가 다시 환생할 수 없다고 믿었다.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영혼이 파괴되는 것을 가장 무서워했다. 재사(再死), 즉 영혼이 파괴되는 것은 그야말로 완전하게 죽음에 이르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죽은 자들의 여행과 태양의 배>

이집트인들은 살아생전에 의로운 일을 하면, 오시리스 법정에서 무죄(?)를 판결 받아 죽어서도 다시 살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몇 가지 전제 조건은 있었다. 우선 육체가 미라로 만들어져야 했다. 또 미라가 벌레가 침범하거나 부패하면 즉 영혼이 온전하게 귀환할 수 있는 장소를 잃어버리거나 손상을 입는 것이기 때문에 미라가 온전하게 보관되어야 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혼의 그림자인 가 묘실에서 정기적으로 공납 받지 못하면 고통과 갈증으로 죽어간다는 점이다. 카가 기아에 허덕이면 사막을 배회하다가 부패하거나 썩은 물을 먹어 죽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집트인들은 죽은 사람에게 부활하는 데 필요한 신선한 공기와 물을 제공하고, 부활을 방해하는 해충이나 벌레를 방지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쿠프의 태양의 배

이밖에 이집트인들이 저승에 가기 위한 조건으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많았다. 그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미라가 되는 것, 태양의 배를 타는 것, 그리고 사자(死者)의 서를 갖고 가는 것이었다. 태양의 배와 사자의 서에 대해 알아보자.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부활하는 데는 모든 과정에 격식이 있었다. 이 중에서 사자가 태양의 배를 타고 나일 강 동쪽에 있는 이승에서 나일 강 서쪽에 있는 저승으로 가는 것이 중요했다. 태양은 위대한 신 레를 의미했다. 이집트 종교는 다신교였기 때문에 그들은 태양을 비롯하여 달, , 벌레 등 신변의 많은 것을 신으로 숭배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태양신을 가장 소중히 여겼다. 이집트인들은 절대 지배자인 파라오가 죽으면 그 혼 태양신 레와 함께 천공을 여행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여행에 사용되는 것이 바로 태양의 배였다.

학자들은 푸른 하늘을 보고 바다를 떠올렸기 때문에 하늘을 이동하는 수단으로 를 생각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여하튼 이집트인들의 믿음에 따르면 태양의 배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해가 뜨는 동쪽에서 해가 지는 서쪽으로 항해하는 마아네제트이고, 다른 하니는 그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메세케테트이다.

이런 가설에 부합하듯이 쿠프의 대피라미드에는 두 의 배가 부장되어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배들을 태양의 배로 간주하고 있지만, 혹자는 이집트 특유의 종교사회적 의미를 감안하여 쿠프 의 장례 집기를 운반했던 장례배가 아닐까 추정한. 또 쿠프 왕이 살아 있을 때 나일 강에서 타고 다녔던 실제의 배, 쿠프가 죽고 난 후 지하의식을 거행할 때 혹시 그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상징적인 배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대개 학자들은 태양의 배의 진정한 임무가 무엇이든지, 이 중에서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파라오만 저승으로 가는 길에 태양의 배를 타는 것은 아니다. 규모와 형식은 다르지만 일반인들도 미라가 만들어 진 후 자신의 무덤에 묻히기 위해서 반드시 태양의 배를 타야 했다. 그런데 미라가 만들어졌다고 모두 태양의 배를 타는 것은 아니라는데 중요성이 있다.

죽은 후 70여 일의 처리과정에 의해 미라가 되면 가족의 연장자가 죽은 사람의 미라를 나일 강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시켜줄 태양의 배에 태울 것이냐를 놓고 재판을 한다. 간단하게 말해 이 같은 재판에서 어떤 사람이 나타나 망자가 생전에 악행을 저질렀으므로 태양의 배를 태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 장례를 집전하는 사람이 고발의 진실성을 검토한다. 그리고 고발한 사람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되면, 비록 미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태양의 배에 태우지 않고 나일 강 동쪽에 매장하라고 선언한다.

이는 당대의 이집트인들에 있어 저승에서의 부활이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곧 영원한 죽음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전에 선하게 살도록 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아무리 권력과 재산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도 죽고 난 후에는 얼마든지 이의제기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죽은 사람에게 관대해지기 마련이라는 말이 있지만,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자비를 베풀지 않으면 영원히 죽게 되는 고대 이집트인들은 굳이 그런 위험성을 부담하면서까지 악행을 저지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태양의 배가 고대 이집트인들이 다른 전제국가와는 달리 비교적 선하게 살도록 했다는 예로 자주 인용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