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18) : 죽어야 산다(3)

Que sais 2021. 2. 27. 09:23

youtu.be/DQBYnO8SZdk

<죽은 자들의 필수 지침서 사자의 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매우 현실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저승에서 부활하자면, 이승에서처럼 많은 난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어떻게든 그 난관을 해결해야 했는데, 그를 위해서 죽은 자들은 반드시 몸에 사자의 서를 몸에 지니고 있어야 했다. 일종의 부적처럼 사자에게 닥칠 수 있는 수많은 어려움을 사자의 서가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고대 이집트인들은 인간을 삶의 길로 인도하고 인간을 보호하는 신들과 그의 권능을 인정하면서도, 그 능력에 반대되는 다른 신들의 존재와 능력 또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선을 상징하는 호루스와 악을 상징하는 세트. 이집트인들은 낮이 있으면 밤이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는 것을 자신들의 신화 속에 담았다.

때문에 부적의 일종인 사자의 서를 오늘날의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200개의 주문들로 이루어진 사자의 서는 기원전 16세기경 신왕국부터 이집트의 중심적인 장례 문서로 정착되었는데, 원래 사자의 서의 개념은 고왕국시대의 피라미드부터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사자의 서는 크게 세 종류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고왕국 시대에는 주로 피라미드 현실(玄室)에 기록했는데 이를 피라미드 텍스트라고 한다. 중왕국 시대에는 일반인들도 사자의 서를 휴대하기 시작했는데 이들 일반인들이 사용한 문구를 정리한 것이 코핀 텍스트. , 미라를 보존하는 관에서 나왔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신왕국 시대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이르는 사자의 서. 이때의 사자의 서는 시기와 죽은 자의 지위 등에 따라 다르게 제작되므로 통일되어 있지 않지만 대체로 주로 다음 세 가지 내용담고 있다.

첫째, 사자의 서사자의 명복비는 장의용 주문집으로 최선의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초반부는 주로 사자가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할 것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사자의 서

둘째, 이집트인들이 신봉하는 두 명의 신,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오시리스와 태양 신 라대한 찬가. 이들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한 자기 고백과 심판 등이 적혀있는 것이다. 죽은 자들의 세계인 오시리스 왕국에서 사자가 부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자신을 이끌어줄 저승의 신을 찬양하는 것은 무척 당연하다.

셋째, 이집트인들은 사자의 서가 사망한 후에도 현생과 같은 삶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이 살고 있을 법한 미래의 세계를 적어 놓았다. 하지만 미래의 세계는 곧 현생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사자의 서에는 이집트 신화를 구성하는 세계관 및 사회 관습, 풍습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예컨대 우주, 태양과 달, 나일 강 등에 대한 신화적 사고와 토템적 신앙뿐만 아니라 중왕국 시대의 평등사상, 사회의 구성 원리였던 족내혼, 일상생활의 소소한 습속 등이 적혀있다. 이승과 저승이 별로 다르지 않는 세계라고 생각하던 까닭이다. 사자의 서는 단지 부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자가 지하세계에서 살아야 할 모든 것을 알려주는 로드맵이 던 셈이다. 때문에 마디로 사자의 서를 읽으면 이집트인들의 생활 전반에 걸친 맥락을 알 수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동일한 사자의 서를 갖고 가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직업과 생활 여건이 다르므로 사자의 서도 내용이 달라진다.

이런 특성에도 불구하고 사자의 서본연의 목적은 사자의 사후 부활이다.

이집트인들이 사자의 서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부분은 무덤 앞에서 행해지는 사자의 입을 여는 의식이다. 입을 여는 의식은 사자가 먹고 마시고 생각하고 말하며 움직일 수 있도록 신관들이 힘을 부여하는 의식으로 사자로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장례 절차로 자리매김되었다.

이집트인들이 매우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는 것은 입을 여는 의식이 왜 중요한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이 죽고 나면 미라로 만들어지는데 주문의 힘으로 사자를 재생시킨다고 하더라도 아마포로 감싸진 붕대를 사자 스스로 풀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아마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사자의 입을 여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죽은 자를 위한 하인 우샵티>

이집트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자가 죽은 후 환생했을 때 부릴 하인들을 주문으로 불러오는 의식이다. 죽어서도 고관은 고관이고 귀족은 귀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죽을 때 반드시 하인 대용으로 유샵티나 샤웁티라고 불리는 인형들과 함께 묻혔다. 사자가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집트인들의 실용주의적 세계관은 여기서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죽은 후에 부릴 하인들을이 필요하다고 해서 고대의 다른 나라에서처럼 사람을 죽여서 함께 묻는 순장(殉葬)제도가 나타나지 않는다. 즉 초기 1, 2왕조 시대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고 추정한다.

사자의 서는 대부분의 파피루스에 기록되어 있으며 관 속에 들어있거나 미라를 감싸고 있는 천 속에 끼워진 채 발견되었다. 그중 사자의 서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42명의 신들 앞에서 살아생전에 이러이러한 나쁜 일들을 하지 않았다부정고백의 내용을 적은 부분이다.

 

우샵티(샤웁티)

인간의 영혼이 오시리스 법정에 도착하면 사자는 오시리스 앞에 서서 법정의 양측에 있는 42명의 신들에게 일일이 생전에 행했던 자신의 죄과를 모두 실토하는 부정고백을 해야 했다. 42의 신들은 각자 응징할 죄목을 부여받고 있으므로 사자는 이들 42명을 모두 이해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제일 우선순위의 부정고백은 살아생전에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고 강도나 도둑질을 하지 않았으며 사람을 살해한 적이 없다는 고백이다. 특히 신전에 바쳐진 물건을 훔치지 않았으며 신을 저주하거나 경멸하고 신의 소를 살해하지 않았음을 고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그 다음으로 간음하거나 사악한 말을 하지 않고 사람을 속이지 않는 것도 사후 다시 태어나는데 있어 중요한 문제였다. , 이집트인들의 젖줄인 나일 강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도 중죄였다.

사자가 42명의 신들에게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살았다고 고백한 후 심판을 받아 통과되면, 영혼의 지배자인 호루스 신이 사자의 손을 잡고 오시리스의 옥좌 앞으로 데리고 간다. 이때 사자의 서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이 벌어진다. 바로 사자의 심장을 재판하는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영혼만큼 중요한 것이 양심을 상징하는 심장아브(Ab)'라고 생각했다. 사자는 자신의 육체에서 심장을 떼어내어 양심을 재는 저울에 올려놓고 계량해야 했다. 저울의 오른쪽에는 아누비스와 토트 신이 서 있고, 그 뒤에는 무엇이든 먹어치우고 마는 괴물 아무트(Ammut)가 사자의 심장을 노려본다. 아무트는 행실이 나쁜 사자의 심장을 먹어치우는 것이 그 임무다.

죽은 자의 심장은 진리의 신 마아트를 상징하는 깃털과 비교하여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사자가 생전에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무죄가 증명되는 것이다. 만약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우면 아무트가 잡아먹거나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로 떨어진다. 이 같은 절차가 무사히 끝나면 이제 오시리스를 알현하기 위한 마지막 판결이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토트 신이 사자가 오시리스의 법에 합당하다는 것을 선포하면, 사자가 그 뒤를 이어 자신이 말이나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선포한다. 그리고 신과 인간의 재물에 정직하게 대한다는 것을 선포하며, 마지막으로 신에 대한 불경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이 절차가 끝난 후 사자는 드디어 오시리스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오시리스는 사자가 모든 절차를 무사히 통과했음을 보고받고, 사자에게 케이크와 음료를 마시게 하고 자신의 옆에 있도록 허락한다. 그리고 사자는 태양신 라와 함께 내세의 천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기 때문에 라의 배에 승선한다. 이것으로 사자의 서 역할이 끝난다. 아울러 그동안 사자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공포가 사라지고 내세의 즐거운 여행이 시작된다.

이집트인들이 심장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미라를 만들 때도 시신에서 심장을 꺼내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장이 곧 영혼이 사는 곳이자 인간의 본성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즉 심장이 없다면 미라가 부활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그런가 하면 미라와 함께 쇠똥구리 형태의 스카라베를 함께 부장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종교적 기록에는 쇠똥구리 앞다리로 태양과 달의 원반을 쥐고 있는데, 스크라베가 태양과 달을 의미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집트인들에게 중요한 대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집트인들은 살아있을 때 지은 죄가 모두 심장에 기록된다고 믿었는데, 쇠똥구리는 죽은 사람의 죄가 적혀있는 심장을 감추어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집트 사람들은 거의 모두 쇠똥구리 모양의 스키라베를 항상 목에 걸고 다녔다. 쇠똥구리는 태양이 매일 떠오르는 것처럼 부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