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21) : 이집트의 영광(2)

Que sais 2021. 3. 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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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셉수트의 장제전은 기존의 신전 건축 양식, 파일론 중정 파일론 중정 다주실(多柱室)로 연계되는 양식에서 벗어난다. 파일론 즉 탑문을 세우지 않고 그 자리에 횡으로 길게 연결된 열주실 (Portico)로 대체했으며 그 위로 삼단의 테라스를 두었다. 각 테라스는 중앙에 설치된 긴 램프를 통해 서로 연결된다. 정원전문가 고정희 박사의 글을 참조한다.

 

열주실과 테라스

열주실과 테라스는 장제전을 돋보이게 하는 기본이라 볼 수 있다.

가장 하부 열주실 양쪽 가장자리 기둥에 각각 거대한 하트셉수트의 입상이 서 있었는데 현재는 우측에 하나만 남았다. 중앙의 램프에 의해 열주실이 각각 좌우로 구분된다. 왼쪽의 열주실을 오벨리스크 홀이라 하는데 이곳 벽에 아스완에서 오벨리스크를 제작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른쪽의 열주실은 수렵홀로서 여왕이 물새와 물고기를 사냥하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상부 테라스에 다시금 열주실이 횡으로 길게 연속되어 있다. 이 역시 램프에 의해 좌우로 나뉘며 왼쪽이 푼트홀로서 유명한 푼트 원정 장면을 상세히 묘사했다. 오른 쪽 열주실은 소위 탄생홀로서 여왕의 탄생 설화가 묘사되었다.  푼트 홀의 좌측에는 하토르 여신의 신당이 별도로 자리 잡았으며 탄생홀 우측에는 아누비스 신당이 있다.

여기서 또 다시 램프를 따라 올라가면 마지막 테라스에 당도하는데 이곳의 열주실은 사방을 이중의 주랑으로 두르고 중앙에 포장된 마당이 배치되어 있다. 정면 입구의 26개의 기둥 앞에 각각 여왕의 입상 26기가 서 있었다고 알려진다. 그중 일부는 지금도 잘 보존된 상태로 볼 수 있다.

주랑을 통과하여 중정으로 진입하는데 이곳을 통과하면 뒤편에 깊숙이 자리잡은 아몬 신의 성역에 당도하게 된다. 우측에 태양신의 신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좌측에 하셉수트와 투트모세 1세의 신당이 있다.

 

하셉수트 장제전

 

여신 신당

이층 테라스의 가장 왼쪽에 하토르 여신의 신당이 있는데 신당은 주랑 현관을 통해 진입한다. 네 개의 기둥과 좌우 벽이 서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역시 표면이 모두 부조로 장식되어 있으며 내부에 전실 베스티블(Vestibule)이 자리 잡고 있다.

벽에 하토르 여신이 암소의 형상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후면 벽에 하토르 암소 하셉수트 여왕의 손을 핥고 있는 장면이 그려졌다. 하토르 여신을 하셉수트의 어머니로 정의하는 텍스트가 적혀있었는데 후에 이를 모두 지우고 투트모세 3세의 이름이 나타난다.

아누비스 망자를 미라 형태로 만들었다.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신이며 인체에 자칼의 머리 형상을 하고 있다. 18, 19왕조의 대표적인 신인데 아누비스 신당의 입구는 12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주랑 현관으로 조성되었다. 내부의 벽화는 모두 아누비스 혹은 죽음을 관장하는 여러 신 중 가장 오래된 신인 세케르 등에게 공양하는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하셉수트와 투트모세 3세의 상이 공존하는데 하셉수트의 상은 대부분 훼손되었다.

 

성역

성역은 세번 째 테라스에서 전실을 통하여 접근이 가능하다. 중정형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거대한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전실의 벽에는 일몰에 해가 져서 일출에 다시 올라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중정의 벽은 아무 장식이 없다.

이곳에 하트셉수트 사당이 위치하는데 둥근 천정을 얹었으며 입구에서 마주 보이는 곳에 화강석 석비가 있다. 전실을 통과하여 성역으로 진입하는데 성역의 벽에 장식되어 있던 그림들은 모두 훼손되었다.

거대한 화강석 문을 통과하면 아몬신의 첫 번째 내실에 도달한다. 이곳에 하셉수트 상이 2구가 서 있으나 머리가 파괴되었다. 이곳에서 진입하는 내실에 아몬상이 있다.

둥근 천정, 사방 벽에 네 개의 벽감이 있다. 벽에는 두 개의 창문이 뚫려 있어 새벽에 첫 햇살이 성역의 아몬 신상을 비추게 되어 있다. 측면으로 각각 작은 내실들이 더 마련되어 있으며 아몬신과 투모세스 1세의 모습과 제례를 치르는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정원

나일 강에서 대로를 따라 올라오면 우선 대형 광장에 진입하는데 이 광장에는 아몬호테프 2세의 장제전과 마찬가지로 중앙축을 중심으로 양쪽에 정원을 두었다. 이 정원의 핵심은 좌우 대칭으로 축의 양변에 배치된 T자형 연못이다. 연못은 각각 길이 10 미터, 폭은 좁은 곳이 2.6미터 가장 넓은 곳이 6 미터다. T자 형은 운하를 본뜬 것으로서 폭이 좁고 긴 구간에 식물을 심고 기르기가 용이하다. 점토로 채워졌으며 파피루스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연못의 양쪽으로 모두 66개의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구덩이 깊이는 3미터다. 다양한 식물종의 흔적이 발견되는데 학자들은 이 정원에 푼트에서 수입해 온 몰약을 얻는 코미포라 속의 나무를 재배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연못에서 발견된 자기 화분에 파피루스 뿌리가 남아 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이 곳에서 연못 수렵장면을 재현하는 의식을 치렀을 것으로 보고 있다파피루스 숲에서의 수렵 장면은 네크로폴리스의 수호 여신 하토르를 기리기 위한 의식을 뜻한다. 하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에는 하토르 여신을 모시는 사당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이집트 석묘를 장식하는 그림이나 사자의 서에 파피루스 사이에서 암소의 형상을 하고 나타나는 하토르 여신의 모습이 자주 묘사되어 있다. 2층 테라스 앞의 광장에도 정원을 조성하려는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몇 개의 구덩이가 간헐적으로 발견되었는데 이 구덩이가 하셉수트 여왕 대의 것인지는 아직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시바여왕 전설>

근래 매우 놀라운 가설이 제기되었다. 기독교 사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루살렘의 솔로몬왕과 만난 시바여왕이 사실은 푼트를 여행했다는 이집트의 하셉수트 여왕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셉수트 여왕이 학자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전설의 땅인 푼트로 대여행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료에 의하면 푼트 지방은 이집트에서 멀지 않은 동쪽에 있는 땅이다. 푼트는 기원전 2450년경 사후레 왕에서 람세스 3(기원전 1170년경)까지 적어도 1300년 동안 이집트와 정기적으로 교역했다.

푼트에 관해 현대 학자들이 갖고 있는 지식은 그림정도인데 자료에 의하면 금과 향기 나는 수지, 고급 목재, 상아, 기린, 원숭이, 비비와 같은 야생동물 등 이국적인 산물이 생산된다. 또한 푼트 주민들은 적갈색 피부에 외모가 뛰어났다고 전한다. 초기의 그림에서는 사람들의 머리털이 길지만 후대인 18왕조부터는 짧게 깎은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일부 학자들은 솔로몬이 맞이한 시바여왕이 사실은 하셉수트여왕일지도 모른다고 추정한다.

시바의 여왕’.

미인의 대명사로 혹은 현명한 통치자의 대명사로 쓰이는 말이다. 시바 여왕의 이야기는 구약성서<열왕기상> <역대기하> 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우선 시바여왕은 수많은 이름을 갖고 있다. 마케다(Makeda), 아제브(Azeb), 빌키스(Bilkis), 발마카(Balmaka), 니카울리스(Nikaulis), 칸다케(Kandake), 시빌라(Sibilla) 등이 모두 시바의 여왕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열왕기상>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

 

시바 여왕솔로몬의 지혜를 시험해 보려고 여러 가지 어려운 수수께끼를 가지고 찾아왔다. 시바여왕은 많은 수행원과 함께 향료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잔뜩 싣고 직접 예루살렘으로 찾아와 준비해 가지고 온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솔로몬에게 물었다. 그러나 솔로몬이 대답하지 못한 문제는 하나도 없었다. (중략) 솔로몬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들, 서열대로 식탁에 앉는 신하들, 화려한 예복으로 단장한 시종들,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는 엄청난 번제물 등 이런 모든 광경을 눈앞에 확인한 시바 여왕은 너무 놀라서 넋을 잃을 정도였다. (중략) 그리고 시바 여왕은 가져온 120탈란트의 금과 많은 향료와 보석을 솔로몬에게 선물을 주었다. 이때에 받은 향료가 얼마나 많은지 솔로몬은 두 번 다시 그런 향료를 구경하지 못하였다. 솔로몬도 시바 여왕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는데 그가 왕으로서 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많이 주었다. 그러자 시바 여왕이 신하들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갔다.’

 

<역대기하>의 내용도 다름없는데 성경의 두 가지 이야기는 이 여왕이 매우 부유했다는 것을 설명해주는데 그치고 있다. 성경의 기본과는 달리 당대의 여왕임에도 이름, 용모, 인종과 나라에 대해 언급이 없다. <마태복음>에도 예수가 남방의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었다라는 말 뿐이다.

학자들은 성서의 이야기들이 문자로 기록된 것은 대체로 철기시대 말부터 페르시아와 그리스가 근동 지방을 다스리던 기원전 600년경부터 200년경으로 인식한다. 이들 이야기들이 놀랍게도 계속 살아남아 3대 유일신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