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22) : 이집트의 영광(3)

Que sais 2021. 3. 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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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여왕은 우리의 조상>

시바 여왕의 탄생지를 놓고 에티오피아와 예멘이 서로 연고권을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이와 같이 두 곳에서 서로 연고권을 주장하는 것은 성서의 해당 구절로만으로는 현대의 정확한 지역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서에는 아프리카에 있는 세바(Seba)’라는 곳이 나오는데 이곳은 쿠시(Cush) 에티오피아를 가르킨다. 에티오피아는 악숨이란 지역을 통치한 마케다 여왕을 시바의 여왕으로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에티오피아 인들은 그녀가 이곳의 왕국을 통치하였고 예루살렘의 솔로몬 왕을 만나러 간 장본인이라고 주장한다.

1974년 군인들에 의해서 왕위에서 축출된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재위 19301974)는 자신이 바로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직계로 제235대 후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솔로몬과 시바 여왕 사이에 메네리크라는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가 기원전 1270년에 세워진 에티오피아의 솔로몬 왕조의 선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대관식은 시바의 후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자리다.

셀라시에는 대관식 때 칼을 부딪치고 북을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를 들으며 2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는 옛 수도 악숨의 관문으로 말을 타고 도착한다. 이곳에서 셀라시에는 콥트파 기독교의 십자가 아래에서 상징적인 끈을 자르며 나는 다윗과 솔로몬, 그리고 이브나 하킴의 아들이다.‘라고 선언했다. 이브나 하킴현자의 아들을 뜻하는 말로, 솔로몬과 시바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전설적인 아들 메네리크의 별명이다. 1931년에 제정된 에티오피아 헌법에는 솔로몬 왕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 태어난 아들 메네리크의 직계 자손이 에티오피아 황제다라고 명기되어 있다.

원래 시바라는 나라는 홍해에 접한 아라비아의 왕국 중의 하나였다. 시바달의 신을 최고신으로 섬기는 종교를 갖고 있었으며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체제를 취하고 있었다. 유향과 몰약이 많이 생산되었으며 이것이 시바의 부를 지탱해 주었다. 시바 왕국이 번영하기 시작하자 홍해를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던 에티오피아의 에리트레아 지방에도 시바인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시바여왕과 솔로몬

기원전후에 시바인들이 세운 에티오피아 왕국이 악숨 왕국이고 그 수도가 악숨이었다. 홍해를 거쳐 인도나 중국과 지중해 연안을 잇는 유리한 입지적 조건을 갖고 있던 악숨 왕국도 시바 왕국과 마찬가지로 번창하였는데 시바와 악숨 왕국이 한때 통합되었다는 강력한 증거도 있다.

악숨 왕국은 기원 1세기경 익명작가가 지은 에리뜨레 대항해(Periple de la mer d'Erythree)에 잘 설명되어 있는데 그는 여러 항구에서 어떻게 상업이 이루어지는 가를 자세히 묘사했다. 그는 인도, 로마, 그리스, 이집트 등지로부터 수많은 상품과 물건들이 이 항구에서 거래된다고 적었다. 당시에도 남아라비아 식민 개척자들과 본토 원주민들의 모습을 반반씩 지닌 악숨 왕국 인들은 아프리카 인들과는 매우 다르다고 적었다.

홍해에는 바다의 폭이 약 8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좁은 곳도 있으므로 양쪽 해변에 거주하는 사람들 간에 오랫동안 왕래가 있었다. 에티오피아에는 시바인들이 건설하였다는 궁전, 시바 왕이 달의 여신에게 바쳤다는 신전, 왕의 묘, 번영의 기틀이 되었던 대저수지의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렇게 보면 에티오피아인들이 시바의 여왕에 그토록 애착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예멘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일부 학자들은 성서의 구절을 볼 때 철기 시대에 아라비아 남부 지방에 있었던 사바(Saba)왕국을 뜻한다고 주장하는데 현재의 예멘지역이다. 예멘은 마리브 지역을 통치한 빌키스 여왕이 진짜 시바의 여왕이라는 것이다. 코란에는 빌키스 여왕이 이곳의 왕국을 다스렸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주민들은 그녀의 무덤이 곧 마리브에서 발견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예멘의 관광포스터 제목은 아예 시바 여왕의 땅이다. 또한 마리브의 여행 가이드에는 시바 여왕이 마리브의 고대 댐을 세웠고 그녀의 이름을 딴 두 개의 사원이 남아 있다고 적혀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유적들을 근거로 하더라도 시바 여왕이 두 나라 중 어느 나라의 여왕이었는지 결론내리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다.

 

<시바여왕은 이집트인>

가장 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시바에 대한 언급은 풍부한데도 시바 여왕에 대한 자료가 두 나라에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시바여왕은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여인 중 한 명으로 설명된다. 여왕이 도착하였을 때는 솔로몬의 거대한 사원과 예루살렘의 왕궁이 완성되어 있었고 이스라엘은 사상 최대의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다. 뛰어난 지혜를 갖춘 솔로몬은 그녀가 질문한 수수께끼를 모두 풀어 그녀가 가지고 온 선물을 손에 넣었다. 그것은 120달란트(2,4004,180킬로그램으로 학자들은 이 숫자가 과장되었다고 추정)의 돈, 향료, 수 톤에 이르는 백단향이었다. 백단향으로 솔로몬은 여호와의 신전왕궁의 벽기둥, 그리고 연주가를 위한 하프를 만들게 하였다.

시바의 여왕에 관한 이야기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신화의 매혹적인 일례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생명력은 흥미 요소 뿐만은 아니다. 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당대에 대규모 원거리 교역로의 존재를 시사하기 때문이다. 여왕이 솔로몬에게 최고급 향료를 비롯한 사치품들을 바쳤다는 것은 기원전 1000년경에 이미 세계가 원거리 교역을 시작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에서 향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고대에서 향료라 불리는 것은 당대에 가장 귀한 것 중 하나로 근동 및 지중해 지방에서 신들의 제단 위에서 사르는 향을 말한다. 당대에 향료는 금만큼이나 비싼 물질이었다.

시바의 여왕이라는 이야기에는 이 이국적인 진상품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여왕은 솔로몬에게 시바의 산물인 향료와 몰약을 전하는데 제단에서 향불을 피우는 데 쓰일 만큼 수액이 향기로운 나무가 생산되는 곳은 남아라비아와 에티오피아 변경 지대 뿐이다. 이 두 지방은 역사적으로 긴밀히 얽혀 있으며 불과 25킬로미터 수역에 의해 나뉘어 있다. 예멘과 에티오피아가 나름대로의 증거를 갖고 시바의 여왕을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근거다.

에티오피아인들이 시바 여왕을 자신들의 선조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시바 여왕이 향료와 황금, 보석 등 모든 값나가는 물건을 솔로몬에게 주자 그 보답으로 솔로몬은 그가 왕으로서 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많이 주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이 시바 여왕과 솔로몬 관계에 대한 수많은 낭만적인 해석의 근거가 된다. 저의 소원대로 무릇 구하는 모든 것은 여왕이 솔로몬의 아이를 갖기를 원했다는 의미로 풀이되었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인 전설은 다음과 같다. 솔로몬은 시바 여왕에게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그러나 시바 여왕으로부터 구애를 거절당한 솔로몬은 그녀가 시바 왕국으로 귀국하기 전날 밤에 오늘밤 나의 소유물에 일체 손을 대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을 포기하겠다고 하였고 그녀도 이 제의를 승낙하였다.

작별 연회에 솔로몬은 향신료가 잔뜩 들어간 요리만 내놓도록 명령하였다. 연회가 끝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여왕은 갈증으로 목이 마르자 무심코 방 안에 있던 물을 마신다. 이때 솔로몬이 나타나 시바 여왕이 자신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어겼음을 상기시켰고 결국 두 사람은 하나로 맺어지게 되었으며 10개월 후에 아들이 태어났다.

이 소년이 성장하여 아버지를 만나러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는 솔로몬의 환대를 받았으며 거기서 히브리 율법과 신앙을 공부했다. 그가 귀국하려 하자 솔로몬의 제사장이 그에게 기름을 부어 에티오피아의 초대 황제로 임명했다. 바로 그가 메네리크 1인데 솔로몬은 그를 귀하게 여겨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그로 하여금 십계명이 든 법궤를 지고 메네리크 1세를 동행하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여하튼 악숨에서는 시바의 여왕을 자신들의 역사적 인물임을 주저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시바 여왕에 대해 설명한다.

 

기원전 4370년 악숨은 에티오피아 왕들의 수도였다. (중략) 이 문명은 시바의 여왕이 다스리는 동안 외국과의 교역, 행정, 종교, 기타 사회 제도 덕분에 특히 융성했다. 기원전 1000년 무렵 시바의 여왕은 성서에 나오는 솔로몬 왕과도 좋은 외교 관계를 이룩했다. 그리스도가 탄생하기까지 아가즈 부족에서 나온 62명의 왕이 그녀의 뒤를 이어 다스렸다. 기원전 4370년 이후 총 255명의 왕이 다스렸으니 그 시초는 이집트의 파라오들보다도 더 오래되었다.’

 

에티오피아인들이 자랑스럽게 이집트보다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적었지만 학자들의 엄밀한 검증에 의하면 악숨이 그다지 오래된 도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악숨은 알렉산더 대왕이후 세계가 개방되자 태어난 도시로 추정한다. 한마디로 600700여 년이나 차이 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