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27) : 이집트의 영광(8)

Que sais 2021. 3. 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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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르나 예술>

현재 아케나톤이 건설한 텔 엘-아마르나는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워낙 거대한 도시로 철저하게 파괴했다고 하지만 파괴된 잔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해 1,000평이나 되는 거대한 재상의 주택 유적지도 발견되었으며 아케나톤이 건설한 3개의 왕궁 중 하나의 왕궁 잔해에서 상형문자가 적힌 토기판도 수백점이 발견된 것이다.

이 문서의 상당수가 현재 카이로 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집트 제국이 아케나톤에 의해 붕괴되었다고 적혀있다. 이들 복원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텔엘-아마르나가 본 모습을 되찾는다면 세계인들이 또 다른 이집트의 이미지를 받을 것임은 틀림없다.

고대 이집트의 놀라운 점은 3000년이란 장구한 시기 동안 기본적인 삶의 형태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거대한 이집트의 건축물과 예술품들에 잘 그려져 있다.

이집트인들은 (ka), 즉 생명의 힘은 영원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믿음이 죽은 자의 영혼이 계속 머무를 수 있는 장소인 무덤과 미라에 집중되었다. 사실 죽은 사람을 위한 미라를 보고 그들이 언젠가 다시 현실에서 나타날 것으로 진정으로 생각한 이집트인들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집트인들은 그런 믿음을 으로 생각하고 이를 변경하려 생각지 않았다.

이런 내용이 이집트 예술에 모두 함축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이집트인들은 어떤 사물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아름다움이 아니라 완전함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그림에 들어가야 할 모든 것을 아주 분명하게 표현하는 엄격한 규칙과 영원한 보존을 미술가의 과업이라고 여겼다. 즉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갖고 있는 그 무엇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먼저 이집트인들은 현실 세계의 생동감보다 사후세계의 영원한 삶을 중시했기 때문에 인체가 좌우로 평형을 이루는 부동성에 역점을 두었다. 그것은 인체의 중앙선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는 정면성의 법칙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이집트인들은 대상을 상세하게 표현하기보다 대상의 본질적인 면을 강조했다. 그것은 나중에 카가 돌아와서 식별할 수 있도록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분들을 생략하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이집트인들은 하나의 고정된 시점보다 여러 시점에서 대상을 파악해 눈에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기보다 대상을 완전하게 표현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즉 이집트인들은 인물의 특징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 부분을 각각 떼어서 분리한 후 다시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추구했다. 한마디로 초상화와 조각상의 인체를 엄격한 공식에 따라 묘사했다는 뜻이다.

사실 예술에서 잘 그린 그림은 실제로 보이는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것이다. 하지만 이집트의 그림은 이와는 거리가 있다. 이런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은 사자의 서의 그림이다. 이 그림은 죽은 자가 이상세계로 갈 것을 빌고 있는데 그림속의 물건과 사람들을 화면에 나란히 배열하는 평면적인 공간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인물은 분명 옆모습을 그린 것 같은데 부자연스럽다. 얼굴은 측면, 몸은 정면, 발은 다시 측면으로 두 발은 엄지발가락을 앞쪽으로 드러나게 그렸다. 이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규칙을 적용하여 그린 것이다.

헤지레의 초상이집트인들의 생각이 인체의 표현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머리는 측면에서 볼 때 가장 쉽고 정확하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옆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사람을 볼 때 가장 먼저 눈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그림은 측면 얼굴에 정면에서 바라본 눈이 그려져 있다. 또한 이집트인들은 양쪽 발의 시각화를 가장 어려워했는데, 이 그림은 엄지발가락에서 위쪽으로 연결되는 발의 윤곽선을 분명하게 그렸다.

네바문은 기원전 1400년경에 살았던 인물로, 서기관 겸 곡물을 관리하는 재상이다. 그의 무덤에 그려진 벽화에서 왕족이 아닌 일반 상류층의 생활상과 내세관을 엿볼 수 있다는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네마문의 정원

네바문의 정원바문이 생전에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무덤의 벽에 그려놓은 작품인데 이집트인의 엄격한 규칙을 잘 보여준다.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린 작품으로 그림 중앙에 있는 오리와 물고기의 몸은 모두 측면이지만 눈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나무 또한 측면으로 그렸다. 전체적인 정원의 풍경은 한 시점이 아닌 여러 시점에서 그린 것이다.

나무들의 생김새와 특징은 측면에서 보았을 때 명확하고, 연못의 형태는 위에서 보았을 때 분명하게 나타난다. 또한 연못에는 오리와 물고기 등이 노닐고 있고, 열매를 매단 나무들이 연못을 중심으로 둘러서 있다. 이집트인들은 나무는 측면, 연못은 위에서 내려다 본 것, 연못 속에 있는 물고기와 새들은 옆모습에서 본 것으로 그림으로써 모든 사물의 특징들이 잘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이집트 색채도 회화적 구성요소들을 선별하는 상징적인 모방원리에 따랐다.

이집트의 고유한 채색염료들은 염료 자체가 도발적이거나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흰색은 피부 색조를 교정해 주었고, 빨간색은 뺨에 생기를 돌게 하였으며, 푸른색은 이마를 강조했다. 신성을 나타내거나 검정과 초록색처럼 생명의 색채를 대신하는 색들도 구사했다.

이들 지식은 3000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장인들의 전통을 통해 계속 전해졌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실생활에서 필요한 계산이나 측량조사를 위한 수학, 달력의 작성이나 점성술적 예언을 위한 천문학, 병을 고치고 악령을 몰아내는 용도로 의술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했다. 그러나 그들은 화학기술, 야금술, 염색법 등의 지식에 관해서는 기록하지 않았다. 이는 이들 기술이 장인의 전통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구전되는 것이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1100년 경 아버지가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어떤 중노동도 하지 못하도록 부디 마음을 단단히 먹고, 평이 좋은 관리가 되기 바란다. 서기가 되면 손으로 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명령도 내릴 수 있다. 나는 아궁이 옆에서 악어와 같은 손으로 일하는 주물공을 알고 있는데, 그 녀석에게 구더기보다 더 고약한 냄새가 난다. 나는 여태까지 관청의 위원으로 임명된 대장장이가 있었다는 말을 들은 일도 없고, 사절로 임명된 주물공을 만난 적도 없다.’

 

이는 당대의 관리와 장인 간에 현격한 장벽이 존재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집트의 예술을 담당한 장인들은 엄격한 규칙들을 어려서부터 배워야만 했다. 정확한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만이 가장 뛰어난 미술가로 추앙되었고, ‘새로운 것또는 독창적인 것은 그들에게 유용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남녀의 좌상, 신의 모습을 엄격한 규칙에 따라서 그렸고, 또한 상형문자의 형상과 상징을 명확하고 정확하게 기록해야 했다. 인물의 크기는 신분에 따라서 당연히 달라졌다. 즉 파라오는 거인처럼 묘사되었지만 여자와 신하들은 난장이처럼 그렸다.

그런데 아케나톤은 바로 이러한 이집트의 엄격한 규칙을 파괴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바로 아르마나 예술이다. 그는 왕의 얼굴이 법칙에 의해 그려지던 것을 파괴하고 인간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하도록 했다. 왕과 왕비의 크기와 피부색은 원래 다르게 표현되었으나, 동일하게 그려졌다.

이를 아마르나 예술(Amarna art)로 부르는데 아마르나 시대에 채택된 스타일이다.

아마르나 예술은 이집트의 반항아 아케나톤의 신에 대한 종교개혁에 의하여, 예술 방면에도 새로운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그 때까지의 유형적(類型的)·정신적인 묘사에서 벗어나, 원근법에 기초한 선화법(線畵法)을 취한 사실적·동적인 묘사를 개척했다. 아마르나 왕국의 벽이나 묘지에 조각, 채색된 왕·가족의 초상·왕비 네페르티티의 채색된 흉상은 물론 호렘헤브의 유품 등은 아마르나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아케나톤의 조상은 그동안 많은 학자들을 고민케 만들었다. 이집트의 장구한 역사동안 조각상과 부조들은 엄격한 규정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조각가들의 환상과 예술성 자유는 철저하게 규제되었다.

특히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명령에 따라 신상을 만든다는 것은 대단한 격식을 요구하는데 아케나톤은 이를 완전히 파괴한다. 일부 학자들은 아케나톤의 조상을 보면 혐오스러운 파라오를 직접적으로 보고 있다는데 경악한다. 이는 아케나톤의 조각이 일반적인 미의 상징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가늘고 길꾹한 상체가 볼썽사나운 엉덩이 위에 걸쳐있다. 인위적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기다란 얼굴 형상은 거의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조각상 중 학자들을 더욱 놀라게하는 것은 심지어 성별을 분별할 수 없는 파라오의 벌거벗은 형상이다.

아케나톤이 무슨 의도로 이런 조각상을 만들도록 했는지 학자들이 헷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왜 파라오인 그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양성으로 표현하는 것조차 허락했는가이다. 이 질문에 대해 19세기 베를린의 고고학자 리하르트 렙시우스 박사는 아케나톤이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한편 일부 프랑스 학자들은 그가 거세된 남자라고 말했다. 그의 특이한 머리형태는 뇌수종 병에 걸린 것으로도 추정된다.

근래 나온 설명은 아케나톤이 이들 조각상을 아버이자 동시에 어머니로 표현하려 했기 때문에 두드러진 성기의 묘사를 피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그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기를 원했으므로 두 가지를 원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집트에 존재하는 모든 남성과 여성 신은 이 신처럼 하나였다는 뜻이다.

이러한 변형된 형상은 조각상의 모범이 되었는데 이집트 사상 가장 아름답다는 네페르티티 조각상 역시 아름답지 않은 모습으로 조각된 것이 많이 있다. 신전에 있는 500여개의 네페르티티의 조각상도 아름답지 않은 모습으로 그렸는데 이는 엄격하게 전승된 규정에 의해 제식을 거행해야 하는 제사장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