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49) : 피라미드 건설(10)

Que sais 2021. 3. 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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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피라미드 건설 이유>

시간이 지날수록 피라미드에 대한 전설과 과장된 이야기는 봇물을 이루었다.

고대에 몇몇 거대한 피라미드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개방까지 했는데 피라미드가 건설된 곳은 바람에 날려 모래들이 쌓일 수 있는 곳이므로 모래가 입구를 막아버리면서 피라미드에 대한 지식마저 덮어버렸다. 이는 기원후 4세기경 상형문자 사용이 금지되면서 고대 이집트 문화를 이해하는 마지막 열쇠조차 사라졌다.

이는 종교적인 문제도 개입한다.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도 고대 이집트의 다신 숭배를 거부하며 우상 파괴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의 대피라미드들은 존재하면서 사후세계에 대한 이집트의 수수께끼와 같은 명백한 기호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대피라미드가 매혹적이기는 하지만 피라미드들을 건설한 주인들의 이름이 잊혀진 것은 물론 파라오의 무덤이라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피라미드에 대한 수많은 유언비어들이 난무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피라미드가 곡식창고라는 것이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파라오를 위해 건립케한 곡식창고라는 것이다. 풍년이 든 7년 동안 식량이 모자란 시기에 대비해 곡식을 비축하려 했다는 것인데 이들 곡식창고에 대한 상상도는 12세기 베니스의 산마르코 성당모자이크로 그려졌을 정도다.

중세시대에 피라미드를 환상적인 건물로 인식하는 데는 아랍의 전설에도 관련된다. 이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는 구약성서의 노아의 홍수와 유사하다.

 

두 피라미드를 축조한 계기는 홍수가 나기 300년 전 사우리드 파라오가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사는 땅이 진동하면서 뒤집어지자 다른 사람들은 서둘러 도망쳤다. 별들이 땅으로 떨어지고 끔찍한 굉음을 내며 서로 충돌했다.’

 

놀라운 꿈에 깜짝놀란 사우리드 파라오는 현인들로 하여금 꿈을 풀이하라고 하자 그들은 홍수가 먼저 나고 다음에 큰 화재가 일어나 나라가 멸망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국가가 멸망한다는데 가만히 있을 파라오가 아니다.

 

사우리드 파라오는 곧바로 피라미드를 건설하라고 명령했다. 또한 피라미드에 부적, 경이로운 물건, 보물과 우상을 가득채웠다. 또한 피라미드 천장과 벽면, 기둥 등에 모든 비술을 적었고 모든 행성의 그림도 그렸다. 또한 치료제들의 이름과 효능, 부작용과 산술, 기하학에 대한 전문지식 등도 기록했다. 이것은 그 문자와 언어를 아는 사람만 해독할 수 있다.’

 

이 기록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피라미드에 환상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한마디로 피라미드에 수많은 공간에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보물들이 부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세기가 되어 과학이 거세지자 피라미드를 학문적인 시각에서 보기 시작했다.영국의 존 그리브스(John Greaves, 16051652)17세기 사람답지 않게 피라미드가 파라오의 무덤이라고 과감하게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발표에 그치지않고 직접 피라미드를 방문하여 당대의 최고 기자재로 정확하게 측량했는데 현대에 비해서도 놀랍게도 정확했고 추후 학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예수회 회원인 클로드 시카르1707년부터 1726년까지 이집트를 여행하며 상당히 규모가 큰 피라미드 20여 개를 그렸는데 그중 몇몇은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피라미드 연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따른 학자들의 연구다.

이들의 연구는 상당한 파장을 갖고 왔는데 당대에 매우 파격적인 결론을 내렸다. 피라미드가 비밀스러운 성인식과 고대 비밀 종교의식의 입회를 위한 사당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완전히 다른 길을 간 것이다.

여하튼 피라미드를 왜 지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해서 아직까지 어떤 확정된 결론이 내려진 것이 없다는 것에 놀랄 것이다. 사실 4500년 전에 건설된 피라미드를 놓고 건설 목적을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지만 피라미드가 거대한 해시계 즉 천체관측소라는 것은 많은 지지를 받았다.

1853년 기자를 방문한 프랑스의 장 바티스트 비오는 쿠프의 대피라미드를 거대한 해시계라고 발표했다. 피라미드가 시간을 기록할뿐만 아니라 날짜, 계절, 나아가 세기(世紀)까지 알려주는 시계라는 것이다.

피라미드 북면과 남면에 인접한 지면에는 폭이 넓고 수평을 이룬 포장된 바닥, 일명 그림자의 바닥이 만들어져 있다. 겨울에는 피라미드의 그림자가 북쪽 바닥에 생기고 여름에는 매끈한 피라미드 남면이 남쪽 바닥 위에 삼각형의 햇빛을 반사시킨다.

 

피라미드 건설

이들 바닥에 깔린 브록에는 매일 정오의 그림자 또는 반사광이 그 전날의 그것과 차이 나는 만큼의 간격으로 눈금이 새겨져 있다. 이를 통해 춘하추동의 절기 구분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존 테일러1859거대 피라미드 : 왜 세웠고 누가 세웠을까?라는 매우 도전적인 책을 발간했다. 그는 우선 고대 이집트인들이 그러한 대규모 건축물을 건설할 능력이 없다고 단정했다. 결론은 일찍부터 신의 소명을 받고 영감을 얻어 피라미드를 축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서와 관련지어 피라미드 안에 성서의 내용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돌로 된 성서는 사실 인간의 다채로운 상상력에 의해 오늘날까지도 이어진다.

천문학자 리처드 A. 프록터는 대피라미드가 거의 완벽한 천문대라고 주장했다. 피라미드의 중심부로 내려가는 경사로의 각도는 2617분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정확하게 북극성을 가리킨다. 물론 고대 이집트인의 북극성은 현재의 북극성이 아니다. 북극성은 여러 천체작용으로 적어도 수천년마다 바뀐다. 현재의 북극성은 큰곰자리이지만 피라미드가 건조되던 무렵은 용자리가 북극성이었다.

프록터 박사는 또한 피라미드의 중앙 대회랑은 고대 이집트의 신관이 항성이나 행성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기록할 수 있는 이상적인 관측대 구실을 했다고 강조했다. 높이가 다른 회랑의 각층에 관측자들을 배치하여 당대의 천문학자가 각층의 출입구를 기준으로 항성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피라미드 형태가 태양 숭배와 관련 있다는 주장도 큰 호응을 받았다.

이집트학자인 홀 박사피라미드는 상부로 향하는 비밀통로 기능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피라미드가 파라오의 영생을 위한 신탁의 장소라는 것이다. 그 이유로 홀 박사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 내에서 신비스런 의식을 거친 후 선택된 사람들만이 신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을 들었다. 피라미드 안에서 3일 밤낮을 누워 있는 동안 (ka, 사람들 개개인의 영혼이나 본질)가 육신의 몸을 떠나 영혼의 공간으로 들어가야 신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피라미드 건설이 매우 중요했다는 것이다.

피라미드 건설 이유로 피라미드의 각 모서리는 구름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태양빛을 묘사하는 것으로 피라미드는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사다리를 표현한다는 주장도 있다. 즉 피라미드는 태양의 기념물이라는 주장이다. 매의 머리를 가진 태양신 의 숭배가 고대 이집트 종교의 중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1881년에 발견된 피라미드 텍스트인 우스나 파라오의 피라미드 석주(石柱)에는 하늘에 이르는 성스러운 계단 또는 사다리의 개념이 적혀 있다. 텍스트 267619에는 파라오가 하늘에 도달할 수 있도록 계단을 건설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기자의 경우 구름 사이로 태양빛이 비춰질 때 종종 대피라미드와 각이 똑같아진다. 기자의 대피라미드는 바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태양 광선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집트 고고학의 창시자로 인정되는 플린더스 페트리 경은 1883기자의 피라미드와 신전들이라는 책에서 피라미드에 대한 허무맹랑한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런 광신자들에게는 이론이 객관적 현실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발굴과 탐사 결과를 충실하게 기록해봐야 전혀 의미가 없다.’

 

20세기에 들어 성서의 해석을 토대로 피라미드를 설명하는 것에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되자 색다른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피라미드가 바람막이라는 것이다. 해마다 휘몰아치는 모래폭풍을 막거나 그 강도를 줄여 이집트인들을 보호하려는 용도라는 것이다. 다소 놀라운 주장은 피라미드가 내부의 수직 갱도를 거쳐 뿜어져 나오는 물을 증발시키기 위한 시설이라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나일 강 유역의 기후에 영향을 주면 이집트인들이 원하는 비를 내리게 해 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피라미드를 주민을 위한 거대한 식수 증류시설식수 필터로 보는 주장도 있었다.

이의 문제점은 나일강변에서의 비는 반길 사항이 아니라는 점이다. 도시와 집, 왕궁 등은 물론 상당 부분의 분묘시설이 점토벽돌로 만들었기 때문에 폭우가 내린다는 것은 건물의 파괴를 의미한다. 이는 보수작업과 고된 수리과정을 거쳐야하는데 굳이 피라미드를 건설하여 비를 내리게 한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 일임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