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89) : 이집트를 다시 본다(5)

Que sais 2021. 3. 16. 21:55

https://youtu.be/rG0bI8kz4OM

제드(후기왕조)

 

제드(Djed pollar)

제드인내를 뜻하며 미라의 동쪽에 놓였다. 학자들은 제드를 오시리스 부활을 재어하는 의식에서 들어올렸던 나무통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사자의 서에서는 제드를 사후세계에서 오시리스를 다시 일어 서게 하는 그의 척추로 언급하고 있다.

 

네페르툼(Nefertum)

멤피스 지역의 신인 프타(Ptah)와 사크메트(Sakhmet)의 아들인데 이 부적은 이집트의 왕족들이 착용하던 짧은 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두 개의 긴 깃털과 연꽃을 이고 있으며 자신을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인 사자를 딛고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부적은 현세와 내세에서 젊은 사람들을 보호한다고 알려진다.

 

베스(Bes)

베스는 현세와 내세에서 임산부와 아이들을 보호하는 신으로 줄에 매달에 목에 걸어 사용했다. 사자의 얼굴과 꼬리를 가지고 있으며 짧은 다리가 달린 채로 머리에는 깃털을 붙였다. 현세에서는 임산부의 출산을 돕고 내세에서는 부활을 돕는. 다른 부적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금으로 만든 것이 가치가 가장 높았다.

 

파타이코스(Pataikos)

난쟁이 신 파타이코스가 두 악어를 딛고 선채로 양손에 뱀을 쥐고 있다. 태양신과 관련된 쇠똥구리가 그의 머리 위에 얹혀있고 양옆으로 이시스와 네프시스가 위치한다. 부적의 뒷면에 사자의 영혼 일부분인 가 있다. 이 부적은 사후 세계에서 뱀과 악어로부터 죽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끈을 연결하여 목에 걸었다.

 

이 외에도 여성과 아이들보호하는 주문이 적힌 파피루스를 넣은 원통을 끈에 묶어 목에 걸기도 했다. 원통형 장신구는 중왕국 시대와 신왕국 시대에만 만들어졌으며 파라오와 고위층들이 부장했다.

 

<이집트인의 사후 준비>

이집트의 장구한 기간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은 이집트인들이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상관없이, 모두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다는 점이다. 현생에서 풍족한 삶을 살았다하더라도 사후세계에서 부활하지 못한다면 이는 소멸을 의미하므로 최고의 재물을 무덤으로 갖고 가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실제로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이 말은 이집트인들이 항상 자신의 장례에 대해 생각하면서 부장품의 주술적이고 믿음을 생활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장례 텍스트는 영원한 삶을 원하는 이집트인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무덤에서 잘 살아라. 서쪽에서 보람있게 살아라. 죽음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삶은 우리를 격상시키며 죽음의 집은 영원하다.’

 

이집트인들의 생활을 좌우하는 사자의 서는 다음과 같이 무덤에 부장되는 관과 그 위에 적힌 주문이 사자에게 음식과 변형의 힘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지상에서 이 책을 알았던 자, 혹은 관 위에 이것을 새긴 자에게 내가 약속한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형상을 취할 수 있고 돌려보내지는 일 없이 자신의 자리로 갈 수 있으며 오시리스의 제단에는 그를 위한 빵과 맥주와 고기가 있을지어다.’

 

여기에서 이런 힘을 주는 것은 관과 관에 적힌 글이다. 부장품은 차차 매우 현실적으로 선정된다. 여성의 무덤에는 신발 한 켤레, 부채, 기름, 돌 접시, 봉헌의 글이 관 일부에 묘사되었는데 이는 관의 주인이 사후세계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마법처럼 얻길 바라는 의도로 그려진 것이다.

그런데 이집트인들은 죽어서도 현생의 지위 그대로를 갖게 되므로 이에 걸맞는 부장품을 갖고 있어야했다. 한마디로 이집트인들의 생활은 죽음의 준비라 볼 수 있다. 이런 이집트인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 현대인들에게는 다소 이해되지 않는다고 생각되지만 그들의 관점에서는 매우 중요했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사치품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행동은 사회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투자라 볼 수 있다.

 

사자의서파피루스(제3중간기)

이집트인들은 부적이나 작은 조각상과 같은 작은 크기의 물건이 사자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자의 서에도 부적의 효능이 적혀있는데 부적이 비쌀수록 주문의 효과가 높아진다고 생각했다. 신의 피부라고 생각했으므로 사자의 모습을 금으로 만든 날개달린 부적은 시신에게 변형과 이동의 힘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런 힘이 물질적으로 구체화된 것이 관과 부적이므로 이집트인들이 이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하층민의 무덤에서 생각보다 귀중품들이 발견되는 것도 이런 이유이며 도굴꾼이 고위층의 무덤이 아니라도 도굴로 충분한 보상을 얻을 수 있으므로 모든 무덤을 파헤치려 노력한 이유이기도하다.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장례절차로 들어가는데 제일 먼저 사자의 관을 준비하는 것이다. 장례 용품은 대부분 신왕국시대 장인들의 마을인 데이르엘메디나로부터 제작되었다. 특히 이들이 왕가의 계곡과 왕비의 계곡에 있는 무덤들을 직접 조성하고 부장품들을 제공했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았는데 대부분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이곳이 특별히 이집트인들의 주목받은 것은 적어도 미라가 들어가는 관은 반드시 구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관의 종류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인데 데르엘메디나에 적힌 관의 종류는 무려 168가지나 된다. 관의 가격은 데벤(Deben)으로 기록되는데 1데벤은 구리 91그램을 뜻하며 대체로 빵 10덩어리 값이다. 당시 염소 한 마리가 5데벤인데 25데벤은 되어야 원목에 인물을 장식한 사람 모형의 관을 살 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 등을 제외하면 미라덮개, 외관이 하나의 세트가 되는 관을 비롯하여 카노픽, 샵티 등 구색에 맞게 장례 부장품을 모두 구입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특히 금을 사용하는 것은 상류층에게도 만만치 않으므로 나무에 금박을 입힌 것으로 만족했다. 투탕카문 파라오조차 100% 금으로 된 것은 가면과 내관 뿐이다.

 

미라 수의(로마 시대)

흥미로운 것은 투탕카문의 여러 겹 관 중에서 두 번째 관은 다른 통치자의 것을 빼앗아 대체한 것이다. 파라오가 이럴 정도이므로 일반인들은 자신의 능력과 타협해야했으므로 부장품들의 가격과 수준은 천양지차였다.

미라 제작에 있어 특히 가격의 차이가 많아지는데 헤로도토스가 이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묘사했다.

 

미라 제작업은 독특한 직업이다. 미라 제작자는 시신을 갖고 오면 나무로 된 견본 미라들을 보여주는데 실제 미라 모습대로 색을 칠한 이 모형은 물질에 따라 등급이 다르다. 가장 비싼 최고급의 모형은 감히 내가 이름만 들어도 움츠러질 정도의 고가다. 다음으로 좋은 것은 다소 질이 떨어지지만 저렴하며 세 번째 것은 가장 값이 싸다. 완성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한 다음 미라 제작자는 세 개 중 어떤 것을 원하느냐 묻는다. 가족은 가격을 합의한 다음 자리를 떠난다.’

 

그러나 대다수 이집트인들이 값비싼 장례품들을 구입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야자나무로 만든 돗자리 같은 직물에 시신을 둘둘 말아 무덤에 안장하는 것이 전부였다. 한마디로 이집트인 대부분이 자신을 위한 관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소 놀라운 일이지만 이집트의 상류층이 부장품을 갖추는데 많은 비용을 들인 것은 사후에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자의 지위를 공개적으로 과시함으로써 그들의 위세를 정시사회경제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최상류층의 장례품, 특히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파디인푸의 무덤에는 석회암으로 된 거대한 석관으로 만들어졌다. 이것은 매우 무거워 다루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석관을 만든 것은 이들 가족의 위세가 남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자신의 다양한 칭호와 가족관계, 업적 등을 예배실 벽에 상세하게 기록했는데 특히 자신이 파라오와 관련되어 있음을 강조했다. 그의 장례 조각상 중 일부인 두상은 화강섬록암으로 만든 것인데 이 돌은 채석을 독점하는 파라오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므로 자신의 위세가 사실임을 한껏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이집트인들의 기본 사회 구조와도 관련된다.

이집트에서는 계급이 대대적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파라오가문에서 파라오가 나오며 장군 가문에서 장군, 사제 가문에서 사제가 나오며 장인 가문에서 장인이 나온다. 문제는 내세에서도 그들의 서열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집트의 3500여년에 걸친 장기간의 역사에서 몇 번의 격변기에 세상이 변하는 돌변 사건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 하늘과 같은 파라오는 물론 고위층이 격하되고 하층민이 집권층으로 부상되기도 했다. 아케나톤의 경우 고대로부터 내려온 이집트의 틀을 아예 바꾸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의 중요성은 내세에서의 영생이라는 개념을 결코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현세의 기간은 아무리 길어도 10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세에서는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세에서 비록 파라오나 재상, 장군이 아니지만 현세와 같은 생활을 내세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양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내세의 절차를 순조롭게 통과하려면 최소한의 과정은 있어야했다. 한마디로 자신이 내세에서 활용해야 할 부적과 주문 그리고 부장품 등이다. 최상류 층은 지하에서도 최상류층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현생과 마찬가지의 위세품을 내세에서도 갖고 있어야 했다.

사후에 대한 복잡한 믿음 체계는 부장품으로 현실화되는데 이는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결국 사후세계가 이집트인들의 생활에 족쇄가 되었지만 이집트인들이 3000년 동안이나 이를 견지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부장품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사실을 말한다면 고대 이집트인들의 대다수는 이럴다할 관이나 부장품을 휴대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이들이 갖고 있는 무기는 오로지 시신으로 시신 자체가 사후의 존재를 보장해 주는 도구이자 용기였다. 이는 현대인으로 하여금 그들의 열악한 무덤을 보면 그들의 사후 생활 수준이 어떠할 지를 사전에 예측했음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무리 가난한 사람들의 열악한 무덤일지라도 상류층 장례품의 축소모형이나 모조품을 갖고 가는 것은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자들이 이 점에 주목하는 것은 상류층과 같은 엄청난 귀중품들을 갖고 가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이들과 유사한 부장품을 갖고 가면 내세에서 상류층과 같은 신분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가장 잘 알려진 예가 신왕국 시대에 값비싼 붉은 화강암처럼 색을 칠한 토기를 갖고 갔다. 이는 사후세계에서 현세보다 더 많은 부를 누리라는 의미로 갖고 갔다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상류층은 상류층대로 현세의 위치를 내세에서 확보하기 위해서 값비싼 부장품이 필요했고 하류층은 그들과 유사한 것을 갖고 있음으로 내세에서 그 지위가 격상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여하튼 이승과 내생에서 이집트인들이 평등하지 않았음이 분명함에도 이집트인들은 이에 반발하거나 파괴하지 않았다. 죽어야 산다는 자체는 상류층이나 하류층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며 나름대로의 현생에서의 삶을 유지하면 내세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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