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릉 답사 (14) : 제1구역 동구릉(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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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경릉 :

경릉은 제24대 헌종(1827〜1849) 및 효현왕후 김씨(1828〜1843), 계비 효정왕후 홍씨(1831〜1904)를 모신 동구릉 중 아홉번째 능이다. 능이 조성된 순서로 따지면 수릉이 가장 나중에 만들어졌지만 재위 순으로 꼽으면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헌종은 익종으로 추존된 문조와 풍원부원군 조만영의 딸 신정황후의 아들로 창경궁의 경춘전에서 왕가의 정통성을 한 몸에 안고 태어났으며 4세에 아버지인 효명세자가 급서하여 바로 왕세손에 책봉되면서 6세부터 강연(講筵)을 열어 왕자로서의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8살 때에 할아버지인 순조가 사망하여 1834년 순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헌종은 조선의 왕 중 가장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할머니 순원왕후(純元王后)가 대왕대비로서 수렴청정하면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헌종이 국왕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한 것은 15세부터로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이 끝났기 때문이다. 헌종의 외가인 풍양조씨 세력이 헌종의 권위를 이용하여 안동김씨 세력에 대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도 이때부터다. 이로 인해 삼정이 문란해지고 재위 15년 중 9년이나 계속된 홍수로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하여 큰 고통을 받았는데 헌종은 혹독한 천주교 탄압정책으로 1839년 주교 앵베르(Imbert L. J. H.), 신부 모방(Maubant P. P.)를 비롯하여 1846년 최초의 한국인 신부 김대건 등 많은 신자들을 살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헌종이 직접 친정에 나선 것은 헌종 7년(1841)인데 헌종이 유력한 가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그 나름대로 국정운영의 주체가 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홍수가 계속되고 남응준, 이원덕 등 모반 사건이 계속되었고 특히 헌종 14년(1848)부터 많은 외국의 배들이 출몰하여 민심이 흉흉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조보감』의 증수를 위해 정조․순조․익종에 대한『삼조보감(三朝寶鑑)』을 찬집했고 『열성지장』․『동국사략』․『문원보불』․『동국문헌비고』 등을 편찬하는 등 상당한 문화업적을 이루었다.

무엇보다도 헌종 자신이 문학에 재능이 있었고, 글씨도 잘 썼는데 특히 예서에 뛰어났고 화가 소치 허련과 교유한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헌종의 노력이 유력한 가문들의 이해를 조정하고 견제하는 수준을 넘지 못했지만 학자들은 헌종에 대하여 ‘미완의 문화군주’라는 칭호를 부여하기도 한다.

헌종의 비 효현왕후가 안동김씨 김조근(金祖根)의 딸로 10세의 나이로 왕비에 책봉된 것은 당시 수렴청정하던 순원왕후 김씨가 자신의 친정 쪽으로 국혼(國婚)을 배려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과 여섯 해만에 후사도 없이 세상을 떠남으로써 세도를 이어가려는 안동김씨 세력의 의도에 차질이 생겼다. 성품이 조용하고 화순온후하여 언제나 예법에 맞는 말만 하였다고 하는 이외에는 특별한 기록이 없다.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는 남양홍씨 홍재룡(洪在龍)의 딸로 14세 나이에 왕비로 책봉되었고, 철종이 즉위하면서 대비의 칭호를 받았으며 철종 8년(1857) 왕대비가 되었다.

 

헌종의 후사를 잇지 못한 것은 효정왕후도 효현왕후와 동일하다. 효현왕후에게 딸이 있었지만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에 헌종은 주부(主簿) 김재청(金在淸)의 딸을 후궁으로 삼으니 그가 경빈(慶貧) 김씨다. 그런데 헌종은 경빈김씨를 통해서도 후손을 얻지는 못하였다.

광무 1년(1897)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효정왕후도 황후에 책봉되었다. 동구릉에 안장된 왕비 중 살아서 황후에 책봉된 유일한 인물이다.

경릉은 헌종 국상 이후 13곳이나 되는 길지를 찾다가 용세(龍勢)와 혈증(血證)이 풍후한 십전대길지라 하여 결정되었다는 명당 중 명당이다. 그런데 이 자리는 한북정맥-용암산-수락산-불암산-구룡산(검안산)으로 이어지는 용맥으로 원래는 선조의 목릉이 있던 터였다. 그러나 선조가 건원릉 좌강의 의인왕후 목릉 및 인목대비의 능과 능역을 같이하면서 천봉하여 비어있던 자리였다.

정면에서 볼 때 왼쪽 봉분이 헌종의 능이고 중앙이 효현왕후, 우측이 효정왕후의 능이다. 선조의 목릉(穆陵)과 숙종의 명릉(明陵)처럼 왕과 함께 원비와 계비를 한 곳에 배치했지만 목릉과 명릉이 동원이강 또는 변형된 동원이강의 형식으로 조성된 반면, 경릉은 3개의 봉분을 병풍석 없이 난간석으로 서로 연결한 후 나란히 옆으로 배치한 삼연릉으로 조선왕릉 중 쌍릉 제도를 변형시킨 유일한 형태다.

경릉은 영조대에 홍계희가 왕명을 받들어 영조 34년(1758)에 편찬한 『국조상례보편』에 의거해 마련했는데 기본적으로 단릉(單陵)에 준한 것이다. 세 봉분은 병풍석 없이 난간석을 터서 연결했지만 각 능 앞에 혼유석을 따로 마련하여 혼유석과 고석의 수량이 다른 능보다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경릉의 조성은 상당한 에피소드가 있다.

우선 헌종 9년 1843년 16세로 승하한 효현왕후 김씨의 능을 이 자리에 조성하였고, 능호를 경릉으로 올렸다. 그로부터 6년 후 1849년 헌종이 사망하자 효현왕후 김씨의 우측에 모셨다. 1904년에는 73세로 사망한 헌종 계비 효정왕후 홍씨를 효현왕후 김씨의 좌측에 안장하여,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세 개의 봉분을 가진 왕릉이 완성된 것이다.

경릉을 보면 왕이 중앙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자각에서 바라보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제일 왼쪽이 헌종의 능이고, 중앙이 효현왕후 능침이며, 왼쪽이 계비 효정왕후 능이다.

왕이 중앙에 있지 않은 이유는 당시의 사상으로 누워있는 시신을 기준으로 할 때 우측을 상석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헌종은 효현왕후의 오른쪽, 계비인 효정왕후는 정비인 효현왕후의 왼쪽에 묻힌 것이다. 이는 다른 능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유독 의경세자인 덕종과 인수대비인 소혜왕후의 무덤에서는 소혜왕후가 상좌인 우측에 안장되어 있다.

남편인 덕종이 사망할 때 세자 신분이었지만, 부인인 소혜왕후 즉 인수대비는 대왕대비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남존 여비 차원이 아니라 왕릉 조성에 있어 왕실의 서열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반면 살아있을 때는 이와 반대로 앉아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좌측이 상석이 된다. 때때로 사극에서 왕이 우측, 왕비가 좌측에 앉아있는데 이는 엄밀하게 말하여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대한제국의 유릉에서는 황제가 가운데에 위치하고 양 옆에 황후가 위치한다.

능 앞에 3단을 2단으로 줄여 장명등, 문․무인석이 한 단에 마련되어 있다.

상계의 맨 앞 양 옆에 망주석이 설치되어 있다. 높이는 각각 297cm, 299cm정도다. 망주석의 머리 부분은 연봉형이며 상부에 붙은 세호는 우상좌하로 되어 있다. 장명등은 수릉 장명등과 마찬가지로 사면 모두 팔작지붕 형태이며 정자석은 지붕 중앙부의 용마루 위에 놓인 구조다.

문⋅무인석은 선명한 눈꺼풀, 눈동자, 입체적인 입술선이 섬세하게 표현되는 등 다른 능에서는 보이지 않는 이색적인 얼굴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조각을 가늘게 해 평면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눈동자 등의 세부 표현은 섬세한 편으로 18세기 이후 양식을 잘 따르고 있다. 문석인의 도상은 복두를 쓰고 공복을 입은 도상이다.

왕릉 문석인의 도상은 1776년 원릉까지 복두공복형이었다가 1800년 건릉, 1834년 순조 인릉의 구릉소인 파주 교하에서도 금관조복형이었다. 그러나 경릉은 다시 복두공복형으로 회귀했다. 문석인의 규모는 좌우너비 775mm, 앞뒤길이 710mm, 대석제외 높이 2,167mm(동측)다. 총 높이에 비해 얼굴을 너무 크게 분배하여 비례가 매우 어색하고 장대함도 구현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얼굴과 손의 표현도 실제성이 없고 미숙하여 수릉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다.

 

무석인의 규모는 좌우너비 819mm, 앞뒤길이 811mm, 대석제외 높이 2,444mm(동측)으로 문석인보다 규모가 크다. 그러나 신체의 방형프레임이 그대로 살아있어 인체표현이 부자연스럽다. 또한 투구를 포함한 얼굴은 약 3 : 1의 비례로 어색하고 석인의 장대함을 표현하는데도 미숙하며 갑옷 장착구의 배치도 어울리지 않는다.

특이한 것은 무인석의 갑옷 묘사가 상당히 장식적인데 투구 앞의 마크가 태극 모양이다. 정조가 건립한 사도세자 융릉의 무석인 투구 앞면 이마가리개에는 원형 속에 만(卍)자가 있으며, 순조 인릉에는 3개의 원형 볼, 수릉 것에는 십자형 세곡 수 모양이 새겨져 있다. 이창환 교수는 정조 때 장용영(壯勇營), 순조 때 총리영(總理營), 헌종 때 총위영(摠衛營), 이후 철종 때 총융청(摠戎廳) 같은 왕의 근위대 마크일지 모른다고 추정했다. 봉분 주변으로 석양과 석호 각 2쌍씩 8마리를 서로 엇갈려 배치하였다.

 

<능표>

조선시대 왕릉에는 고려시대 왕릉과 달리 거의 모든 왕릉에 피장자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표석(表石)이 건립돼 있다. 능에 세워진 표석을 약칭해 ‘능표(陵表)’라고도 부른다. 1393년 조선시대는 정숙왕후(조선 태조의 증조모)의 숙릉(淑陵)에 처음 능표를 세웠다. 그러나 이후에는 극소수의 능에만 표석을 건립했는데 현종 15년(1674) 우암 송시열의 주장에 따라 효종(孝宗)의 영릉(寧陵)에 표석이 새롭게 세워지면서부터 여타 능에도 차츰 건립되기 시작하고 고종 대에 이르러서 거의 모든 능에 능표가 세워졌다.

경릉 능표는 헌종 9년(1843) 효현왕후가 사망했을 때 명칭만 새겨 처음 세웠다가 1849년 헌종이 사망하면서 내용을 추가해 고쳐 세웠으며, 1903년 계비 효정왕후가 죽자 이듬해에 또 다시 문안을 크게 수정해서 건립했다. 현재 정자각 우측에 있는 능표는 1908년에 건립한 것이다.

경릉의 정자각은 정전 3칸으로 정전의 구체적인 간잡이는 정면 3칸, 측면 2칸, 배위청 2칸으로 하는 5칸 정자각이다. 정자각 상부의 가구 구조는 5량가, 배위청은 3량가다. 지붕은 정전과 배위청 모두 맞배에 겹처마로 박공면에는 풍판을 설치했다. 포작은 정전이 출목 2익공, 배위청이 출목이 없는 2익공이다. 지붕 용마루는 적새를 쌓고 전후면에 회를 발라 마감하는 양상도회했으며 좌우에 취두를 설치했다. 잡상은 정전과 배위청의 내림마루에 각 3개씩을 설치했다.

정전 내외부 바닥과 배위청 및 월대의 바닥에는 모두 방전(方甎)을 깔아 포장했다. 월대의 경우 처마 바깥쪽 부분은 비가 흘러내리기 쉽게 바깥쪽으로 약간의 경사를 두었다. 월대의 좌우에는 향로계, 어로계, 석계의 3개소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정전 내외부와 배위청에는 모두 단청을 하고 정전의 좌우면과 뒤쪽의 벽은 중방까지 벽돌을 쌓아 화방벽으로 마감했다. 정자각의 내외부 기둥, 인방 및 중방은 모두 석간주칠, 창방 이상은 부재 끝부분만 문양을 넣고 가운데는 긋기로 마무리한 모로단정으로 되어 있으며 벽면은 육색칠이다. 정자각의 후면 어칸에 설치된 신문과 정면 3칸에 설치된 세살청판사분합문에는 뇌록칠이 되어 있다. 정전 및 배위청의 기둥하부의 주근도배 흔적에 따라 분칠 바탕에 청색띠칠되어 있다.

경릉에는 예감과 산식석 모두 있다. 예감은 의례를 끝낸 제물의 일부를 묻고 축문을 태우는 곳으로 일반적으로 정자각의 서측 뒤편에 자리한다. 경릉 예감 크기는 1,200 x 1,150mm다. 산릉을 지키는 산신에게 예를 올리는 상석인 산신석은 예감과 대칭되는 위치에 설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릉의 산신석의 크기는 1,425 x 910mm로 장방형이며 높이는 480mm다. 모서리는 사선으로 갈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