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릉 답사 (15) : 제1구역 동구릉(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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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수릉

동구릉 중앙 길을 따라 건원릉 방향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릉이 수릉으로 추존 익종(문조, 1809〜1830) 및 신정왕후 조씨(1808〜1890)의 능이다. 일반인들은 익종과 신정왕후의 무덤이라고 하면 누구인지 잘 모르겠지만 조선 왕실사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 ‘조대비(趙大妃)’라고 하면 기억이 난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을 고종으로 즉위케 한 당사자가 바로 조대비 신정왕후다.

문조는 4살부터 왕세자(효명세자)로 책봉되고 19살부터 대리청정하면서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형옥을 신중하게 하는 등 백성을 위한 정책 구현에 노력했으나 22세에 요절했다. 순조의 뒤를 이어 문조의 아들 헌종이 즉위하자 헌종은 부왕인 문조를 익종(翼宗)으로 추존했다. 추존왕이란 생전에는 왕이 아니었으나 죽어서 왕이 된 경우를 말한다.

추존되었다고는 하나 익종이 정사에 관여하지 못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추존왕과는 차이가 있다. 그는 순조 27년(1827) 부왕의 명령으로 대리청정을 시작했다. 순조가 38세의 한창인 나이임에도 왕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명한 것은 김조순(金祖淳)을 중심으로 한 안동김씨 세력의 정치적 독주를 국왕으로서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므로 효명세자에게 기대를 갖고 대신 정사를 볼 것을 명하였던 것이다.

 

19세 젊은 나이의 효명세자는 부왕의 기대에 부응하였다. 세자는 대리청정을 시작한지 사흘 만에 형조판서 등에 대한 인사 명령을 내리고, 그 다음날은 고위관료들에 대하여 감봉 처분을 내리는 등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사류(士類)’, ‘청의(淸議)’를 자처하는 세력들을 과감히 등용하여 안동김씨가 독점하던 정국을 반전시켰다. 학자들은 효명세자가 아마도 할아버지 정조를 모범으로 삼아서 개혁을 추진하였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개혁의 성과가 실현되기전인 순조 30년(1830) 대리청정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사망하여 왕위에는 오르지 못했다. 대리청정 3년 3개월 만이다. 효명세자의 급서와 함께 그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결집되었던 세력들 또한 급격하게 도태되었지만 후일 흥선대원군 등 반(反)안동김씨 세도정국에서 이들이 다시 등장할 수 있게 되는 계기는 바로 효명세자 대리청정기에 이미 싹이 트고 있었다고 인식한다.

신정왕후 조씨는 조선 왕조에 있어 가장 큰 실권을 휘두른 여장부다.

풍양 조씨 만영의 딸인 그녀는 1808년에 태어났으며 12세 때 1819년 효명세자의 빈으로 책봉되어 세자빈이 되었다. 순조가 그녀를 세자빈으로 간택된 것은 안동 김씨의 독재를 막기 위한 견제책으로 인식한다. 그녀는 1827년에 세존인 헌종을 낳았지만 효명세자가 요절하였으므로 왕비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아들 헌종이 왕통을 이어받아 남편이 익종으로 추대되자 왕대비에 올랐다. 그러나 헌종이 어린 탓에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했으므로 조정은 한동안 계속 안동 김씨의 손안에 있었다. 그러나 1841년부터 헌종이 친정을 하자 이때부터 안동김씨를 밀어내고 풍양조씨 일문에 세도정치를 이어갔다.

그러나 헌종의 생명이 길지 못해 재위 15년 만인 1849년 23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이때 안동 김씨 세력이 재빨리 철종을 지목했고 안동 김씨 가문에서 철인왕후를 왕비로 간택했다.

 

졸지에 왕위와 중궁, 조정을 모두 안동 김씨에게 내준 조씨는 안동 김씨 일문에 한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철종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대왕대비가 되어 왕실의 권한을 한 손에 거머쥐었다. 신정왕후는 안동 김씨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대원군과 손잡고 고종을 즉위시키고 조대비가 되어 3년간 수렴청정을 했다.

그러나 권력은 고종의 아버지인 이하응이 쥐고 있었다. 그녀가 이하응에게 힘을 준 것은 안동 김씨 세력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는데 이하응은 안동김씨는 물론 풍양 조씨까지 조정에서 몰아냈다. 그 결과 안동 김씨와 외척 세도정치의 양대 축이었던 풍양 조씨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

여하튼 그녀는 83세의 나이로 경복궁 흥복전에서 사망했는데 조선의 비(妃) 중 왕실생활을 가장 길게 했다.

처음에 장지로 결정된 곳은 능동(陵洞)의 도장곡(道莊谷)인데, 현재 능동 어린이대공원 일대다. 이곳을 장지로 정하고 산릉 조성작업을 진행하던 중 혈처 주변에서 5기의 옛 무덤 흔적과 유골이 발견된다. 고묘(古墓)와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이미 그 땅이 길지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산릉작업을 계속할 수 없으므로 이를 중단하고 의릉 근처로 옮긴 후 다시 양주 용마봉(龍馬峰, 광진구 용마산) 자락으로 옮겼다가 1855년 철종 때 최종적으로 건원릉 좌측으로 옮겼다. 그런데 신정왕후가 1890년 사망하자 고종이 수릉에 합장하여 수릉은 단릉이 아니라 합장릉이다.

 

수릉은 추후 왕으로 추존된 익종과 신정왕후를 합장한 합장릉이지만 단릉처럼 봉분과 혼유석을 하나만 마련했다. 문조로 추존되는 효명세자가 사망할 당시 만든 연경묘에 1846년 봉릉(封陵) 후 부족한 석물을 다시 만들어 보충했고 1846년, 1855년 두 차례에 걸쳐 천장했으므로 석물의 조성년대가 다르다. 그러나 석물 조성 년대가 크지 않으므로 조각 양식에 있어 19세기 양식을 공유하므로 인릉이나 예릉과 달리 석물 간 이질감이 크지 않다.

왕릉의 상설물은 대부분 『국조상례보편』에 따랐으며 능 앞의 3단(초․중․하계)중 중계와 하계가 합해져 문인석과 무인석이 한 단에 서 있다. 문인석은 금관조복을 입고 있으며 길쭉한 얼굴에 광대뼈가 나오고 눈이 가늘어 전형적인 북방인을 묘사했다. 또한 어깨를 움츠리고 목을 앞으로 빼고 있는 형태에서 조선시대 후기 인물조각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세호의 경우 좌측 것은 내려 오는 반면 우측의 것은 올라가고 있다.

봉분 앞 중하계에 위치한 장명등은 사각 형식을 하고 있으며 전체 높이는 262cm 정도다. 수릉 장명등과 같은 사각 장명등은 조선 초기 신덕왕후 정릉의 장명등(1409)에서 처음 등장하지만 개석의 지붕 형태는 정릉과 달리 사면 모두 팔작지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같은 지붕 형태는 단종 장릉 장명등(1580년)에서 처음 등장하며 이후 17세기에 주류를 이룬 사각장명등에서 사면 팔작지붕의 형태가 확립되어 수릉 장명등까지 이어진 것이다.

왕릉 석인 조각은 19세기에 이르러 작품 수량이 현저하게 줄고 양식은 혼재되어 있으며 예술성은 편차가 심하다. 그중 수릉의 석인은 19세기 양식을 대표한다.

수릉의 문석인 도상은 금관을 쓰고 조복을 갖추었다. 이는 왕으로 추존되기 전에 묘격으로 만들어진 문석인으로 19세기 묘의 일반적인 도상을 따르고 있다. 문석인의 규모는 좌우너비 703mm, 앞뒤길이 664mm, 대석제외 높이 2,165mm(서측)로 장대하고 우람하지만 얼굴이 길어 2.1 : 1의 신체비례를 보이는 등 신체의 조형성이 부자연스럽다는 평을 받는다.

반면에 무석인은 갑주를 갖추고 검을 수직으로 세운 도상으로 유연한 곡선 표현과 치밀한 세부묘사 등 왕릉 무인상 중 걸작으로 평가된다. 무석인의 규모는 좌우너비 884mm, 앞뒤길이 842mm, 대석제외 높이 2,591mm(서측)로 단면은 정방형에 가까워 문석인보다 더욱 장대하며 웅장하다. 특히 화강암의 석질이 매우 곱고 입자가 치밀하여 세밀한 조각을 무리없이 수행했다.

수릉의 정자각은 정전 3칸, 배위청 2칸으로 하는 5칸 정자각이며 정자각 상부의 가구 구조는 5량가, 배위청은 3량가다. 지붕은 정전과 배위청 모두 맞배에 겹처마로 박공면에는 풍판을 설치했다. 포작은 정전이 출목 2익공, 배위청이 출목이 없는 2익공이다. 지붕 용마루는 적새를 쌓고 전후면에 회를 발라 마감하는 양상도회했으며 좌우에 취두를 설치했다. 잡상은 정전과 배위청의 내림마루에 각 3개씩을 설치했다. 정전 내외부와 배위청에는 모두 단청을 하고 정전의 좌우면과 뒤쪽의 벽은 중방까지 벽돌을 쌓아 화방벽으로 마감했다. 정자각의 내외부 기둥, 인방 및 중방은 모두 석간주칠, 창방 이상은 부재 끝부분만 문양을 넣고 가운데는 긋기로 마무리한 모로단정으로 되어 있으며 벽면은 육색칠이다. 정자각의 후면 어칸에 설치된 신문과 정면 3칸에 설치된 세살청판사분합문에는 양록칠이 되어 있다. 정전 및 배위청의 기둥하부의 주근도배 흔적에 따라 분칠 바탕에 청색띠칠되어 있다.

 

수릉에도 예감과 산식석이 모두 있다. 예감은 의례를 끝낸 제물의 일부를 묻고 축문을 태우는 곳으로 일반적으로 정자각의 서측 뒤편에 자리한다. 장대석을 다듬어 방형으로 만들고 바닥에는 방전을 깔았다. 예감 크기는 1,245 x 986mm다. 산릉을 지키는 산신에게 예를 올리는 상석인 산신석은 예감과 대칭되는 위치에 설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릉의 산신석의 크기는 1,405 x 940mm로 장방형이며 높이는 490mm, 모서리는 사선으로 갈아 마무리했다.

참고적으로 추존된 왕과 왕후로서 능호가 추봉된 것은 태조의 정비 신의왕후 한씨의 제릉(齊陵), 예종의 정비 장순왕후 한씨의 공릉(恭陵), 덕종(의경세자)과 그 비 소혜왕후 한씨의 경릉(敬陵), 원종(정원군)과 그 비 인헌왕후 구씨의 장릉(章陵), 진종(효장세자)과 그 비 효순왕후 조씨의 영릉(永陵), 문조(익종을 문조로 함)와 그 비 신정왕후 조씨의 유릉(綏陵)이다. 한편 민담에도 잘 알려진 사도세자는 현륭원에서 고종 광무3년(1899)에 왕으로 추존되면서 능호를 융릉(隆陵)이라 했다.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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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정원 조선 왕릉③] 수릉 대신 도성 밖 10리에 새 왕조 시작 의미 담아 조성」, 이창환, 주간동아, 2010.04.06.

「임진왜란에 상처 난 王權 능침 조성으로 만회하려 했나」, 이창환, 주간동아, 2010.08.30.

「왕권강화 정치적 신념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였다」, 이창환, 주간동아, 2010.12.06

「일부일처 고수한 순정파 사생결단 당쟁에 ‘골머리’」, 이창환, 주간동아, 2010.10.18.

「시어머니 장희빈 몰락… 고추보다 매웠던 구중궁궐」, 이창환, 주간동아, 2010.11.22

「왕권강화 정치적 신념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였다」, 이창환, 주간동아, 2010.12.06

「수렴청정과 세도정치 왕은 허수아비 신세였다」, 이창환, 주간동아, 2011.01.24.

「18살에 급서한 효명세자 ‘문조’로 거한 대우를 받다」, 이창환, 주간동아, 2011.01.31

「근대 물결 거센 파도 치는데 치마폭에 싸인 힘없는 왕」, 이창환, 주간동아, 201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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