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척스러운 퀴리부부의 연구>
마리는 우선 당시 알려져 있던 모든 원소 및 혼합물을 대상으로 방사능이 있는지를 조사했다. 초기 실험에 사용된 우라늄염은 프랑스 화학자로 노벨상을 수상한 앙리 무아상(Henri Moissan)이 제공해 주었다. 얼마 안가서 마리는 토륨(원자번호 92)이라는 원소 및 그 혼합물도 베크렐선을 방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다른 물질 중에서는 마리가 추후에 베크렐선을 방사능이라고 명명한 독특한 성질을 가진 것은 없는 것 같았다. 끈질긴 실험 끝에 마리는 그 현상은 화학적 성질의 것이 아니라 원자 자체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현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898년 2월, 마리 퀴리는 독일 요아힘슈탈 지역에서 채굴된 산화우라늄을 함유하고 있는 피치블랜드(Pitchblende, 역청우라늄) 샘플이 순수한 우라늄보다 훨씬 큰 방사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때 퀴리부부는 한 가설을 세운다. 역청우라늄광의 이온화 세기가 우라늄보다 강하다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성분의 활성이 우라늄 원소보다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이 성분은 광물에 불순물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실험과 가설을 1898년 4월 12일 과학원에 첫 번째 보고서로 발표했다.
그녀의 결론은 명확했다. 알려지지 않은 원소가 우라늄보다 훨씬 강한 방사능을 갖고 있음에도 역청우라늄광 안에 아주 소량밖에 함유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과거의 화학분석에서 그것을 탐지해 내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그녀에게 목표가 생겼다. 즉 역청우라늄광에서 특별히 강한 방사선이 나오게끔 만드는 물질을 분리해 내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마리가 이 연구를 시작할 때인 1898년 4월만 해도 자신들이 하고 있는 작업이 얼마나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다행히 피에르 퀴리도 자신의 주전공인 결정에 관한 연구를 당분간 중단하고 마리의 실험을 돕기로 작정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찾으려는 물질이 역청우라늄광 속에 1퍼센트 정도 들어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면서 실험에 임했다. 그러나 추후에 밝혀졌지만 그 물질은 1만 분의 1퍼센트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들은 역청우라늄광을 갈아서 가루로 만든 다음 그것을 산(酸)에 넣어 용해시켰다. 그리고 그 용액을 끓이고 얼리고 침전시키는 과정을 반복해서 각각의 성분으로 분리했다. 이중 우라늄 성분을 모두 제거하고 다시 알고 있는 다른 원소들도 분리했다. 각 단계마다 그들은 남아 있는 물질이 여전히 방사능을 띠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들의 억척스러운 노력은 곧바로 성과를 얻기 시작했다. 6월이 되자 그들은 미량의 미세한 흑색 분말을 얻었는데 이 분말은 우라늄보다 150배나 강한 방사능을 지니고 있었다. 더욱 정제하자 분말의 방사능도 더욱 강해져 무려 400배나 되었다. 마리는 피에르와 함께 발견한 새 원소를 자신의 조국 폴란드의 이름을 따서 폴로늄이라고 명명한 후 7월에 마리와 피에르 공동 명의로 자신의 발견을 과학원에 발표했다.
이들은 더불어 폴로늄의 방사능이 반감기(half-life)라고 불리게 되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방사능이 자연적으로 절반으로 감소한다는 것도 발견했다. 반감기는 방사성물질에 따라 다른데 폴로늄의 중요한 동위원소인 Po210의 반감기는 138일이다.
몇 달 후 그들이 그 분말로부터 폴로늄을 분리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폴로늄을 분리했는데도 남은 물질이 여전히 방사능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리는 역청우라늄광에는 미지의 원소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두 번째 원소는 너무나 미량이기 때문에 그것을 순수한 형태로 분리해 내는 데는 또다시 여러 달이 걸렸다. 불순물이 함유되어 있는 상태에서도 그 물질의 방사능은 우라늄의 900배나 되었다. 추후에 밝혀졌지만 그것은 무려 300만 배 더 강한 방사능을 갖고 있었다. 라듐의 발견이다. 라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유리관 벽면을 자극해 신비스럽고 창백한 빛이 나도록 만드는데 이 빛은 환한 대낮에도 눈에 보일 정도이다. 마리 퀴리는 라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는 이 새로운 방사능 물질 속에 새로운 원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원소를 라듐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 새로운 방사능 물질은 상당한 방사성을 띠고 있음에도 매우 많은 양의 바륨이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라듐이 엄청나게 강한 방사성 물질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라듐은 빛의 밝기를 그대로 유지한 채 시간당 100칼로리의 열을 발생시켰다. 주변에 의해 냉각되지 않도록 열을 차단하면 라듐은 점차로 온도가 올라가 주변보다 10도 이상 높은 온도를 가진다. 라듐은 검은 종이를 투과해 사진 감광판에 형상을 남기며 주위환경을 전도성으로 만들어 멀리 떨어져있는 검전기에 방전을 일으킨다. 라듐을 담았던 유리 그릇은 자주색이나 보라색으로 물들여지고 부식성도 강해서 그것을 싼 종이나 무명천을 가루로 만들어버린다. 마리 퀴리는 다이아몬드에 대한 재미있는 기록을 남겼다.
‘다이아몬드는 라듐에 의해 형광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매우 약한 발광특성을 보이는 모조보석의 가짜 다이아몬드와 쉽게 구별이 된다.’
여하튼 라듐과 폴로늄은 알카리토류 금속 원소의 하나로 본격적인 방사능 연구의 실마리를 주었고 퀴리 부부는 이 발견으로 베크렐과 함께 190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퀴리 부부가 사용하던 실험실은 버려진 헛간을 개조한 것으로 역사상 노벨상을 받은 연구가 행해진 실험실 중에서 가장 열악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리 퀴리는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비가 새는 헛간에서 밤낮 없이 연구했다. 실내에는 낡은 목재 책상, 고장 난 철재 난로, 칠판이 다였다. 다행히 칠판은 피레르에게 요긴했다. 또한 실험 도중 화학적 처리로 발생하는 독성 기체를 밖으로 빼내야 하는데 후드 같은 배관시설이 전무했다. 따로 모아서 수시로 바깥으로 내다 버려야 했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그마져 여의치 않았다. 실내에 방치하고 대신 창문을 열어두었다. (중략) 일할 장소도 마땅치 않았고 돈도 없었고 일손도 딸렸다. 너무나 많은 일 때문에 기진맥진할 때면, 우리는 이리 저리 걸으며 일과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얘기했다. 추울 때에는 난로 옆에서 뜨거운 차를 마시며 기운을 냈다. 우리는 꿈꿔 온 대로 완전히 연구에 몰두했다.”
퀴리 부부의 무지막지한 실험은 당대에 유명하여 유명 인사들이 잇따라 그들의 헛간 실험실을 방문했다. 당대의 최고 과학자로 진화론을 제창한 찰스 다윈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켈빈 경(Lord Kelvin)도 그중 한 사람으로 그는 퀴리 부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훗날 노벨상을 받는 독일 과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오스트발트(Friedrich Wilhelm Ostwald)가 퀴리부부가 부재중일 때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그들의 작업공간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것은 마구간과 감자저장고를 잇는 창고였다. 작업대에 놓인 화학실험장비들을 보지 못했다면 나는 이들이 정말로 못된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과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구가 역사상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났다는데 지구인들은 퀴리부부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방사능 탄생>
마리 퀴리는 우라늄에 의한 방사선은 그것의 화학적 반응과 관계없는 우라늄 원자의 성질이라고 믿었다. 또한 방사능의 강도가 방사능 시료인 우라늄 양에 관계있음도 확인했다.
베크렐과 퀴리의 발견이 중요한 것은 X선과 유사하면서도 뚜렷이 구분되는 차이점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X선은 진공유리관 속의 양 전극 사이를 흐르는 전압을 차단시키면 즉시 사라지지만 우라늄과 라듐 등은 전압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같은 강도로 빛을 발산했다. 이 특이한 광선은 온도의 높낮이 또는 그 어떤 외부적 요인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더구나 방사능 물질에서 나온 방사선은 X선보다 투과성이 더 크고 에너지도 더 컸다. 이 방사선은 나중에 감마선으로 밝혀졌다. 그들의 발견에 당시의 학자들이 놀란 것은 에너지 보존이 무너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에너지 법칙은 다음과 같다.
‘에너지는 서로 변환될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무로부터 생성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방사능 물질이 어떤 방식으로 빛을 발생시킬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지가 당대의 화두였다. 유명한 물리학자 캘빈 경(Lora Kelvin, 1824~1907)과 러시아의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Dmitry Ivanovich Mendeleyev, 1834~1907)는 우라늄이 공기 중의 에테르를 빨아들여서 신비스런 빛으로 변환시킨 다음 다시 방출한다고 설명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에테르’는 빛의 파장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이론적 기반이었다. 물론 어느 누구도 이 정체를 알 수 없었고 증명하지도 못했지만 에테르는 존재해야 했다. 이 부분은 추후에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도출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결론을 말한다면 에테르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하튼 마리 퀴리는 에테르가 존재한다는 오류에 빠져들지 않고 이 광선이 스스로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우라늄을 비롯하여 폴로늄이 이상한 현상을 일으키는 것을 '방사능'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퀴리는 현대 과학을 한 단계 올리는데 큰 기여를 했는데 그녀의 업적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라듐의 방사능을 발견했고 우라늄 광석에서 라듐을 분리했으며 방사능은 원자의 고유한 성질이며 집합적인 물질이 아닌 원자 개개의 현상이라고 밝혔다는 점이다.
앞의 설명처럼 엄밀한 의미에서 X선을 포함한 방사선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뢴트겐과 베크렐이다. 그러나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방사 분야에서 마리 퀴리가 더욱 중요시 생각되는 것은 그녀가 ‘방사능’이란 단어를 제창한 것은 물론 방사선의 원리에 대해 이론적인 토대를 세웠기 때문이다. 마리 퀴리의 전기를 쓴 로잘린드 프라움은 “순전히 가설에 불과한 원자 구조의 신비가 그녀로부터 밝혀지게 된 것이다.”라고 적었다.
여기에서 방사능, 방사성물질, 방사선의 용어를 보다 풀어서 설명한다. 이들은 얼핏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각각 의미가 다른 말이다.
방사능이란 어떤 물질이 방사선을 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하고 방사성 물질이란 이러한 능력을 갖고 있는 물질을 말한다. 방사성 물질의 대표적인 것이 우라늄이다. 방사선이란 물질을 투과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광선과 같은 것으로 크게 자연계에 존재하는 자연방사선과 인공적으로 만든 인공 방사선으로 구분되는데 광선의 종류에 따라 X선, 알파, 베타, 감마, 중성자, 전자, 양자, 우주선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방사능과 방사선은 흔히 혼동하기 쉬운데 이들의 관계를 전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방사성 동위원소가 전등이라면 방사선은 전깃불에 해당되고 방사능은 전깃불을 방출하는 능력과 성질을 갖고 있는 전등의 필라멘트로 비유된다.
<마리 퀴리의 초고속 노벨상 수상>
1902년 7월, 퀴리 부부는 그동안의 실험 결과를 발표한다. 순수한 라듐 화합물을 무려(?) 0.1그램을 얻은 것이다. 마리는 이렇게 기록했다.
‘이것을 얻는 데 꼬박 4년이 걸렸다. 화학계에서 요구하는 대로 라듐이 진실로 새로운 원소임을 입증할 증거를 만드는 데 말이다.’
마리는 다음해인 1903년 6월에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했다. 놀랍게도 바로 1903년 말 노벨상을 수상한다. 퀴리부부를 연구한 학자들은 1903년에 받은 노벨상은 전적으로 피에르의 공으로 평가한다. 우선 피에르는 압전 효과도 발견했고 ‘퀴리의 법칙’도 발견하는 등 당시에 가장 촉망받는 물리학자로 잘 알려져 있었다. 당대의 최고 과학자로 진화론을 제창한 찰스 다윈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켈빈 경(Lord Kelvin)도 그중 한 사람으로 그는 퀴리 부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그의 법칙은 당대 학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아 켈빈 경(Lord Kelvin)이 명성과 노년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를 방문하여 피에르를 직접 만나주었을 정도이다.
마리와 피에르 퀴리가 공동으로 방사능에 대해 연구했지만 1903년 가을 노벨상 선정위원회는 원래 앙리 베크렐과 피에르 퀴리를 수상자로 결정했다. 마리는 공동연구자이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제외했다. 이때 위원 중 한 사람인 스웨덴의 수학자 미탁 래플러가 이의를 제기했다. 방사능 연구는 피에르의 부인 마리가 상당한 역할을 했으므로 추천이 없더라도 공동수상자에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위원회는 마리의 업적이 남편의 업적 중 일부일 뿐이라며 이를 일축했다. 마리의 역할을 잘 알고 있던 미탁 래플러는 급히 상황을 알리는 편지를 피에르에게 보냈고 피에르는 노벨상 수상에서 마리를 배제할 수 없음을 밝히는 답장을 보내 결국 베크렐과 함께 3자가 공동수상하게 됐다.
그러나 퀴리 부부는 건강이 좋지 않아 스웨덴에서 개최된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방사성 물질의 연구가 그들의 건강을 해쳤고 특히 1903년 8월 유산을 한 까닭에 마리는 몇 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몸을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04년 말 마리가 또 딸(에브)을 낳자 1905년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린 후 스웨덴에 가서 노벨상을 받았다. 피에르는 노벨상 수락 연설에서 자신들의 발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연했다.
“일부 물질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나오는 이 선은 베크렐선이라 하며 우리는 이 선을 방출하는 물질을 방사성물질이라 합니다. 퀴리와 저는 특정 광물에 약간 존재하는 새로운 방사성물질을 발견했지만 거기서 나오는 방사능은 대단히 강렬합니다. 저희는 비스무트와 화학적 성질이 비슷한 폴로늄과 바륨, 화학적으로 가까운 라듐을 분리했습니다. 그때부터 드비에른 씨는 희토와 비슷한 방사성물질인 악티늄을 분리했습니다. 폴로늄과 라듐, 악티늄은 우라늄과 토륨보다 백만 배는 더 강력한 방사선을 뿜어냅니다. 이 물질로 방사능 현상을 자세히 연구할 수 있고 최근 몇 년간 여러 물리학자들이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오늘밤 저는 라듐에 대해 말씀드리는데 얼마 전 저희가 순수 상태로 분리한 원소임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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