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한국유산)/경주역사지구 답사 70

경주역사유적지구 답사 (10) : 남산지구(들어가기I)

경주역사유적지구의 꽃이라고 볼 수 있는 대릉원지구를 답사했다면 다음 일정을 어떻게 잡느냐가 관건이다. 흔히들 ‘매를 먼저 맞을래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맞을래’ 또는 ‘좋은 소식을 먼저 들을래, 나쁜 소식을 먼저 들을래’라고 말하는데 경주 역사지구를 답사할 때 이런 말이 적격이다. 남산을 답사하려면 남다른 고생이 필요한 곳도 있으므로 이를 먼저 답사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다소 쉬운 일정부터 시작하느냐를 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경주역사유적지구는 5구역으로 나뉘었지만 경주가 평탄한 대지위에 건설되었으므로 접근하는 것이 비교적 수월하다. 반면에 남산지구는 포석정과 같은 과학 유산과 왕릉 같은 불교와 연관이 없는 문화재도 있지만 야외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온 산이 불교 문화재로 ..

경주역사유적지구 답사(9) : 대릉원지구(4) 천마도

시험대상의 발굴 무덤에서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흔히 말하는 대박이 터졌다. 찬란한 신라금관을 포함하여 금제의 호화로운 허리띠와 그 장식은 물론 목에 걸었던 경식(頸飾), 천마도 등 무려 11,526점에 달하는 엄청난 유물이 출토된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간판스타가 천마도다. 천마도의 크기는 가로 75센티미터, 세로 56센티미터, 두께 0.6센티미터로 용도는 ‘말다래’다. 장니(障泥)라고도 불리는 말다래는 말안장에서 늘어뜨려 진흙이 사람에게 튀는 것을 막는 장식이다. 말 안장의 좌우에 매달던 것이므로 처음 발굴될 때는 2장이 겹쳐 있었다. 한 장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으나 같은 그림으로 된 나머지 한 장은 무사하여 이것이 국보 207호다. 천마도는 신라뿐 아니라 삼국시대 전체를 통틀어 벽화를 ..

경주역사유적지구 답사(8) : 대릉원지구(3) 금관

금관은 고고학자들에게 큰 고민을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국내에서 출토된 금관 중 천마총 금관의 직경이 20센티미터, 금관총 금관이 19센티미터, 서봉총 금관 18.4센티미터, 황남대총 금관 17센티미터, 금령총 금관 16.4센티미터, 호암미술관 소장 금동관 16.1센티미터, 복천동 금관 15.9센티미터로 중간 값은 황남대총 금관의 17센티미터로 둘레는 53.4센티미터다. 이 크기는 12살짜리 남자 어린아이의 머리둘레에 해당한다. 금관의 크기가 작은 이유로 금관을 어린아이일 때 사용하고 장성해서는 다른 관을 사용했다는 추정도 가능하지만 신라의 금관처럼 정교하고 호화로운 금관을 어린아이용 소위 장난감으로 만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다른 이유로는 금관을 사용하던 왕이 어린 나이에 사망했..

경주역사유적지구 답사(7) : 대릉원지구(2) 적석목곽분II

대릉원지구의 간판스타라면 사적 제40호인 경주황남리고분군 속칭 대릉원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대릉원에는 미추왕릉, 천마총, 황남대총 등 많은 고분들이 있는데 야간에도 개장하여 어느 곳보다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사적 제175호인 미추왕릉은 여러 모로 황남대총이나 천마총과 다르다. 우선 무덤의 주인이 누군지 확인되었다는 점이고 또 무덤 둘레에 담장이 둘러져 있다. 묘역 출입을 통제하는 문도 세워져 있으며, 무덤 앞쪽에 제사를 모시는 사당인 숭혜전도 건립되어 있다. 미추왕이 그토록 사후에 큰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그가 흉노 휴저왕의 황태자 김일제의 후손으로 김씨 최초의 신라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경북 청도에 있는 이서국이 금성 즉 경주를 공격해왔는데 신라가 이기지 못했다. 이때 갑자기 대나무 잎을 귀에 꽂..

경주역사유적지구 답사(6) : 대릉원지구(1) 적석목곽분I

탈해왕릉에서 경주로 직진하면 곧바로 유네스코세계유산인 대릉원지구를 비롯하여 역사의 도시 경주에 도달한다.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경주역사지구는 5구역으로 나뉘어 있지만 큰 틀에서 모두 인근이므로 일정을 어떻게 잡든 큰 차이가 없다. 각자의 편의에 따라 답사에 임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곳에서는 대릉원지구를 먼저 방문한 후 다음 일정으로 넘어간다. 천년 고도 신라를 외국인과 함께 답사해보면 한마디로 놀랍다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을 꼽으라면 경주 시내 곳곳에 동산만한 무덤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경주 중앙에 있어 마음껏 걸어 다닐 수 있다며 더욱 신기하게 생각한다. 생자와 사자가 함께 있는 도시는 많이 있지만 경주와 같이 평지에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한국의 경우만 ..

경주 역사유적지구 답사 (5)

https://youtu.be/uzNbVDxtYXE 큰 틀에서 형산강 좌측에서 우측으로 건너면 천년 고도 경주의 일곽이 된다. 남산지구를 포함하여 5구역으로 나뉘어진 유네스코세계유산인 경주역사유적지구의 본향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경주 소금강산(북악)을 지나칠 수 없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굴불사터에 사면석불(보물 제121호)이 있고 이차돈의 순교와 관련이 있는 백률사가 있다. 소금강산이라는 이름 때문에 산세가 험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높이 280여 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원래 소금강산은 신라 오악 중 하나로 이차돈의 순교 이후 붙여진 이름이다.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이차돈이 순교하는데 그의 목이 잘라지자 머리가 하늘 높이 솟았다가 떨어진 곳이 북악으..

경주 역사유적지구 답사 (4)

https://youtu.be/GNPsDy83B_w 경주 형산강 좌측 유산(3) 서악리삼층석탑의 좌측으로 선도산의 주능선 말단부에 해당하는 위치에 제24대 진흥왕(540∼576 재위), 25대 진지왕(576∼579), 46대 문성왕(839∼857), 47대 헌안왕(857∼861)의 무덤이 있다. 신라 24대 진흥왕은 540년부터 576년까지 36년 동안 왕위에 있었으므로 재위 기간은 길지만 일곱 살에 즉위를 한 탓에 사망 당시 나이는 43세에 지나지 않았다. 진흥왕은 삼국통일의 기반을 쌓았다고 알려지는 등 한국의 왕으로서는 보기 드문 행운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다. 법흥왕이 불교 공인 이래 처음 창건 공사에 들어갔던 흥륜사를 완공했고 일반인이 출가하여 스님이 되는 것을 허락하였다. 더구나 진흥왕의 신라군은..

경주역사유적지구 답사 (3)

https://youtu.be/9cVivYLJF4E 단석산 신선사에서 하산하여 건천IC로 향하면 통일신라 이전의 왕족이나 귀족들의 무덤인 대소 50여기의 적석목곽분(32기 확인)들이 마을처럼 운집해 있는 사적 제43호 경주금척리고분군(慶州金尺里古墳群)을 만난다. 안내판에 의하면 박혁거세가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금으로 된 자(金尺)를 주었는데 왕이 꿈에서 깨어나 보니 손에 그것이 쥐어져 있었다. 왕은 꿈에 신인이 가르쳐준 대로 죽은 사람을 금자로 재자 다시 살아났고, 병든 사람을 재면 병이 나았다. 소중하게 간직하여 나라의 보물로 자자손손 물려오던 중, 당나라 황제가 사신을 보내어 신기한 금자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당나라 황제의 말이기는 하지만 왕은 이를 감추기 위해 무덤을 만들어 금자를 감추었..

경주역사유적지구 답사 (2)

https://youtu.be/rK-tWlfcKGY 경주 들어가기 : 형산강 좌측 유산(1) 천 년 고도 경주로 들어가는 길은 여러 가지인데 이곳에서는 서울에서 경부 고속도로를 통해 경주로 들어가는 경우를 기본으로 한다. 그럴 경우 경주IC가 아닌 건천IC로 빠져나가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고속도로로 주행하면서 경주IC에서 내리지만 건천IC를 시발점으로 잡으면 형산강 좌측인 단석산신선사마애불상군(국보 제199호), 금척고분군(사적 제43호), 법흥왕릉(사적 제176호), 효현동삼층석탑(보물 제67호), 무열왕릉(사적 제20호), 서악리고분군(사적 제142호), 경주서악리삼층석탑(보물 제65호), 서악동마애여래삼존입상(보물 제62호), 김유신 묘(사적 제21호), 진덕왕릉(사적 제24호), 경주나원리5층..

경주 역사유적지구 답사 (1)

https://youtu.be/9yMt9_iNp1k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유산 가운데 하나인 경주는 다소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1995년 경주에 있는 불국사ㆍ석굴암이 1차로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2000년 보다 큰 영역의 경주시 전체가 ‘경주역사유적지구’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국사와 석굴암은 세계유산 속의 세계유산이라 볼 수 있다. 경주 일원이 ‘경주역사유적지구(Kyongju Historic Areas)’라는 이름으로 등재되었다는 것은 다른 유산과는 다소 다르다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다. 종묘나 창덕궁들은 단일 품목으로 등재되었지만 경주는 도시 전체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주와 같은 예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우선 1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는 세계사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