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 97

노예제 찬성자가 아닌 노예해방자 링컨(1)

youtu.be/VOhWhsYqgzM 링컨(1809〜1865)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그의 별명은 ‘정직한 에이브(Honest Abe), 장작패는 사람(The Railsplitter), 위대한 해방자(The Great Emancipator) 등으로 불린다. 남북전쟁에서 승리해 미합중국을 보존하고 노예를 해방시킨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으로 미국의 여러 영웅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인물로 그에 대한 평가는 그야말로 찬양일색이다. 사실 링컨의 모습은 불굴의 정신력을 가진, 자상하고 친절한 아저씨의 모습이다. 매우 인간적이고 따뜻한 인격의 소유자이며, 연방의 구원자, 노예 해방자로서의 역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구구절절 설명된다. 간단하게 말하면 켄터키의 가난한 오두막집에서 태어나 독..

마르코 폴로, 중국 여행 없는 동방견문록(10)

youtu.be/2quF2fSAtyA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 기록된 모든 곳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마르코 폴로가 직접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루스티켈로가 받아쓴 것이기 때문에 여행기라기보다 정보지의 성향도 큰 것도 사실이다. 루스티켈로가 지리, 인구, 교역 등에 관한 마르코의 방대한 기록과 구술을 토대로 영웅담 분위기를 가미해 새 작품으로 탄생시켰다는 얘기다. 몽골 군주간의 전쟁 장면을 삽입하고 마르코가 요란하게 묘사한 쿠빌라이 궁전을 더욱 현란하게 치장한 것도 마르코가 아니라 루스티켈로이며, 쿠빌라이 군대에게 폴로 일행이 투석기를 만들어주었다며 졸지에 그들을 병기제조기술자로 둔갑시킨 것도 루스티켈로라는 설명이다. 󰡔동방견문록󰡕의 진위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지만, 1940년..

중국 여행 없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9)

youtu.be/CP5M-uqtCyE 마르코 폴로의 중국 여행을 의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증거는 또 있다. 원나라의 공식 사서에는 외국인에 대한 기록이 매우 많은데, 이상하게도 마르코 폴로에 대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역사책과 바티칸의 문서보관실에는 폴로 가족에 관한 기록이 없다. 반면 1260년 11월에 팔랑에서 상두로 간 사절단이 몽골에 도착해 환영받았다는 사실은 중국 연대기에 적혀 있다. 학자들이 가장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마르코 폴로를 포함한 폴로 가족이 원나라로 들어가는 여행로다. 󰡔동방견문록󰡕에 따르면 폴로 가족은 페르시아와 아프가니스탄을 통과해 카라코람 산맥을 거쳐 원나라 서쪽 관문인 카슈가르에 도착했다. 마르코는 노아의 방주가 있다는 아라라트 산에 대해 곁가지로 이야기하면서 ..

중국 여행 없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8)

youtu.be/NWgZ_ieYF0I 마르코 폴로가 아시아를 여행할 때 이슬람제국은 몽골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의 내용으로 학자들을 크게 괴롭힌 것은 마르코 폴로 가족이 몽골인을 위해 투석기를 제작했다고 기록했다는 점이다. 마르코 폴로는 몽골인이 자신이 개발한 투석기를 이용해 중국의 송나라 도시 샹양(襄陽)을 정복했다고 적었다. ‘샹양은 열두 개의 크고 부유한 도시를 관할하는 만지 지방의 큰 도시로 상업과 광범위한 제조업의 대중심지다. 이곳 주민들은 시체를 화장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타타르 황제(원나라)의 지배를 받는 것은 물론 황제가 발행한 지폐를 사용한다. 이곳은 대도시답게 모든 물건이 충분히 공급돼 만지 지방이 점령된 다음에도 황제에게 항복하기를 거부하고 3년간 포위 공격..

마르코 폴로, 중국 여행 없는 동방견문록(7)

youtu.be/wsrBj-MZzT8 마르코폴로의 이야기에 석연치 않은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있지만 그를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 중 하나는 그가 유명한 금패를 갖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금패는 역참과 함께 몽골이 세계를 제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핵심 요소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영역을 자랑했던 몽골 제국의 출현으로 유라시아 대륙은 하나의 나라가 되었다. 두 대륙을 연결하는 육로나 해로가 몽골 제국에 의해 뚫린 것은 아니지만 두 세계간의 거리는 크게 단축되었고 왕래자도 큰 폭으로 늘어났다. 동양사학자 박한제 교수는 몽골 제국의 역사가 1260년을 경계로 양분된다고 말한다. 몽골군이 동쪽의 한반도에서부터 서쪽의 도나우 강 하구, 지중해 연안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을 넓혔던 시기를 전기로 보고, 쿠빌라이(재위 1..

중국 여행 없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6)

youtu.be/7H5WewzpKvQ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갖고 온 금패다. 당대에 원나라를 여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폴로 형제는 분명 원나라의 금패를 갖고 돌아왔다. 금패는 폭은 좁지만 길이 약 40센티미터나 되는 매우 특이한 물건으로 사실 금패가 있으면 제국 안에서 어디를 가든 지방관리의 호위 아래 한 지방에서 다른 지방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고, 식량을 비롯해 모든 필수품을 받을 권리가 부여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귀향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작 귀향하는 폴로 형제를 괴롭힌 것은 홍수, 폭풍우, 눈, 빙하 등의 악조건이었다. 어쨌든 이들은 3년에 걸쳐 소아르메니아 연안의 현 알렉사드레타 만에 있는 라이아스(Laya..

중국 여행 없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5)

youtu.be/XRulVWM6SxA 마르코 폴로를 두둔하는 한 가지 가설은 베네치아의 유력 가문들은 제노바와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적어도 한 척 이상의 갤리선을 준비토록 명령 받았다고, 그가 아시아에서 돌아오자 폴로 가문의 갤리선 선장으로 임명되었다는 것이다. 일설에는 마르코 폴로가 코르출라 전투보다 다소 일찍 일어난 1296년의 전투에서 포로가 되었다고도 한다. 마르코 폴로와 동시대인이던 도미니쿠스회의 수도승 야콥 굿다이가 편찬한 연대기 󰡔이마고 문디󰡕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1296년에 아르메니아 해에 있는 레이아스라는 곳에서 15척의 제노아 함선과 25척의 베네치아 함선 사이에 전투가 벌어진 끝에 베네치아의 함선이 파괴되어 모든 선원은 살해 혹은 포로가 되었다. 포로 중에는 마르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