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한국유산)/조선왕릉 답사 89

조선 왕릉 답사 (19) : 제1구역 광릉(1)

https://youtu.be/QLg_uJ1-R6g 주엽산 자락에 있는 광릉(사적 197호)은 조선 제7대 세조(1417〜1468)와 정희왕후(1418〜1483)의 능으로 면적만 무려 249만 4,800제곱미터나 달한다. 풍수가들은 광릉을 쌍룡농주형(雙龍弄珠形,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형상)이라고 한다. 광릉 자리가 좋아서 이후 400여 년간 세조의 후손이 조선을 통치했다는 설명도 있다. 광릉 숲은 2010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는데 식물 865종, 곤충 3,925종, 조류 175종 등 모두 5,710종의 생물이 산다. 여기엔 흰진달래 등 광릉 숲 특산식물과 장수하늘소 등이 포함돼 있다. 단위 면적당 식물 종 수는 광릉 숲이 헥타르(㏊)당 38.6종으로 설악산 3.2종, 북한산..

조선 왕릉 답사 (18) : 제1구역 사릉

https://youtu.be/YhGLgVZv2yE 홍유릉 인근에 있는 사릉(사적 209호)은 비운의 왕인 제6대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1440〜1521)의 능이다. 사릉은 왕릉보다도 문화재청이 관할하는 궁과 능에 필요한 나무를 기르는 양묘사업소 묘포장으로 보다 유명하다. 과거에 일반인들에게 공개한 적이 있었으나 방문객이 없어 비공개 왕릉으로 분리되었다가 2013년 1월1일부터 태강릉의 강릉, 동구릉의 숭릉과 함께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조선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묘포장에 있는 종자은행과 소나무 등 각종 유전자원들이 궁궐과 능원의 생태문화자원 보존에 의미가 있다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알려진다. 이곳에 있는 어린 소나무 묘목들은 강원도 삼척의 태백산맥 능선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5대조 묘..

조선 왕릉 답사 (17) : 제1구역 홍유릉(2)

https://youtu.be/fcVRnNArWVQ ② 유릉(裕陵) 조선왕조 마지막 왕릉인 제27대 순종(1874〜1926) 및 순명황후 민씨(1872〜1904), 순정황후 윤씨(1894〜1966)의 유릉도 황제릉으로 조성됐다. 순종은 고종과 명성황후 사이에서 태어났고 광무원년(1897)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황태자가 되었으며 1907년 일제의 강요와 모략으로 고종이 물러나자 그 뒤를 이어 황제가 됐다. 1907년 황제로 즉위했지만 일본의 꼭두각시로 변한 친일파들에 의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다가 1910년 8월 22일 총리대신 이완용의 주재로 열린 어전회의에서 한일합병조약 조인을 거쳤는데 문제는 황제인(옥쇄)의 날인이다. 순정황후 윤씨(1894〜1966)가 병풍 뒤에서 어전 회의를 엿듣고 있다가 친일 성..

조선 왕릉 답사 (16) : 제1구역 홍유릉(1)

https://youtu.be/wPrIaQn6ZpY 조선왕릉 중에서 남다른 격식을 갖고 있는 곳이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홍유릉(洪裕陵, 사적 207호)이다. 제26대 고종(1852〜1919) 및 명성황후 민씨(1851〜1895)의 홍릉(洪陵)과 제27대 순종(1874〜1926) 및 순명황후 민씨(1872〜1904), 순정황후 윤씨(1894〜1966)의 유릉(裕陵)이다. 이는 당대의 품격이 조선의 왕이 아니라 황제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시대에 중국보다 한 단계 아래인 왕만 존재했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조선시대에도 엄연히 ‘황제(皇帝)’가 있었는데 우선 고종과 순종이 황제였고 더불어 무려 8명이 황제다. 이들 8명은 추존된 황제로 생전에 왕위는 오르지 못하였지만 사후..

조선 왕릉 답사 (15) : 제1구역 동구릉(12)

https://youtu.be/dOc8l2e9ztI ⑨ 수릉 동구릉 중앙 길을 따라 건원릉 방향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릉이 수릉으로 추존 익종(문조, 1809〜1830) 및 신정왕후 조씨(1808〜1890)의 능이다. 일반인들은 익종과 신정왕후의 무덤이라고 하면 누구인지 잘 모르겠지만 조선 왕실사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 ‘조대비(趙大妃)’라고 하면 기억이 난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을 고종으로 즉위케 한 당사자가 바로 조대비 신정왕후다. 문조는 4살부터 왕세자(효명세자)로 책봉되고 19살부터 대리청정하면서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형옥을 신중하게 하는 등 백성을 위한 정책 구현에 노력했으나 22세에 요절했다. 순조의 뒤를 이어 문조의 아들 헌종이 즉위하자 헌종은 부왕인 문..

조선 왕릉 답사 (14) : 제1구역 동구릉(11)

https://youtu.be/JnCY5pfVLBk ⑧ 경릉 : 경릉은 제24대 헌종(1827〜1849) 및 효현왕후 김씨(1828〜1843), 계비 효정왕후 홍씨(1831〜1904)를 모신 동구릉 중 아홉번째 능이다. 능이 조성된 순서로 따지면 수릉이 가장 나중에 만들어졌지만 재위 순으로 꼽으면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헌종은 익종으로 추존된 문조와 풍원부원군 조만영의 딸 신정황후의 아들로 창경궁의 경춘전에서 왕가의 정통성을 한 몸에 안고 태어났으며 4세에 아버지인 효명세자가 급서하여 바로 왕세손에 책봉되면서 6세부터 강연(講筵)을 열어 왕자로서의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8살 때에 할아버지인 순조가 사망하여 1834년 순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헌종은 조선의 왕 중 가장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인물이기도..

조선 왕릉 답사 (13) : 제1구역 동구릉(10)

https://youtu.be/Rz_yeBhRF2c ⑥ 휘릉 : 휘릉은 제16대 인조계비 장열왕후 조씨(1624〜1688) 능이다. 장렬왕후는 한원부원군(漢原府院君) 조창원(趙昌遠)의 셋째 딸로 인조의 원비 인열왕후(仁烈王后) 한씨가 세상을 떠나자 인조 16년(1638년) 15세의 나이로 인조와 가례를 올려 계비가 되었다. 조선 왕조에서 벌어진 당쟁사의 중심에 위치한 사람이 바로 장열왕후다. 이는 어린 나이에 인조와 결혼하였는데 1649년 인조가 사망하자 26세에 대비가 되었으며 1651년 효종으로부터 존호를 받아 자의대비라 불렸고 1659년 효종이 세상을 뜨자 대왕대비에 올랐다. 장렬왕후는 증손자 숙종이 왕위에 오른 뒤에도 14년을 더 살아 숙종 14년(1688)에 사망했는데 인조 계비에 이어 효종, ..

조선 왕릉 답사 (12) : 제1구역 동구릉(9)

https://youtu.be/FfgCGHfvXLY 왕실의 혼례인 가례(嘉禮)는 의식 절차와 진행을 의궤(儀軌)로 기록하였는데,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의 가례 의식을 기록한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는 20여 건이 된다. 왕의 혼례식을 살펴보면 대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가례는 좁게는 관례나 혼례를 의미하는데 왕가에서는 왕의 등극이나 왕세자, 세손 등의 책봉 의식 또는 대비나 왕대비에게 존호를 올리는 의식 등도 모두 가례라 한다. 관례는 성인식에 해당하는 것으로 대개 일반인은 20세에 올리지만 정확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며 혼례를 치르기 전에 행하는 의식으로 변했다. 조선시대에 왕가의 혼례는 근본적으로 유교식이다. 유교의 혼례는 육례(六禮)라 하는데 납채(納采), 납징(納徵), 고기(告期), 책..

조선 왕릉 답사 (11) : 제1구역 동구릉(8)

https://youtu.be/q6qJafZ0w1I 조선왕실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혼례식을 들 수 있다. 왕과 왕세자, 왕세손 등 지위에 따라 격을 달리하는 혼례식이 벌어졌고 시대별로 내용에 조금씩 변화가 있었는데 영조 35년 (1759) 즉 66살에 15세의 신부 정순왕후와의 결혼식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다. 왕과 왕비의 나이 차이는 51세로 조선왕실의 최고 기록인데 두 사람의 혼례식이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에 상세히 기록되어 250여 년 전의 왕실 혼례 정황을 상세히 알게 해 준다. 왕실에서 혼례식이 있게 되면 먼저 총괄본부인 ‘가례도감’이 구성되어 총책임자인 도제조는 정승급, 부책임자인 도제는 판서급에서 임명했다. 도제 3인 중 2인은 호조판서와 예조판서인데 의식절차에 대한 ..

조선 왕릉 답사 (10) : 제1구역 동구릉(7)

https://youtu.be/gtfh13Fj0Vo ⑤ 원릉 원릉은 조선 왕조 왕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긴 영조(1694〜1776) 및 계비 정순왕후 김씨(1745〜1805)의 능이다. 1699년 연잉군(延礽君)으로 봉해지고 1704년에 진사 서종제(徐宗悌)의 딸을 맞아 가례를 올린 후 1712년에 궁궐을 나가 살게 되자 숙종은 연잉군의 집에 ‘양성(養性)’이란 당호를 하사했다. 영조는 영명한 군주로 기록되는데 즉위 이전 18세 때부터 왕세제로 책봉된 28세까지 약 10년간 궁궐 밖에서 생활을 하여 서민적이고 절검하는 생활 습성이 배어있었다. 그러므로 조선 왕 중에서 남다르게 세상 물정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백성의 고민을 해소시키는데 누구보다 앞장 선 것은 이 때문으로 본다. 영조는 숙종의 아들이며 경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