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한국유산)/조선왕릉 답사 89

조선 왕릉 답사 (39) : 제2구역 서삼릉(5)

https://youtu.be/ikhRhSS21OE ② 예릉 예릉은 조선 제25대 철종(1831〜1863) 및 왕비 철인왕후(1837〜1878) 김씨의 능이다. 철종이라는 공식적인 이름보다 ‘강화도령’으로 더 잘 알려진 주인공 원범은 그 생애가 짧지만 남다른 삶을 살아 수많은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할아버지는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이지만 아들 상계군이 반역을 꾀했다는 명목으로 강화도로 유배를 가는데 그때 철종의 나이는 14세였다. 약 5년간 즉 19살 때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던 원범은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순조의 비 순원왕후인 대왕대비에 의해 왕통을 물려받았다. 그야말로 신데렐라도 이와 같은 경우가 없을 정도인데 그가 왕이 된 것은 당대의 실권자인 안동 김씨들이 촌에서 농사나 짓던 ..

조선 왕릉 답사 (38) : 제2구역 서삼릉(4)

https://youtu.be/LdaW17AUFKw 의녀들은 대부분 관비 출신이었던 만큼 천비의 신분에서 벗어나고자 부단히 애를 썼는데 그 유일한 방법은 양반의 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의녀를 첩으로 삼은 양반은 자신이 소유한 여종을 의녀 대신 관비로 넣고 의녀를 관비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그렇게 되면 의녀는 양인 신분이 되고, 비록 서출이지만 그녀의 자식도 양인으로 살 수 있었다. 당시 의녀들은 양반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기녀처럼 노골적으로 술을 따르고 몸을 팔지 않으면서도 은밀히 정을 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의녀들로서도 양반들과 비교적 가까이 상대할 수 있으므로 양반의 첩으로 들어가 신분상승을 꾀하는 것은 그녀들이 원하는 최고의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의녀의 기본 임무는 간병이다. 부인..

조선 왕릉 답사 (37) : 제2구역 서삼릉(3)

https://youtu.be/spcXnocAVhQ 의녀가 무엇인지 일반인들이 모두 알게 된 것은 공전의 흥행에 성공한 2003년 TV드라마 「대장금」 때문이다. 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극으로, ‘장금’이 여인의 몸으로 조선시대 최고 의녀의 길을 걷는다는 이야기다. 이와 같이 대장금이 최고의 의녀로서 궁중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유교 사상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획기적인 의료제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여자 의사의 양성이다. 성리학의 영향으로 ‘남녀칠세부동석’의 원칙이 철저히 지켜질 정도로 남녀의 구별이 엄격해지자 많은 부녀자들이 남자 의사의 진찰을 거부하였고, 그로 인해 불필요한 희생자들이 생겨나기 일쑤였다. 아무리 가벼운 병이라도 전문인으로부터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하면 곧바로 ..

조선 왕릉 답사 (36) : 제2구역 서삼릉(2)

https://youtu.be/7uckUzmvnbA 이러한 내용을 드라마에서 다루지 않을 수 없다. 2003년 출시된 「대장금」으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남존여비의 봉건적 체제하에서 집념과 의지로 궁중최고의 요리사가 되고, 우여곡절 끝에 조선 최고의 의녀가 되어 내의원의 수많은 남자들을 물리치고 조선의 유일한 임금 주치의가 되어 당상관 직에 해당하는 대장금의 칭호를 받았다. 왕과 왕비, 후궁과 권신 중심의 권력쟁탈과 암투를 기본으로 엮는, 기존 궁중사극에서 벗어나 미천한 신분의 주인공 장금을 중심으로 궁중 안의 하층민인 무수리, 나인, 상궁, 내시, 금군병사, 정원서리, 내의원 사령 및 의녀들의 애환과 갈등을 보여준다. 또한, 궁중요리를 중심으로 그 종류와 조리방법을 상세히 소개하고 아울러 보양식을 ..

조선 왕릉 답사 (35) : 제2구역 서삼릉(1)

https://youtu.be/A0MuBGjqYgs 서삼릉(사적 200호)은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은 후 현재와 같은 능역이 된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으로 조성된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은 원래 3대 태종의 헌릉 옆으로 택지가 결정되었으나 권력다툼으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졌고 이후 중종의 정릉(靖陵)이 자리를 잡았다가 강남구 삼성동의 선릉으로 옮겨갔고 그 아들인 인종과 인성왕후 박씨의 효릉이 조성되었다. 이후 철종과 철인왕후의 능인 예릉이 들어서면서 ‘서삼릉’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서삼릉에는 의친왕과 의친왕의 모친 덕수 장씨의 묘도 있었으나 1996년 의친왕묘, 2009년엔 의친왕 모친인 덕수 장씨 묘가 서삼릉에서 홍유릉 경역으로 천장하였다. 그러므로 3기의 왕릉 이외에도 3기의 원과 1묘, 왕자·..

조선 왕릉 답사 (34) : 제2구역 서오릉(13)

https://youtu.be/-E3GEFVPWtk ④ 익릉 : 서오릉에 있는 능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익릉은 제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김씨(1661〜1680)의 능이다. 숙종과 인경왕후, 제1계비인 인현왕후, 제2계비인 인원왕후, 희빈 장씨의 묘소가 모두 서오릉에 있는데 그 시초를 열어준 인물이기도 하다. 인경왕후는 1670년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1674년 숙종이 즉위하면서 14세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20세 때 천연두를 앓다가 사망했다. 인경은 ‘인덕을 베풀고 정의를 행하였으며 자나깨나 항상 조심하고 가다듬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경왕후는 남편인 숙종보다는 40년, 아버지인 김만기보다도 7년을 앞서 세상을 떠나 아쉬움을 남긴다. 왕비가 천연두에 걸렸기 때문에 병문안도 하지 ..

조선 왕릉 답사 (33) : 제2구역 서오릉(12)

https://youtu.be/09VJvLDNyjs ③ 창릉 창릉은 제8대 예종(1450〜1469) 및 계비 안순왕후 한씨(1445?〜1498)의 능이다. 예종은 세조와 정희왕후의 둘째 아들인데 의경세자가 요절하는 바람에 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재위기간은 14개월에 불과하다. 세조는 자신의 병이 위중해지자 예조판서 임원준을 불러 “내가 세자에게 전위하려 하니 모든 일을 준비하라”고 명했다. 정인지 등이 “성상의 병환이 점점 나아가시는데 어찌하여 자리를 내놓으려고 하십니까?” 하자 세조는 “운이 다하면 영웅도 마음대로 못하는데 너희가 나의 하고자 하는 뜻을 어기니, 이는 나의 죽음을 재촉하는 것이다”라고 한 뒤 내시로 하여금 면복을 가져오게 하여 친히 세자에게 내려주었다. 예종의 나이 18세였다..

조선 왕릉 답사 (32) : 제2구역 서오릉(11)

https://youtu.be/j97mJOPsWFA 과학은 폐비 윤씨가 일반인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행동에 도전했다. 윤씨의 행동이 엄격하기 짝이 없는 조선 왕실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점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에서는 폐비 윤씨가 출산 후 급격하게 성격이 변한 원인을 산후 우울증으로 추정했다. 경계선 성격장애로 설명하기도 한다. 감정 기복이 심하면서도 충동적인 성격에 식사 도중 화를 참지 못해 상을 엎었다는 등 분노 조절에 문제를 보이는 것은 물론 후궁들에게 협박하고 성종의 처소에 무단침입을 하거나, 궁녀들에게 ‘전하를 모시면 죽을 줄 알아라’라는 협박을 하는 등 성종에게 심한 집착을 보이는데, 이런 것은 경계선 성격장애 환자들이 보이는 대표적인 모습들이라는 설명이다. 경계선 성격장애는 청..

조선 왕릉 답사 (31) : 제2구역 서오릉(10)

https://youtu.be/rRPDlznpP1w 학자들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약을 제조했다고 추정한다. 사실 한약재만으로 사람을 죽이는 독극물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상이나 수은처럼 확실한 즉효성 독약이 있는 반면 부자, 초오, 천오두, 천남성 등도 즉효에 가까운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행인, 마황, 반하, 파두 등도 후보자다. 일부 학자들은 구하기 힘든 것을 사용하기보다는 비상이나 초오를 사약의 재료로 응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가장 큰 의문은 정말로 급사하느냐인데 자료에 의하면 천차만별이다. 상당한 량을 복용하고도 사망에 이르지 않는 사례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를 보면 바로 즉사하게 만드는 극약계열보다는 서서히 죽게 만드는 형태의 약이 많았을 것으..

조선 왕릉 답사 (30) : 제2구역 서오릉(9)

https://youtu.be/fLxJcEDHYhI 학자들에 따라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것 중 하나로 사약을 거론한다. 조선사 전체를 통해 사약처럼 많은 이야기를 만든 소재가 없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약처럼 모순적인 것은 없다. 약이란 사람을 치유하는 것인데 사약은 이와 반대로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한 약이다. 그것도 조선조에서 왕이 직접 명령하여 집행한 것이다. 독약은 다른 문명권에서 흔히 암살할 때 사용했는데 조선에서는 독약을 중앙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집행하는 사형에 사용했다는데 특이성이 있다. 조선시대에 중죄인을 처단하기 위한 사형 집행 방법으로는 교형, 참형, 능지처사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교형은 죄인의 목을 매서 죽게 하는 소위 교수형이고 참형은 이보다 무거운 형벌로 목을 베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