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한국유산)/조선왕릉 답사 89

조선 왕릉 답사 (9) : 제1구역 동구릉(6)

https://youtu.be/QoJwxyfbtVo ④ 숭릉 : 제18대 현종(1641〜1674) 및 명성왕후 김씨(1642〜1683)의 능이다. 숭릉은 동구릉 안에 있는 왕릉 중에서 유일하게 비공개였는데 2013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 했다. 동구릉 9개 중 입구에서 볼 때 가장 좌측에 있는데 숭릉 안내판에서 왕릉까지 적어도 10〜15분 정도 걸어야 하지만 이 정도의 발품을 팔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현종은 효종의 맏아들로 1641년 봉림대군(효종)이 심양에 볼모로 가 있을 때 태어났다. 조선의 역대 왕 중에서 유일하게 외국에서 태어난 것이다. 1644년 귀국하였고 아버지 봉림대군이 세자에 책봉됨에 따라 1649년 왕세손으로 책봉되었다가 1659년 그의 나이 1..

조선 왕릉 답사(8) : 제1구역 동구릉(5)

https://youtu.be/rgiGI23nOjs ③ 목릉 조선왕조에서 파란만장한 생으로 수많은 일화를 만들어낸 목릉은 제14대 선조 및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 능으로 건원릉 동쪽 언덕에 있다. 제일 좌측이 선조의 능이고, 중앙 의인왕후, 우측이 인목왕후의 능이다. 선조의 릉을 목릉이라고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끌고 이황 등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나와 ‘목릉성세’라고 불려지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선조는 중종의 아들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로 1552년 인달방 사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처음에는 하성군에 책봉되었는데 명종의 후사가 없어 후계자로 지명되었고 1567년 명종이 사망하자 16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처음에는 명종의 비 심씨(沈氏)가 수렴청정을 하다..

조선 왕릉 답사 (7) : 제1구역 동구릉(4)

https://youtu.be/AbXsIgNIvwg ② 현릉 현릉은 제5대 문종(1414〜1452) 및 현덕왕후 권씨(1418〜1441)의 능이다. 문종은 세종의 장자이며 어머니는 소현왕후 심씨다. 세종 3년(1421) 8살의 나이로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437년부터 세종을 대신하여 서무를 결재했으며 막상 왕위에 오른 것은 1450년으로 그의 나이 37세였다. 세종은 1442년 군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자가 섭정을 하는 데 필요한 기관인 첨사원(詹事院)을 설치, 첨사(詹事)·동첨사(同詹事) 등의 관원을 두었다. 또한 세자로 하여금 왕처럼 남쪽을 향해 앉아서 조회를 받게 했고 모든 관원은 뜰 아래에서 신하로 칭하도록 하였다. 더불어 국가의 중대사를 제외한 서무는 모두 세자의 결재를 받으라는 명을 내리기도 ..

조선 왕릉 답사 (6) : 제1구역 동구릉(3)

https://youtu.be/sipvj1UB0v8 이성계가 이방원의 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는 조선왕조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위야 어떻든 조선 개창은 이성계였지 이방원이 아니었으므로 이성계가 이방원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로부터 도전을 받을 수 있는 빌미였다. 더구나 이성계는 태종을 거부할 수는 있지만 태종은 이성계를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방법론은 단 하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함흥에 은거해 있는 태조를 자신이 있는 수도로 모셔오는 길이다. 그러나 태상왕인 이성계를 강제로 납치해 올수는 없으므로 태조를 움직일 수 있는 인물들을 함흥으로 보내 설득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유명한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말이 생긴다. 태종은 함..

조선 왕릉 답사 (5) : 제1구역 동구릉(2)

https://youtu.be/XPwBTRroyO4 고려말 이성계의 활약은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화려하다. 공민왕 10년(1361), 독로강만호(禿魯江萬戶) 박의(樸儀)의 반란을 평정하였는데 같은 달 압록강이 완전히 얼음으로 바뀌자 홍건적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하여 삽시간에 수도가 함락되었다. 이성계는 휘하의 고려인 및 여진족으로 구성된 강력한 사병 2,000명을 거느리고 수도 탈환 작전에 참가하였다. 이들 대부분은 기병으로 이성계의 군사력은 위력적이었는데 잘 알려진 이야기는 이성계가 팔준(八駿)이라 불리는 여덟 마리 애마를 타고 다녔다는 설명이다. 다음해에 심양행성승상(審陽行省丞相)을 자처한 원나라의 장수 나하추가 수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함경도 홍원 지방으로 쳐들어왔을 때 고려에서 이..

조선 왕릉 답사 (4) : 제1구역 동구릉(1)

https://youtu.be/BMPyMc2DS8M 제1구역은 대체로 서울시 동북쪽에 있는 동구릉, 홍유릉, 사릉, 광릉을 포함하여 13개의 능이 있다. 이중 동구릉에는 9개의 능이 있어 조선왕조 42개의 릉의 거의 20퍼센트가 포함될 정도로 비중이 남다른 곳이다. 동구릉은 구리시 인창동 검암산(儉岩山)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데 9개의 능에 17위에 달하는 조선의 왕과 왕비 유택이 있는 조선 왕조의 가장 큰 가족묘로 총 면적 579,557평이나 된다. 1408년, 조선을 창건한 태조 이성계가 사망하자 태종의 명으로 능지가 정해진 곳이지만 이후 16명이나 되는 유택이 추가되었으므로 조선왕조 전 시기에 걸쳐 조성되었다 볼 수 있다. 동구릉의 자리에 대해서는 태조가 생전에 무학대사를 시켜 자신과 후손이 함께 묻..

조선 왕릉 답사 (3) : 들어가기(3)

https://youtu.be/DrYSZXxg1Tk 능침까지 올라가는 능역은 기본적으로 잔디(왕릉에서는 사초(莎草)라고 함)로 조성한다. 정자각 뒤쪽으로 작은 동산 모양의 사초지로 이어지는데 이것은 조선 왕릉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사초지 위에 오르면 장대석이라 부르는 긴 돌들이 단을 지어 놓여 있고 가장 높은 상계에 능의 주인이 영면한 봉분이 자리한다. 능의 높이는 10자〜15자, 광중(壙中) 깊이 10자. 너비 29자, 길이 25자5치이고 지름 20자〜30자이며 능상 모양은 반구형(半球形)을 이룬다. 반구형은 살림집의 지붕을 모방한 것이고 광중은 살림방을 모방한 것이라 하여 지하궁전을 의미한 현궁(玄宮)이라 부른다. 이에 반하여 일반인의 묘소는 음택(陰宅) 또는 유택(幽宅)이라 한다. 지석(誌石..

조선 왕릉 답사 (2) : 들어가기(2)

https://youtu.be/mh9uH4FwPeQ 끄새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선의 왕릉을 가능한 한 자주 방문하라고 추천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건강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등산을 하는가. 시간이 날 때마다 등산복을 입고 조그마한 산등성이라도 걸으며 자랑스러워하며 특히 산림이 우거진 곳을 주파한 후에는 삼림욕으로 건강이 좋아질 것을 기대한다. 삼림욕이라면 왕릉이야말로 적소라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왕릉은 천하의 명당 자리 즉 길지를 엄선하여 조성한다. 이와 같이 명당 자리를 찾는 것은 기(氣)가 충만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선 왕릉사를 보면 수많은 천장(遷葬)을 하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능침이 풍수지리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다(붕당 간의 정..

조선 왕릉 답사 (1) : 들어가기(1)

https://youtu.be/KT0gHNb9SE4 500년 이상 이어진 한 왕조의 왕릉들이 거의 훼손없이 온전히 남아 있는 예는 세계적으로 조선왕릉이 유일하다. 2009년 6월 동구릉·광릉·태릉 등 조선시대 왕릉(王陵) 40기가 일괄적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한국의 조선왕릉이 얼마나 세계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조선 왕릉은 무려 42기나 된다. 태조 이래 왕위를 공식적으로 이어받은 사람은 27명에 불과하지만 42릉이나 되는 것은 왕후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사망한 후 추존(追尊)된 왕과 왕비의 무덤도 왕릉이라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조선 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근본적인 요인은 왕릉이 단순한 왕의 주검이 묻혀 있는 무덤이 아니라 조선시대(1392〜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