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 85

피라미드(94) : 파라오의 저주(5)

https://youtu.be/EYVNqr9UubI ④ 투탕카문의 미라 파라오 저주의 주인공은 사실상 투탕카문의 미라다. 투탕카문의 미라가 공개되지 않았다면, 파라오의 저주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카터도 투탕카문 미라의 중요성을 알고 상당히 많은 부분을 미라와 미라의 부장품에 관련한 내용에 할애했다. 관 속의 투탕카문 미라는 약간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있었는데, 이는 미라를 관에 안장할 때 약간의 충격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라는 동서 방향으로 누워있는데, 머리가 서쪽을 향해 있다. 하지만 카터가 미라를 황금관에서 떼어낼 때 고온의 열을 사용하는 등 매우 고생했다고 전하는데, 이는 장례용 연고를 부어 딱딱하게 접착되었기 때문이다. 시체를 감싼 방식은 정통 미라를 제작하는 ..

피라미드(93) : 파라오의 저주(4)

https://youtu.be/hDMsD0yETs4 ② 황금관 카터는 석관 속의 내용물들이 고운 수의들로 싸여 있어 처음에는 상당히 실망했다. 그러나 수의를 하나하나 풀자 눈부신 광경이 나타났다. 석관 내부 전체를 가득채운 투탕카문의 황금빛 형상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황금관의 길이는 2.1미터로 오시리스 형상의 관 뚜껑이 덮여있었는데 그것을 열자 안에 두 개의 속관이 있었다. 그리고 맨 안쪽 속관은 날개 달린 이시스와 네프티스 여신이 몸체를 감싸고 있었다. 왕의 얼굴과 이목구비는 금판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두 손은 가슴 위에서 구부러진 지팡이와 도리깨를 들고 있었다. 두 눈은 화산암맥과 접촉해 변질된 석탄인 ‘선석’과 흑요석으로 만들었고 눈썹과 눈꺼풀은 청금석상감으로 장식했다. 인체형상 관에서 깃털 문..

피라미드(92) : 파라오의 저주(3)

https://youtu.be/7Eb4TXtX9Gw 카르나본 경은 카터의 전보를 받자마자 곧바로 출발하겠다는 답신을 보냈고, 11월 23일 증기선을 타고 도착했다. 11월 26일 카터는 카르나본과 카르나본 경의 딸인 에블린 등과 인부들을 뒤에 세워둔 채 문에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불을 비추면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훗날 카터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입구의 아랫부분을 막고 있는 돌무더기가 천천히 치워졌다. 지켜보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 속도가 너무나 느리게 느껴졌다. 마침내 장애물이 제거되고 문 전체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들어냈다. 결정적인 순간이 온 것으로 나는 떨리는 손으로 왼쪽 상단에 작은 틈을 만들었다. 그 틈으로 들여다보니 안은 캄캄했고 탐침을 아무..

피라미드(91) : 파라오의 저주(2)

https://youtu.be/WhNEoaHglhE 카터 또한 자신의 행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발굴 작업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자 카터는 카르나본에게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는 투탕카문의 무덤을 발굴하자고 권유했다. 사실 카르나본 경도 이런 카터의 제안이 엄청난 도박임을 알고 있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실패한 발굴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유럽의 부호로 손꼽히는 자신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파산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터와 카르나본 경에게 행운도 따랐는데 때마침 시어도어 데이비스가 투탕카문 무덤 인근의 발굴권을 이집트 정부에 반납했기 때문이다. 10년이 넘도록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1914년 발굴을 포기한 것이다. 사실 데이비스는..

피라미드(90) : 파라오의 저주(1)

https://youtu.be/cSpU8O95wvs 이집트인들이 자신의 무덤이 개방되는 것을 가장 기피했는데 이는 자신들이 저승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방해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19왕조 즉 이집트의 전성기에 사망한 투탕카문 파라오의 무덤이 현대에 발견되어, 고대이집트를 보다 충실하게 파악하게 만들어 준 기념비적인 고고학적 발굴 성과이지만, 당사자인 파라오에게는 안식을 방해받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일부 학자들은 파라오의 저주란 무덤을 열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로 무덤의 주인공이 그동안 견지한 안식을 저해한 방해꾼에게 분노와 저주를 퍼붓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즉 사자의 저주를 이집트인들이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투탕카문 파라오는 자료에 따..

피라미드(89) : 이집트를 다시 본다(5)

https://youtu.be/rG0bI8kz4OM 〇 제드(Djed pollar) 제드는 ‘인내’를 뜻하며 미라의 동쪽에 놓였다. 학자들은 제드를 오시리스 부활을 재어하는 의식에서 들어올렸던 나무통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사자의 서』에서는 제드를 사후세계에서 오시리스를 다시 일어 서게 하는 그의 척추로 언급하고 있다. 〇 네페르툼(Nefertum) 멤피스 지역의 신인 프타(Ptah)와 사크메트(Sakhmet)의 아들인데 이 부적은 이집트의 왕족들이 착용하던 짧은 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두 개의 긴 깃털과 연꽃을 이고 있으며 자신을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인 사자를 딛고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부적은 현세와 내세에서 젊은 사람들을 보호한다고 알려진다. 〇 베스(Bes) 베스는 현세와 내세에서 임산부..

피라미드(88) : 이집트를 다시 본다(4)

https://youtu.be/Qx9Xdbcuth0 〇 고왕국 시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고왕국 시대에 비로소 피라미드 복합건축물이 등장한다. 그런데 피라미드 복합건축물의 주제는 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이지만 복합건출물에는 파라오만 매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사실 피라미드건축물은 파라오의 가족과 그의 가신들의 무덤으로 한마디로 파라오를 주위로 한 가족묘지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자들은 이때부터 비로소 본격적인 절차에 의한 미라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시신은 아마천으로 싸여졌고 때때로 회반죽으로 겉면을 칠하기도 했고 석관이나 나무 관에 안치되었다. 그림을 그린 미라 마스크도 등장했고 카노픽 단지에 장기도 보관했다. 또한 금, 파이앙스로 된 도기, 홍옥수로 만든 다양한 형태의 부적들이..

피라미드(87) : 이집트를 다시 본다(3)

https://youtu.be/9nbKzYE_zRA 미라는 이집트에서 3500여 년 동안 줄기차게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집트 정황이 시대에 따라 변하므로 미라 제작 방식도 변하기 마련이다. 이는 이집트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〇 초기왕조 시대 선사시대와 선왕조 시대에 이집트인들은 주검을 사막에 그대로 매장했다. 그런데 이집트 사막의 특성상 주검이 자연스럽게 보존되자 이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주검이 마스터파와 같은 벽돌로 만든 무덤에 묻히기 시작하자 모래와의 접촉을 통한 자연건조 과정이 사라지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인위적인 방법으로 주검을 보존하는 방법을 도출했다. 이 과정은 몇 백 년을 거쳐 완성되었다고 추정하는데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미라는 무려 기원전 4400년이나 된다..

피라미드(86) : 이집트를 다시 본다(2)

https://youtu.be/QTXhswhsukk 〇 렌(ren, 이름) 이집트인들에게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름을 보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름이 현세에서 마법같은 힘을 발휘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범죄자에게 내려진 극형은 처형 전에 이름을 라메수 즉 ‘레가 잉태한 자’에서 마레스쥬 즉 ‘레가 증오하는 자’로 바꾸는 것이다. 죄인이 죽은 뒤에도 바뀐 이름이 계속 그를 저주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집트인에게는 죽은 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암송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무덤 자체는 물론 곳곳에 이름을 새겼다. 이름표는 물론 미라를 감싼 천 앞부분에 이름을 새겨 넣기도 했다. 특히 사자의 이름이 살기를 바란다는 문구도 있다. 〇 그림자 이집트인에게 그림자는 육체라는 물리적 형상에서 분리된 부..

피라미드(85) : 이집트를 다시 본다(1)

https://youtu.be/8eukj7FPMLU 고대 이집트에 대해 현대인들이 놀라는 것은 거의 3500년 동안 초지일관하게 자신들의 정신세계를 견지했다는 것이다. 즉 죽어서도 산다는 것이다. 이는 무덤과 장례를 위해 세계 어느 고대문명과도 다른 신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죽은 후의 생활을 준비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본능 즉 생존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라고 보았다. 무덤에 넣은 물건과 무덤 안에서 거행되는 의식은 모두 무덤의 주인의 성공적인 사후세계의 진입 더 나아가 영원한 삶을 기리기 위한 당연한 절차로 보았다. 한마디로 이집트인들이 3500년이나 되는 장기적인 기간 동안 다른 어떤 문명에서 볼 수 없는 자신들의 신념을 계속 유지했다. 이는 이집트인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