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 130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2)

youtu.be/3YA2WOqhqN4 올림피아가 고대 그리스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고대 올림픽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지만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제우스 신상을 제우스신전에 모셔졌기 때문이다. 서북쪽에 프리타니온이라는 제우스 대제(大祭) 때 영빈관으로 사용되던 곳이 있는데 이곳은 평소에는 신관이나 관리인들의 사무실로 사용되었는데 북쪽에 식당 및 조리장이었다. 올림픽 경기에서의 우승자들이 초대되어 식사를 하던 곳이다. 입구 오른쪽으로는 체육관의 기둥 자리와 팔레스트라가 있다. 팔레스트라는 사방 66미터의 커다란 건물로 레슬링이나 복싱 등 스포츠 운동 연습장이었다. 팔레스트라의 남쪽으로는 신관의 숙소로 사용되던 테오클레온, 서쪽 옆으로는 이로온이라는 영웅을 제사지냈던 신전터가 있다. 이곳에 인접해..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1)

youtu.be/77LBa0eW4Wg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최고의 신 제우스가 비바람은 물론 천둥과 벼락을 만드는 신이라고 믿었다. 벼락은 하늘에서 내린 신의 징벌로 생각했으므로 제우스신의 노여움을 피하기 위해 도시마다 제우스신을 모신 신전을 짓고 성대한 제사를 지냈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을 들라면 고대 올림픽 경기의 온상지인 올림피아로 세계 7대 불가사의인 거대한 제우스 신상이 있던 곳이다. 올림피아에서 제우스 신상을 건립하게 된 이유는 올림피아가 고대 올림픽이 열린 장소이기 때문이다. 먼저 고대 올림픽에 대해 설명한다. 고대 올림픽은 각 도시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펼쳤던 스포츠 제전이지만 그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가진 행사로 그리스 특유의 도시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기량을 펼..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6)

youtu.be/t6J_gXqIXGA 〈파로스 등대의 규모〉 율리어스 시저는 그의 『시민전쟁』이라는 책에서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기 위해 두 번의 전투 이야기를 쓰며 파로스 등대에 대해 적었다. 그는 ‘작은 섬의 이름을 딴 등대가 있으며 그 등대는 매우 높았다’라고 기록했다. 플리니우스는 소스트라토스에 의해 등대가 건설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건설 비용은 800 달란트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리고 프톨레마우스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해 건축가인 소스트라투스에게 건물에 그의 이름을 새기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것의 목적은 밤에 불의 불빛으로 배들이 항구의 입구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플리니우스는 건설에 들어간 자금이 800탈란트나 된다고 정확하게 경비를 적었지만 규모에 대해서는 적지 않..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5)

youtu.be/PaztIhcOZpI 〈파로스 등대의 건설〉 알렉산드리아의 쌍벽인 도서관을 지나 세계 7대 불가사의인 파로스 등대에 대해 설명한다. 예로부터 지중해 사람들은 선원들을 인도할 수 있는 거대한 기념물을 항구에 세웠다. 주로 엄청난 규모의 거상이나 먼 곳에서도 보이는 신전 건물로 또 다른 세계7대 불가사의인 로도스의 거상도 엄밀한 의미에서 파로스 등대와 거의 같은 의미로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곧바로 그러한 건물이나 거상이 항해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배들이 낮에만 도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밤에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선박들의 선원이 볼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해야 했다. 이것이 바로 기원전 280년경에 파로스 섬에 고대 역사상 가장 높은 등대를 건설하게..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4)

youtu.be/sZzZJY-Kg2M 도서관은 로마인이 점령했을 때에도 계속 그 영광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율리우스 카이사르 즉 시저가 이집트에 상륙했을 때 도서관은 또 다시 철저하게 파괴된다고 알려진다. 그가 알렉산드리아를 공격할 때 부하들이 도서관에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이 주제는 그동안 수많은 학자들을 괴롭게 만들었다. 과연 시저가 정말로 당대 최고의 도서관을 파괴했느냐이다. 당대 세계 최고 문화재를 파괴한 장본인 즉 '고대 세계의 가장 큰 재앙'을 갖고 온 사람으로 시저를 거론하는 것이 껄끄럽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카이사르에게 원인이 있다. 기원전 48년 카이사르가 알렉산드리아시를 점령하는 동안 항구에서 엄청난 이집트 함대를 발견하고 그의 부하들에게 이집트 선박에 불을 지르도록 했다...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3)

youtu.be/X8wrshrnq20 알렉산드리아를 세계적 위상으로 올려 놓은 것은 고대 세계를 아우르는 문화의 중심지라는 점이다. 로마 시대에 50에서 100여 만명이 살고 있었다는 것은 당대의 그리스와 이집트 문화를 융합시키는데다 경제적으로 당대의 윤활유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 핵심 장소가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이다. 그러므로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이 보다 유명하여 파로스 등대를 제치고 세계 7대 불가사의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로 도서관은 알렉산드리아 항구의 자존심과도 같은 존재였다. 도서관이 대학교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여하튼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은 광대한 문화의 장소로 고대에서 가장 중요한 지식의 창고로 인정받았다. 프톨레마이오스1세 소테르는 알렉산더 대왕의 소마를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2)

youtu.be/vNKJEVLyAtw 이집트는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정복되었지만 그가 갑자기 사망하여 그의 휘하였던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를 통치하기 시작하여 약 300년 후 클레오파트라 7세 일명 클레오파트라 때 로마에 의해 이집트가 멸망한다. 기본적으로 알렉산드리아를 포함하는 이집트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로 시작하여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로 끝을 맺는다. 알렉산드리아의 간판 파로스등대도 이들의 작품이므로 프틀레마이오스에 대해 설명한다. 이집트에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매우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300여년이나 이집트를 통치했음에도 놀라운 것은 그들이 결코 이집트인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집트의 파라오로 행세하면서도 결코 이집트어를 사용하지 않고 그리스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그들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1)

youtu.be/E3n--iZ5xHc 〈클레오파트라 궁전의 발굴〉 1994년 가을 프랑스의 고고학 발굴팀이 알렉산드리아 앞바다 깊이 7미터 정도의 바다 속에서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알려진 파로스 등대의 잔해 수백 점을 건지는데 성공했다. 발굴팀은 화강암으로 된 높이 4.55미터, 무게 12톤의 여신상을 기중기로 끌어올렸으며 5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면적에 거상들의 토르소, 목이 떨어진 스핑크스들이 수없이 수장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최소한 3,000개가 넘는 건축용 돌들이 카페트와 같이 깔려 있으며 원형기둥들의 파편들도 수 백 개가 된다는 것이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스탄불과 다르다엘 사이의 프린스 섬에서 채석되는 백색 대리석들이 발견되었다는 것. 기원전 4세기에 이미 이 채석장에서 대리석을 수출하고 있..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10)

youtu.be/ecKVlYRL2qs 신에페수스의 압권은 아고라 및 켈수스 도서관이다. 기원전 1세기에 건설된 아고라는 110 x 110미터의 야외 시장을 뜻한다. 3세기 초에 카라칼라 황제에 의해 복구되었지만 4세기에 있었던 지진으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도시에서 가장 큰 상업지다. 상점들을 주랑을 따라 배치되었는데 상점들의 뒤쪽에 둥근 원통형의 지붕으로 된 창고가 있었다. 켈수스 도서관은 에페소스의 총독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킬라가 아버지 켈수스를 추모하기 위해 건설한 것으로 높이 16미터, 너비가 21미터다. 이 건물은 2세기에 건설되었고 260년에 있었던 화재로 파괴되었으나 정면은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다. 9 단 연단에 자리잡은 인상적인 도서관 외관은 부조 조각으로 풍성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각..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9)

youtu.be/7GERypl7_6A 이러한 운반 방식이 고대인들에 얼마나 큰 인상을 주었던지 곧바로 전설에 전설이 쌓여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의 명성은 점점 높아져 갔다. 그러나 메타지네스의 아이디어는 그 후에 건설되는 다른 건축물에는 다시 사용되지 않았다. 아르테미스 신전이 다른 건축물들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는 것이다. 신전에 사용된 돌을 선정하는데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신전에 사용되는 돌들은 견고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공급이 원활해야 했다. 비트뤼브가 신전에 사용된 돌을 선정하게 된 경위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에페소스 인들이 아르테미스(다이아나) 신전을 건설하려고 할 때 그들은 수많은 대리석 산지 중에서 어느 것을 선정할 것인가로 논쟁을 벌였다. 그런데 어느 날 지방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