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 130

공중정원과 바벨탑(6)

youtu.be/4CJMLNb6ulA 세미라미스와 네브카드네자르 두 사람 중에 누가 공중정원을 건설한 사람인가라는 의문점은 두 사람 모두가 공중정원을 건설했다고 보면 간단하게 풀린다. 사실 테라스 위에 나무나 풀을 심는 것은 메소포타미아의 강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일반적인 일이었다. 즉 도시 주위를 흐르는 강물을 이용하여 식물을 재배하는 정원은 매우 오래 전부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영박물관에 보관된 니네베의 소위 ‘나무로 꽉 채워진 장소 아래에서의 향연’으로 유명한 아수르바니팔 왕과 그의 왕비가 나무 그늘 아래에서 향연을 베푸는 그림으로도 알 수 있다. 공중정원의 개념을 엿볼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도 두 개나 발견되었는데 첫 번째 파편은 니네베에서 발견된 것으로 높은 궁륭..

공중정원과 바벨탑(5)

youtu.be/0qzdQ1Vg6ss 〈공중정원의 발명자〉 세미라미스는 당시까지는 님루드가 수도였는데 수도를 고도인 바빌론으로 옮겼다. 수도를 옮기기 위해 재건한 바빌론은 고대의 바빌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성곽을 가진 도시가 되었다. 그 성벽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헤로도토스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아시리아에는 수많은 대도시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이름 있고 또한 가장 강력한 도시는 니노스(니네베)기 황폐해진 후 왕궁의 소재지가 된 바빌론이었다. 바빌론은 광대한 평야 한가운데 있는 대도시로서 사각형을 이루고 있는데, 각 변의 길이가 120스타디온(14마일)에 이른다.’ 헤로도투스가 말하는 아시리아는 광의의 뜻으로 바빌론도 포함된다. 그는 성벽을 쌓기 위해 구운 벽돌을 했고 모르타르 대..

공중정원과 바벨탑(4)

youtu.be/cfnHGb4e2pc 세계7대 불가사의의 원전을 만든 필론이 기원전 200년 경임에도 그 멀리 있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에 대해 거론했다는 것은 그가 바빌론을 직접 방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알렉산더가 바빌론까지 연결로를 만들어 준 것이다. 필론은 바빌론을 보고 너무나 감탄하여 바빌론 성벽과 공중정원을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설명하기도 했는데 바빌론 성벽은 중세시대에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그는 공중정원을 세계7대 불가사의 첫 번째로 거론하면서 짧지만 매우 중요한 내용을 적었다. ‘공중정원이라 함은 공중에 식물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땅 위의 지붕에 나무들이 있다는 뜻이다. (중략) 정원의 경계에 있는 흙으로 덮여진 땅은 경작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 ..

공중정원과 바벨탑(3)

youtu.be/SmmzlaBFKmw 기원전 3세기, 바빌론의 신관이자 역사가였던 베로수스는 인간들이 원래는 한 민족이었으나 다음과 같은 사건 때문에 언어가 달라졌고 그후 서로 다른 민족으로 나누어졌다고 기록했다. ‘최초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을 너무 믿어 신을 경멸하고 자신들이 신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오늘날 바빌론이 있는 곳에 높은 탑을 쌓았다. 이 탑이 하늘에 닿으려 할 때 갑자기 신이 있는 곳에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해 탑을 무너뜨렸다. 탑의 폐허는 ’바벨‘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사람들은 이때까지 같은 언어로 말을 했는데 신은 그들로 하여금 다른 언어로 말을 하게 만들었다.’ 성경의 창세기에도 이와 비슷한 바벨탑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런데 바벨탑은 상당히 후대에도 실제로 남아있어 기..

공중정원과 바벨탑(2)

youtu.be/ljnYJwpnFiM 막강한 수메르도 변화하는 세월을 넘을 수 없어 기원전 24세기 셈족인 아카드 왕조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아카드인은 수메르 문화를 흡수 우르, 키시, 니푸르, 라가시 등 중심도시를 건설했고 미술과 건축, 사회 기구, 종교상의 사상과 관행, 문자의 발명에 따른 교육 등에 괄목한 발전을 이룩한다. 아카드 왕조에서 유명한 사람이 사르곤 대왕(재위 기원전 2334-2279)이다. 그런데 그의 탄생 일화는 현대인들이 너무나 잘 아는 내용이다. ‘사르곤의 모친이 갓난아기 사르곤을 역청(癧靑)을 칠한 바구니에 넣어 유프라테스 강에 흘려보내 그의 미래를 운명에 맡겼다. 그런데 운명은 사르곤을 저버리지 않아 농부가 바구니를 발견했고 그를 아들로 양육한다.’ 성경의 모세의 일생과 유사한..

공중정원과 바벨탑(1)

youtu.be/HZ75kou-9KE 필론의 ‘세계 7대 불가사의’는 오랜 동안 많은 사람들의 상상을 부추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환상적인 것은 공중정원이다. 하늘에 떠있다고까지 이야기되는 공중정원은 세계 7대불가사의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SF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처럼 공중에 높이 떠 있는 궁전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SF영화 「스타워즈」에서 하늘에 떠 있는 공중 요새가 나오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만화책으로 팔린 「드래곤볼」에서도 공중에 수많은 궁이나 요새들이 하늘에 떠있다. 이들을 보면 하늘의 궁전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착각을 갖기 마련인데 필론의 고대 세계7대불가사의에 들어가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이라는 말도 바로 이들 영화처럼 공중에 높이 떠 있는 궁전을 연..

세계 7대 불가사의: 들어가기(2)

youtu.be/9z0zDcaTpD0 이제 세계 7대 불가사의가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알아본다. 세계의 불가사의에 대한 저서를 쓴 작가 중 가장 오래된 사람은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린 헤로도토스(기원전 484?~425?)다. 그는 기원전 5세기에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바빌론의 공중정원에 대해서 매우 정확하게 기술했다. 그 다음으로 불가사의에 대해 거론한 사람은 기원전 100년경에 사망한 시돈의 안티파테이며 시인으로 유명한 칼리마크가 불가사의에 대해 나름대로 명쾌한 정의를 했다. 칼리마크는 불가사의에 포함되려면 기념물이 아름답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하면서 기념물이 위치한 주변, 즉 자연과 환경과도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7개의 불가사의 각각에 대한 단편적인 시를 읊었다고 알려지고 ..

세계 7대 불가사의: 들어가기(1)

youtu.be/xZG4-AFIzUw 중세시대에 재발견된 세계 7대 불가사의는 오랜 동안 예술가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상상을 부추겼다. 시간이 흐르면서 불가사의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엄청나게 과장되거나 상상으로 포장되어 갔다. 인간의 속성상 잡다 놓친 물고기가 항상 크게 느껴지듯이 실물을 보지 못한 불가사의의 경우 더욱 더 과장되게 마련이다. 공중정원을 하늘에 떠 있는 대형 건물로 생각했으며 로도스 섬의 거상의 경우 두 다리 사이로 거대한 함선들이 통과하는 그림이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이런 전설들의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서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실 타임머신처럼 편리한 것은 없다. 과거나 미래, 어느 때로든 자신이 원하는 지점으로 갈 수 ..

십자군 전쟁(12) 이노센트3세

https://youtu.be/QSqf_f72dwg 200여 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은 서유럽인들에게 그야말로 큰 충격을 주었다. 십자군 신앙심에 호소하기만 하면 이교도들은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다고 단순하게 생각했지만 성지를 점령하고 있는 이슬람교도들은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이 야만인들이 아니었다. 수학, 화학 등 일반 과학은 물론 의학에 있어서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유럽보다 발달해 있었다. 기독교가 아닌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고까지 천명한 유럽인들에게 타 종교를 믿는 아랍인들이 자신보다 더 높은 문화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자 무장한 신앙심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200년이나 걸쳐 9번이나 벌어진 십자군 전쟁은 이상한 전통을 만들어 냈다. 십자군의 원정 즉 ..

십자군 전쟁(11) 이노센트3세

https://youtu.be/RdsX-Xyzub4 ④ 제6차 십자군 원정(1227〜1229) 제6차는 1227년부터 1229년까지 약 2년 동안인데 이는 과거와 같은 정통 ‘원정’은 아니다. 한마디로 당대의 정치 역학을 활용한 ‘협상’이라 볼 수 있다. 교황 그레고리오 9세(재위 1227〜1241)는 십자군 파병을 조건으로 교황권에 도전한 프리드리히 2세를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임명하는 등 지원했지만 프리드리히 2세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교황의 말에 따르지 않자 파문을 선언했다. 그런데 십자군 원정에 이리저리 피하던 프리드리히 2세가 파문당하기 전에 원정에 나섰으나, 항해 도중 병에 걸려 귀환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여하튼 그동안 여러 가지 면에서 성지 원정을 극구 사절한 프리드리히 2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