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악당 47

십자군 전쟁(11) 이노센트3세

https://youtu.be/RdsX-Xyzub4 ④ 제6차 십자군 원정(1227〜1229) 제6차는 1227년부터 1229년까지 약 2년 동안인데 이는 과거와 같은 정통 ‘원정’은 아니다. 한마디로 당대의 정치 역학을 활용한 ‘협상’이라 볼 수 있다. 교황 그레고리오 9세(재위 1227〜1241)는 십자군 파병을 조건으로 교황권에 도전한 프리드리히 2세를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임명하는 등 지원했지만 프리드리히 2세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교황의 말에 따르지 않자 파문을 선언했다. 그런데 십자군 원정에 이리저리 피하던 프리드리히 2세가 파문당하기 전에 원정에 나섰으나, 항해 도중 병에 걸려 귀환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여하튼 그동안 여러 가지 면에서 성지 원정을 극구 사절한 프리드리히 2세가 ..

십자군 전쟁(10) 이노센트3세

https://youtu.be/c8C2MDzzkJk 이노센트 3세와 호노리우스 3세를 이은 그레고리우스 9세는 교황이 되자마자 우선 프리드리히를 파문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는 교황의 파문에 전혀 구애하지 않았다. 교황의 파문에도 건재 한다는 것은 막강한 교황권에 공개적으로 도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화가 난 교황은 황제에게 공개장을 써서 황제의 이단적인 행동은 물론 개인적인 비행을 공개했다. 그러자 프리드리히가 예상하지 못한 반격을 가해왔다. 그는 교황의 서신을 조롱하면서 교황과 유럽 각 국 왕들 간에 벌어진 불화의 시시비비를 지적하더니 전 유럽의 절대적인 지배자가 되려는 교황의 야심을 막기 위해서는 왕후들이 동맹을 맺어 교황에 대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직자들의 오만과 불신앙을 비난하고..

십자군 전쟁(9) 이노센트3세

https://youtu.be/PLamDtCui9E 이노센트 3세가 사상 가장 강력한 교황권을 갖고 있었던 교황임에도 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의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악행은 제4차 십자군의 난행 때문이 아니다. 그는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면 노도와 같이 퍼지고 있던 종교 개혁 운동 즉 그가 볼 때 이단 운동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의 예상과는 달리 개혁 운동이 계속 번지고 있었다. 이 당시 남 프랑스 랑구독 즉 현재 프랑스의 랑구-루씰론에서 독실한 기독교도인 카타리 또는 알비즈와 파가 위세를 떨치며 확산되고 있었다. 문제는 이들이 추종하는 교리가 공교롭게도 동유럽에서 넘어 온 그리스 정교회와 같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라는 두 개의 ..

십자군 전쟁(8) 이노센트3세

https://youtu.be/l7GKQg0iP_k 1203년 6월 십자군-베네치아 연합군의 대함대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앞 마르마라 해에 도달했다. 동로마로서는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로마는 베네치아 공화국과 동맹을 맺고 있으며 교황청에서 알렉시오스 황자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알렉시오스 4세가 되었다며 대군을 끌고 온 것이다. 결국 동로마는 난공불락의 성을 배경으로 십자군-베네치아 연합군을 독자의 힘만으로 격퇴시켜야 했다. 십자군-베네치아 연합군은 7월 11일, 1차 공격 그리고 7월 17일 2차로 총공격을 감행했다. 그런데 황제인 알렉시오스 3세가 직접 지휘하면서 공방전은 격렬했지만 동로마군은 십자군 연합군의 공격을 적시적소에서 방어했다. 한때 베네치아 공화국의 엔리코 단돌로의 분전으로 25..

십자군 전쟁(7) 이노센트3세

https://youtu.be/3R02s3Y5Y_4 이노센트 3세가 십자군 원정을 기획한 것은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 당시 교황권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이노센트 3세의 성속양권(成俗兩權)은 왕들에게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도전이 일어났다. 바로 절대적으로 충성해야 할 교회 내부에서 이단이라는 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때의 이단 운동이란 기독교를 믿지 않는 타종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적인 청빈. 원시 그리스도교에의 복귀, 속세로부터의 이탈, 최후의 심판의 도래 등을 바라는 소박한 민중적 종교 운동이라는 점이다. 교황권이 점점 비대해지면서 소박한 민중의 종교 감정을 점점 박탈하자 민중은 그리스도가 설파한 청빈을 교회가 상실했고 세속적인 이해에 더렵..

십자군 전쟁(6) 이노센트3세

https://youtu.be/hAkTb0iWYG4 발리앙이 그의 아버지로부터 기사 서임을 받을 때나, 후반에 그가 대주교의 시종을 기사로 임명할 때 뺨을 후려치는 묘사가 있다. 이는 실제로 신참 기사들이 서임을 받을 때 두들기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보다 고상한 중세 시대의 영화에서는 검으로 어깨와 머리를 두드리는데 이는 약식이다. 자료에 의하면 기사 서임당시 워낙 심하게 두둘겨 맞아 인사불성이 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약식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뺨 한 번 맞는 것은 그야말로 양반 대우라는 것이다. 하틴 전투에서 포로가 된 기 드 뤼지냥에게 살라딘이 얼음물이 담긴 황금잔을 건네는데 이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는 포로가 된 자에게 신변 보장 즉 죽이지 않겠다는 의미로 물을 건네 준 것이다. 즉..

십자군 전쟁(5) 이노센트3세

https://youtu.be/RW_BMxn67H8 1187년 7월 4일에 벌어진 하틴 전투(Battle of Hattin)는 십자군 전쟁의 핵을 구성하므로 보다 설명한다. 하틴 전투는 십자군 예루살렘 왕국과 살라딘의 아이유브 왕조의 결전으로 설명되는데 이 전투에서 살라딘이 예루살렘 왕국의 병력 대부분을 궤멸시킨다. 이후 십자군이 차지하고 있던 예루살렘을 포함한 대다수의 십자군 도시와 요새들은 살라딘 즉 이슬람으로 넘어갔음은 물론이다. 하틴 전투의 전초는 1174년, 장기 왕조의 누레딘과 살라딘이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를 멸망시킬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티마 왕조의 멸망은 이들 지역의 정치적 격변의 시작이라 볼 수 있는데 이후 누레딘이 사망하자 살라딘이 이를 흡수한다. 이는 예루살렘 왕국이 살라딘의 거대..

십자군 전쟁(4) 이노센트3세

https://youtu.be/FHUzJnqoLNM 예루살렘이 점령되었지만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간다. 원래대로라면 예루살렘은 동로마에 반환되어야 했고 교황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십자군들은 동로마가 배신자라며 한치의 땅도 줄 수 없다고 버텼다. 그동안 동로마가 십자군에 지원한 것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따라서 예루살렘 총대주교나 교황 특사가 교황령처럼 예루살렘을 통치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이 당시 예루살렘 총대주교가 죽어 십자군의 성직자들이 새 총대주교를 선출할 것을 요구했지만 십자군들은 합의를 보지 못했다. 이집트의 파티마의 대군이 온다는 소리에 십자군은 일단 레몽에게 에루살렘의 왕위를 권유했다. 하지만 레몽은 원정 기간동안 인기를 많이 잃은 상태였으므로 체면상 거절했음에도 십자군은 곧바로 왕관을 고..

십자군 전쟁(3) 이노센트 3세

https://youtu.be/Kem9_PvKNR0 십자군 전쟁은 9차례나 걸쳐 일어난 기독교와 회교도 간의 대혈투라 볼 수 있다. 이들 전투가 기본적으로 성전 즉 종교를 표방했지만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고 특히 4차와 5차는 인류역사상 가장 큰 악행이 저질러진 전쟁이라 볼 수 있다. 전쟁 자체를 선한 면으로 포장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비난받아야 할 특정 전쟁이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악당으로 치부되는 이노센트 3세의 제4차와 5차 십자군 원정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위해 다른 십자가 전쟁의 개황을 먼저 설명한다. 곧바로 부작용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대한 준비도 전혀 없이 자신들의 생활 터전에서 무조건 십자군에 합류하기 위해 떠났기 때문에 성지까지..

십자군 전쟁(2) 이노센트 3세

https://youtu.be/Uqa7_Wz7kPg 1095년 11월 18일부터 11월 27일까지 파리의 남쪽 약 400킬로미터에 있는 클레르몽 페랑에서 프랑스의 주교 300여명, 사제 4,000여명과 평신도 3만 여명이 참가하는 공의회를 개최했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도 임석하여 성직자의 독신제 실행과 성직 매매 금지, 그리고 왕비와 이혼한 프랑스 국왕 필리프 1세의 파문 등을 결정했고 11월 28일 중대 성명을 발표한다고 예고했다. 다음날 아침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인 특별 집회장에서 교황은 다음과 같이 십자군의 당위성을 발표했다. '프랑스 인이여! 신의 사랑으로 선택받은 백성들이여! 예루살렘과 콘스탄티노플의 형제들로부터 도움을 바라는 편지가 도착했다. 동쪽에서 온 이슬람교도인 투르크인들이 폭력을 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