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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티스 대륙의 전설(2)

youtu.be/HdFSdXWpcdw 슐리만의 트로이 발견과 에반스의 크레타 문명 발굴로 아틀란티스 대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을 때, 미국의 정치인 이그나티스 도넬리(Ignatius Donnelly, 1831~1901년)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스물여덟 살에 미네소타 주의 부지사로 당선될 만큼 정치적 역량이 있던 도넬리는 이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의회에 소장된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특히 그는 '위대한 암호'라는 책에서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 저술한 것”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세상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된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저서 '노아의 홍수 이전의 아틀란티스 대륙'(1882)과 '신들의 황혼, 불과 돌의 시대'(1883)가 지..

아틀란티스 대륙의 전설(1)

youtu.be/oUQVTCz256Y 사라진 문명이란 말은 지금껏 쌓아 놓은 문명이 갑자기 소멸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문명'이란 단어를 놓고 인류학, 고고학, 역사학자들은 대체로 인간들이 고도의 생산력을 배경으로 만든 생활양식이라고 말한다. 즉, 인간들은 무의미하게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지혜와 노력을 가해 살아가는 문명이라는 양식을 만들어 가는데 이는 인간만이 가진 특권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문명이 사라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일반적으로 전쟁이나 질병, 기후의 변화, 식량의 결핍 등으로 기존에 유지되던 생활 모두가 생명력을 잃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경우 적어도 문명은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살아있던 대지는 남아있고 그들의 ..

한국(동이)과 중국(화이)(18) : 갑골문자

https://youtu.be/LD6urxLUd54 youtu.be/ftzd5ofIKm0 한민족(동이)과 중국인(화이)의 차별성(18) : 언어체계 마지막은 그림 빌리기이다. 그림 빌리기는 그림으로 묘사할 수 없는 다소 추상적인 대상을 표현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즉 그림 그리기 대상처럼 묘사 대상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그림 합치기처럼 연속적이고 논리적인 합성이 가능하지도 않은 경우, 그려져 있는 그림을 빌려 의미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숫자 만(萬)의 갑골문은 상당히 의외인데 이는 숫자와 전갈의 관계를 연결지어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둘은 의미상으로 전혀 관계가 없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전갈류의 그림을 빌어 숫자 일만을 대신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만들어진 ‘만’자라는 글자가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는데 ..

한국(동이)과 중국(화이)(17) : 복골 및 갑골문자

https://youtu.be/LD6urxLUd54 youtu.be/jhUeTwo5R_k 22. 복골(卜骨 , 갑골) 동이족이 중국 문명사에 끼친 영향은 그야말로 다대한데 그 중에서도 한자를 발명했다는 점이다. 동이족이 한자를 발명했다고 하니까 한국인이 한자를 발명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적어도 한자의 발명자가 화하족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문제는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 동물의 견갑골(肩胛骨, 어깨뼈)에 구멍을 뚫고 불에 구워 점을 치는 골복(骨卜, 갑골점)은 동이족의 전유물이다. 복골은 기원전 5,200년 전의 부하문화에서 처음 발견된 후 하가점 상층문화에서 중원으로 내려간 상(은)에서 골복이 유행한다. 그러나 은나라가 주나라에 패배하면서 골복의 전통은 사라지지만 동이족의 전통이 강한 ..

한국(동이)과 중국(화이)(16) : 맥궁및 파르티안기사법

https://youtu.be/LD6urxLUd54 youtu.be/STX2-HLm35o 각궁에도 중요한 문제점이 있다. 물소 뿔을 접착한 어교는 비가 오거나 기후가 습해지면 물을 먹어 녹아 풀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비가 오거나 습할 때는 각궁을 사용할 수 없으며 무더운 여름철에는 활을 따뜻한 온돌방에 넣어서 보관해야 했다. 더구나 각궁은 제작하기가 매우 어렵다. 각궁 하나를 완성하는 데 최소한 5년 이상이나 걸린다. 그럼에도 고구려 등 승마에 남다른 재주가 있는 기마병들이 이 같은 활을 사용한 것은 크기가 작아 다루기가 편리하고 위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흉노(훈) 등 경기병이 사용하는 활은 매우 작다. 기병용은 보통 80센티미터(다 폈을 때의 길이이므로 실제로 사용할 때의 길이는 60센티미..

한국(동이)과 중국(화이)(15) : 각배와 각궁

https://youtu.be/LD6urxLUd54 youtu.be/z7ixRJsG7Sg 18. 철제갑주(鐵製甲冑)와 승마용마갑(乘馬用馬甲) 기마민족이 마구를 중요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주의 천마총에서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의 안장틀이 4점, 안장깔개 1점, 등자 5개, 천마도가 그려진 말다래 3 점 등이 발견되었다. 안장틀에는 거북등무늬(龜甲文)로 구획된 투각 금동제 장식을 안장틀(磯) 상부에 붙이고 그 아래(海)에 띠고리(버클)을 좌우로 한 개씩 붙여놓았다. 안장틀 안쪽에는 줄무늬를 넣어서 짠 비단이 발라져 있어 왕의 안장답게 호화롭다. 안장틀 앞가리개 표면에 붙여진 금동 투각 금구 모든 면에 금제 달개를 달았다. 이들 안장들은 당시의 중국제 안장과 비교해보면 기본적으로 다르다. 신라 것에는 북..

한국(동이)과 중국(화이)(14) : 상투와 개마무사

https://youtu.be/LD6urxLUd54 youtu.be/eLNAATslKdE 16. 상투(옥고) 홍산문화에서 학자들을 놀라게하는 것은 적석총에서 상투 옥고(상투머리를 덮었던 옥으로 만든 머리덮개)가 계속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홍산 문화에서 발견되는 상투옥고는 약간 변형된 원통형으로 하부와 상부가 뚫어져 있는데 무덤 주인의 머리에 놓여져 있다. 상투 옥고는 중국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상투 즉 머리를 틀어 올리는 관습은 한민족의 고유한 머리양식이기 때문이다. 즉 홍산문화 유적에서 발굴된 상투 머리를 덮은 옥고와 같은 유물은 중국 황하문명에는 없지만 이후 고조선 시대 이래 한반도와 만주에서 널리 사용한 모자 양식이며 멀리 고구려와 백제, 신라 금관 안에 쓰는 속관 형태로 이어진다. 당대의..

한국(동이)과 중국(화이)(13) : 편두

https://youtu.be/LD6urxLUd54 youtu.be/tdScZ12F1xI 15. 편두 1976년에 발견되어 모두 4차에 걸쳐 180여 기의 무덤이 발굴된 4세기경의 김해 예안리 고분군은 분묘의 규모로 보아 최상위 계층이 아닌 일반 서민 계층의 공동묘지로 추정된다. 예안리는 현재 낙동강 삼각주의 북부에 해당하지만 옛날 지형으로 보면 고김해만(古金海灣)의 하부에 속하는 지역으로 190여 평의 좁은 면적에 상하로 4겹 정도 중복되어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무덤 속에 1구, 많게는 10여 구의 인골이 남아 있었다. 부장품인 1000여 점의 토기를 비롯해 총 2000여 점의 유물도 나왔다. 현재 부산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예안리 인골은 수적으로도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지만 더욱 학자들의 눈길을 ..

한국(동이)과 중국(화이)(12) : 동복

https://youtu.be/LD6urxLUd54 youtu.be/JmvAtyV6lBY 14. 북방 기마민족의 상징 동복 홍산 문화 초기는 기온이 농사에 적합하였지만 후대 즉 하가점 상층문화 때부터 기후가 바뀌어 돼지가 발견되지 않고 양, 염소들이 발견된다. 이는 기후변화로 농경지가 광대한 초원지대로 바뀌었기 때문인데 이곳에서 기마생활을 기본으로 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마로 생업을 유지하던 기마민족에게는 자신들만의 특성과 생존법, 의식이 있기 마련이다.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말에 갖고 다니는 동복(銅鍑, cup cauldron)이다. 기원전 8〜7세기 무렵에 출현하여 기원후 5〜6세기 무렵에 소멸되는데 유목민족의 특성상 매우 넓은 지역에 걸쳐 발견되고 있다. 원래 동복은 유목민들의 상..

한국(동이)과 중국(화이)(11) : 치성(석성)

https://youtu.be/LD6urxLUd54 youtu.be/kUod9Ocy9hI 12. 치(雉)를 갖춘 석성(石城) 고구려는 중국과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혈투를 벌렸다. 인구가 적고 자원이 많지 않은 고구려가 자원이 많고 인구가 많은 중국과 이와 같이 혈투를 벌일 수 있었다는 것은 나름대로 중국에 비견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구려의 2대 전략이자 전술은 산성전투와 청야전투다. 고구려는 200여개소가 넘는 산성을 요충지에 건설했다. 그런데 고구려는 남다른 산성 축조 방법 즉 산성에 치성(雉城 또는 치) 또는 마면((馬面)을 기본으로 건설했다. 성벽을 직선으로 쌓으면 시각이 좁아 사각지대가 생기므로 성벽 바로 밑에서 접근하는 적을 놓칠 수 있고 공격할 때도 전면에서만 공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