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새이야기 27

십자군 전쟁(2) 이노센트 3세

https://youtu.be/Uqa7_Wz7kPg 1095년 11월 18일부터 11월 27일까지 파리의 남쪽 약 400킬로미터에 있는 클레르몽 페랑에서 프랑스의 주교 300여명, 사제 4,000여명과 평신도 3만 여명이 참가하는 공의회를 개최했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도 임석하여 성직자의 독신제 실행과 성직 매매 금지, 그리고 왕비와 이혼한 프랑스 국왕 필리프 1세의 파문 등을 결정했고 11월 28일 중대 성명을 발표한다고 예고했다. 다음날 아침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인 특별 집회장에서 교황은 다음과 같이 십자군의 당위성을 발표했다. '프랑스 인이여! 신의 사랑으로 선택받은 백성들이여! 예루살렘과 콘스탄티노플의 형제들로부터 도움을 바라는 편지가 도착했다. 동쪽에서 온 이슬람교도인 투르크인들이 폭력을 휘..

세계의 악당 무측천 (5)

https://youtu.be/X4S5e_3hH7E 왕 황후를 제거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죽인 무측천은 자신의 권세와 위치를 유지하기 위하여 인척들을 이용했다. 문제는 그녀의 친아들들도 그녀의 원대한 계획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무측천에게는 이홍(李弘), 이현(李賢), 이철(李哲, 李顯), 이단(李旦)이라는 4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녀는 처음에 황태자 이충(李忠)을 대신하여 자신의 아들인 이홍을 옹립했다. 이홍은 착하고 온순한데다 겸손의 미덕까지 갖추고 있어 고종과 여러 대신들의 신임을 받았다. 그 후 고종은 건강이 점점 악화되자 황위를 그러한 이홍에게 물려주려고 했으나 무측천은 생각을 바꾸었다. 자신이 공들여 닦아놓은 권력의 기반을 송두리째 아들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홍은 자..

중국의 자존심(1), 진시황제(1)

youtu.be/IFzcU4npdZA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인은 진시황제를 로마의 네로 황제와 마찬가지로 폭군 중 폭군으로 인식했다. 특히 ‘분서갱유(焚書坑儒)’는 진시황제의 잔혹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남았고, 20세기 최대의 고고학 발굴로 꼽히는 진시황릉과 우주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은 진시황제가 폭군임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증거로 거론되었다. 그런데 진시황제는 사망 이후 2,200여 년간 폭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마오쩌둥(毛澤東)의 문화혁명 때부터 본격적으로 재평가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가 중국을 통일해 중국인을 단합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 크게 부각된 것이다.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며 통일 중국을 지양하는 현재의 에서 제일 먼저 내세울 사람이 필요한데 그 덕목에 가장 적합한 사람..

세기의 재판 아돌프 아이히만(1)

youtu.be/RHWCxnHnzkM 1961년 4월 11일, 예루살렘에서 세계 최초의 TV 생방송이 세계를 상대로 '세기의 재판' 생중계가 계획되었다. 생방송의 주인공은 600만 유대인의 추방과 학살을 주도한 나치전범 아돌프 아이히만(Karl Adolf Eichmann, 1906〜1962)으로 그의 생방송 재판을 37개 나라에 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기의 생방송을 위해 미국에서 벌어진 매카시즘에 의해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TV감독 허위츠, 프로듀서인 프루트만이 재판정에 3개의 카메라를 설치코자 했다. 그런데 생방송까지 남은 시간은 단 3일밖에 남아있지 않는데 이스라엘 정부는 아직 생방송 촬영을 허가하지 않았다. 특히 법원에서는 TV카메라로 인해 재판이 방해될지 모른다며 우려를 제기했는데 어떻게..

홀로코스트의 대명사 독가스실(1)

youtu.be/kUopcluIXk4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가스실을 운용하여 사상 최악의 장소로 변모하게 만든 장본인은 하인리히 히믈러이다.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후 소련군 포로들이 아우슈비츠로 보내지자 하인리히 히믈러는 이곳에서 3킬로미터쯤 떨어진 비르케나우 즉 실제로 가스실이 있었던 장소에 죄수들로 하여금 거대한 제2단지를 세웠다. 대다수 소련군 포로들이 사망하자 악명 높은 수용소 소장 루돌프 헤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유럽 유대인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장소로 결정했다. 아우슈비츠에 독일이 점령한 각지로부터 유대인이 실려 오자 비르케나우의 가스실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특히 게쉬타포에게 붙잡힌 유대인들은 곧바로 아우슈비츠로 향했으며 대부분이 도착하자마자 가스실로 행했다...

홀로코스트의 대명사, 전율의 아우슈비츠 수용소(1)

youtu.be/LCVeEAQD8r4 홀로코스트의 대명사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이지만 나치 독일에서 운용한 수용소는 이곳뿐이 아니다. 그러나 홀로코스트라면 아우슈비츠를 꼽는 이유는 당대 가장 큰 수용소로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홀로코스트 설명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기반으로 설명한다.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는 폴란드 안에 만들어진 최초의 강제수용소로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한 지 얼마 안 되는 1940년 6월에 문을 열었다. 원래 아우슈비츠는 폴란드어로 오시비엥침이다. 당초 지명은 유대어로 '손님'이란 뜻의 오시피친(Oshpitzin)에서 유래됐다. 800년의 역사를 지닌 이곳은 유대인들과 인연이 깊다. 16세기부터 이곳에 정착한 유대인들은 술을 빚고 옷을 만들어 팔..

화성에서 복덕방 차리기(1)

youtu.be/Yo23pvMJoo4 SF작품 중에서도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장기로 삼고 있는 폴 버호벤은 「토탈 리콜」을 통하여 화성에 인간이 정착한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가정하고 지구와 떨어진 식민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간들의 음모와 암투를 그렸다. ‘서기 2084년. 지구인들은 남북의 두 그룹으로 갈라져 제3차 대전을 벌이고, 한때 지구를 지배하던 북반부 그룹은 화성에서 생산되는 터비나움이라는 광물질로 만든 신무기로 명맥을 유지한다. 어느 신도시에서 광산 일을 하는 퀘이드는 밤마다 이상한 꿈을 꾼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화성에서 이름도 알 수 없는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같은 꿈이 자주 나타나자 퀘이드는 저렴한 비용으로 우주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뇌 속에 기억을 이식시켜 줌으로써 가상..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지구인 카사노바(1)

youtu.be/C4nVDPSJFvQ 자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 데 세인갈트(Giacomo Girolamo Casanova de Seingalt, 1725〜1798)라면 모르는 사람도 카사노바라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8세기의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성을 표방하여 ‘섹스’를 연상하면 곧바로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알려진다. 카사노바라는 이름이 여성 편력가로 워낙 유명하자, 그의 이름은 ‘(여성을) 유혹하는 기술’과 동의어로 남아있으며 ‘세계 최고의 연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남다른 생애가 감독들의 눈을 끌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대한 영화가 수없이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라는 신기한 기술이 태어난 후 수많은 바람둥이에 관한 영화들이 제작되었는데 바람둥이를 다루는 영화들의 기본 소..

아틀란티스 대륙의 전설(13)

youtu.be/enh5bSOqKBg 다행한 것은 천문학자들은 지구에 대형 소행성이 충돌할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름 10킬로미터 정도의 혜성이나 소행성은 1억 년에 한 번, 1킬로미터의 혜성이나 소행성은 100만 년에 한 번 정도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다. 실례로 1993년 목성에 21개의 혜성이 충돌했다. 핵이 분열하여 직선상에 염주처럼 길게 늘어선 기묘한 모습의 이 혜성은 겉보기 움직임이 목성과 거의 같다는 점에서 원래 하나이던 것이 목성에 접근하는 바람에 21개의 파편으로 분리된 것으로 본다. ‘슈메이커 제9혜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혜성은 1994년 7월 17일 오전 4시 57분부터 7월 22일 오후 5시까지 초속 60킬로미터라는 엄청난 속도로 목성에 충돌하였다. 충돌 ..

아틀란티스 대륙의 전설(12)

youtu.be/FcLH-QARsak 〈미노아 문명과 아틀란티스〉 에반스에 의해 발견된 크레타의 문명이 더욱 학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은 것은 미노아 문명의 유적은 플라톤이 설명한 아틀란티스라고 인정해도 될 만큼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아틀란티스 대륙이 크레타 섬이라는 프로스트의 가설은 다른 가설보다도 많은 자료와 증거가 있다. 고고학자 마리나토스는 기원전 15세기경(기원전 1477년으로 추정) 크레타에서 160킬로미터 북쪽에 위치한 산토리 섬에서 갑자기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면서 미노아 문명의 중심지인 크레타 섬이 황폐화되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마리나토스도 슐레이만처럼 플라톤이 말한 아틀란티스 대륙은 산토리 섬이 틀림없다고 단정하고 그 유적을 찾기 위해 크레타 섬 주위를 고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