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로마제국 28

로마제국의 악당, 네로황제의 복권(3)

youtu.be/MDtzyhFLNEA 〈잣대가 다른 동서양의 악녀〉 여자의 행실에 대한 평가를 보면 동양과 서양에 대한 잣대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마 시대의 여자들을 보면 근친상간 등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메살리나의 경우는 자신이 황제의 공식 부인인데도 불구하고 변장한 후 창녀촌에서 남자들과 섹스하는데 열중했다. 그녀가 응징된 것은 음란해서가 아니라 남편인 클라우디우스를 황제에서 몰아내기 위해 음모를 꾸몄기 때문이다. 네로의 어머니인 소아그리피나는 권력도 쥐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아들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 정적들을 수시로 살해했고 남편인 클라우디우스도 살해했다. 음란성에 대해서 소아그리피나의 경우 메살리나에 못지않았고 아들인 네로와도 공개적으로 근친상간을 주저하지 않았지만 그다지 크게 비난을 ..

로마제국의 악당, 네로황제의 복권(2)

youtu.be/phGhGXj1SJU 다음날 근위대는 네로를 황제로 옹립했다. 원래 황제가 사망하면 곧바로 후계자가 황제로 등극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소아그리피나는 네로의 즉시 등극을 막았다. 점성술사가 클라우디우스가 살해된 10월 12일에 황제로 등극한다면 반드시 불행이 찾아온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결국 소아그리피나는 클라우디우스의 사망 사실을 하루 동안 극비에 붙이고 다음 날 네로가 등극하도록 했다. 네로는 클라우디우스의 장례식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나타나 가정교사인 세네카가 써 준 원고를 대중 앞에서 읽었다. 세네카는 자신이 로마에서 추방된 적도 있으므로 로마 시민과 원로원 의원들을 다독거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세네카가 써 준 원고에는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황제 위에 있으면서도 사법권을 원..

로마제국의 악당, 네로황제의 복권(1)

youtu.be/itCOCG5xeE8 로마에 대해 한 마디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가장 적절한 예로 「로마는 하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속담을 든다. 로마는 고대 세계를 지배한 명실상부한 패자인데다 그 역사가 매우 길기 때문이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 늑대가 키운 로물루스 형제에 의해 건립되어 395년 동‧서로마로 나뉜 뒤 서로마는 게르만족인 오도아케르에게 476년에 멸망하였고 동로마는 이보다 약 1000년을 더 지탱하다가 1493년에 투르크에게 멸망하였다. 사람들이 로마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은 로마의 세계지배가 수백 년 동안의 고난에 찬 전투의 결과로 이루어진데다가 그 실체(實體)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이 역사상 가장 넓은 지역을 지배한 것은 기원후 2세기 초..

로마 제국의 굴욕 : 스파르타쿠스 반란(7)

youtu.be/Tad3hSqhH5s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은 로마의 근간을 뒤흔든 사건이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은 결국 40년 후, 그동안 철저하게 견지하던 로마 공화정이 막을 내리고 아우구스투스의 제국으로 들어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일부 학자들은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스파르타쿠스에게 커다란 빚을 졌다고 말한다. 스파르타쿠스는 로마 공화국 후기애 전투에서 패배하여 전사한 실제적인 중요성보다 상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는 뜻이다. 로마인들이 독재를 우려하며 제정을 극구 반대하였음에도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계기로 질서를 외치며 기꺼이 독재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스파르타쿠스의 ‘상징적’인 힘의 결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로마가 검투사의 반란으로 곤혹을 당했음에도 로마는 검투 경기..

로마 제국의 굴욕 : 스파르타쿠스 반란(6)

youtu.be/iujWEx04Dig 로마군과의 전력 차이를 알고 있던 스파르타쿠스는 남부 이탈리아의 아플리아에서 크라수스와의 결전을 앞두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좋은 말을 많이 얻을 것이고, 진다면 더 이상 말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스파르타쿠스는 곧바로 자신의 말을 베었다. 한마디로 배수진을 친 것이다. 스파르타쿠스가 크라수스와 전투를 벌이지만 로마 체제로 8개 군단이면 4만 명을 의미하는데 이들은 정통 로마군 역전의 용사들로 스파르타쿠스의 노예들로 구성된 오합지졸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더구나 군사 전문가들은 크라수스가 군사적 재능이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로마의 수석법무관이 될 정도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다.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

로마제국의 악몽, 중국에 크라수스 군단(3)

youtu.be/vqwzLE5dr_0 기원전 53년 5월, 크라수스는 파르티아와 카르하에(하란)에서 대치하였다. 파르티아의 병력은 크라수스에 못 미치지만 파르티안 기사법으로 무장한 9,000여명의 기병이 있었다. 파르티안 기사법이란 말 위에서 뒤로 화살을 쏘는 것으로 흉노의 훈족이 유럽을 공격할 때 사용한 방법 그대로이다. 파르티아의 중무장 기병부대가 로마 군의 예비부대를 격파하고 기동력이 뛰어난 궁수기병들이 주력부대와 대치했다. 그런데 로마군은 당시까지만 해도 귀갑대형 전법을 완성하지 못한 상태로 방패로 측면방어는 할 수 있었지만 머리 위는 공격에 노출되어 있었다. 파르티아는 화살을 하늘 높이 쏘아 올려 로마 군의 머리 위에 비처럼 쏟아지게 했다. 중요한 것은 화살 보급인데 파르티아는 낙타를 이용해 사..

로마제국의 악몽, 중국에 크라수스 군단(2)

youtu.be/5B5oZju62rM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주도권 싸움으로 경쟁하자 크라수스가 이들을 중재하여 기원전 59년 세 사람은 제1차 삼두정치를 결성했다. 세 사람은 한편으로는 서로 협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의 이익을 챙겼는데 기원전 55년 크라수스가 폼페이우스와 함께 두 번째 집정관에 선출되었다. 특히 5년 간의 시리아 속주 총독직을 인정받았다는 것은 크라수스에게 큰 기회였다. 이때 크라수스가 다소 욕심을 보인다. 기원전 55년 크라수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파견되자 그동안 로마를 줄기차게 괴롭히던 파르티아에 눈독을 들인 것이다. 파르티아는 전성기 때 현재의 이란 지역은 물론 아르메니아를 비롯한 이라크, 터키 동부, 투르크메니스탄, 아프카니스탄, 타지키스탄, 파키스탄, 쿠웨이트, ..

로마제국의 악몽, 중국에 크라수스 군단(1)

youtu.be/HcFVMToMThY 로마의 힘은 곧 군사력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로마 군단의 위용을 의미한다. 로마는 스코틀랜드에서 사하라, 에스파냐에서 페르시아 만까지 제국을 확장했다. 이들 정복은 로마의 막강한 군사력에 의했는데 로마군의 기본 체계는 약5,000〜6,000명으로 이루어진 군단이다. 로마 초기에는 이들 군단의 장병으로 로마와 이탈리아에서만 모병했고 총 25개 군단이 기본이다. 이들 정규 병력은 로마 시민으로만 구성된 125,000명이 주력인데 여기에 현지인 출신 보조병 125,000명이 합해 총 25만 명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한 군단의 숫자를 5,000명으로 한정할 수 없으므로 대체로 30여 만 명으로 산정한다. 로마군은 징병제가 아닌 직업군인을 뽑는 모병제도이지만 최..

로마 제국의 굴욕 : 스파르타쿠스 반란(5)

youtu.be/L1QutH0xDS4 스파르타쿠스와 대적한 토벌군은 엄밀한 의미에서 급조된 시민군이라 로마 정규군은 아니지만 로마를 대변하는 로마의 정규군임은 틀림없다. 그러므로 스파르타쿠스가 이들 공권력과 대결하여 승리했다는 것은 검투소에서 불만으로 탈주한 단순 검투사 집단이 아니라, 로마와 상대할 수 있는 집단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상 최대의 노예 전쟁으로 비화된 것이다. 스파르타쿠스는 여세를 몰아 누케리아, 투리, 메타폰툼 등의 도시를 공격하여 함락시켰으며, 그때마다 병력을 확장하고 전리품도 대거 탈취했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로마에 학대받았던 원한이 첩첩히 쌓여 있던 노예 병사들은 가는 곳마다 살인, 약탈, 강간, 방화 등을 수시로 저질렀다고 한다. 당시의 상황을 기..

로마 제국의 굴욕 : 스파르타쿠스 반란(4)

youtu.be/WuHEALsWIvA 검투는 황제나 정치가, 지방 명문가가 주최하였으며, 대부분의 표는 무료로 시민들에게 나눠주었지만 공화정 말기부터는 판매도 했다. 또한 표를 구하지 못한 하층계급과 비(非)시민계급 사람들은 최상층의 입석에서 관전할 수 있었다. 투기 대회의 규모는 다양했다. 집정관 선출을 위해 ‘크로디우스 프라쿠스’가 주최한 검투 이벤트에는 다음과 같이 안내문을 돌렸다. ‘총 30개조를 짜서 3일 동안 열리며 빨리 죽을 경우 대체할 검투사도 있다. 야생동물 사냥도 있으며 유명한 검투사 파리스도 참가한다.’ 폼페이에서 발굴된 네로 황제의 종신신관 ‘데키무스 루크레티우스 사투리우스 와렌스’ 부자(父子)의 검투 이벤트 고지문에도 총 30개조의 시합이 벌어졌는데 이때는 4일 동안 치러졌다고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