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래?(한국불가사의) 95

한국(동이)과 중국(화이)(5) : 곰토템

https://youtu.be/LD6urxLUd54 youtu.be/KA2FFSPe4L8 학자들이 놀라는 것은 옥으로 만든 비파형검도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학자들은 중국의 청동검과는 전혀 다른 비파형 동검의 비파 형태가 어떤 연유로 동이의 동검에 나타나는 가를 의아해했는데 홍산문화의 옥기에서 비파형태가 발견됨으로써 비파 형태는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홍산문화 시기에도 홍산인들에게 상당히 각인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옥기를 제작하는 방법은 보통 절단 기술을 사용하여 재료를 재단하고 대롱 모양의 도구로 구멍을 뚫었다. 그런 연후에 옥기의 둘레가 둥글고 매끄럽게 윤이 나도록 가공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장중한 시각 효과를 강조하면서도 문양은 조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천원조법(淺圓雕法,..

한국(동이)과 중국(화이)(4) : 옥기

https://youtu.be/LD6urxLUd54 youtu.be/p1RjQPGp5Sk 3. 옥기 홍산 문화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다양하고 정교한 옥기다. 옥의 특징은 강인하고 광택이 잘 나며 은은하고 부드러운 반투명성을 띄는데 이는 섬세한 섬유상 결정들이 치밀한 구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옥은 한 부분이 깨어지더라도 계속해서 깨지지 않는다. 이는 섬유의 길이를 따라 결합된 규소와 산소의 사슬에 평행하게 쪼개지므로 설혹 한 곳이 깨지더라도 다음 사슬이 갈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적으로 영어로 옥을 ‘jade'라고 부르는 것은 옛날 사람들이 옥으로 신장의 결석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스페인어로 콩팟을 뜻하는 ’hyada'에서 유래했다. 옥은 신석기에 해당하는 홍산 유적에서 거의 전부..

한국(동이)과 중국(화이)(3) : 빗살무늬토기(II)

https://youtu.be/LD6urxLUd54 youtu.be/F45mRP6cf4k 빗살무늬토기가 한국인에게 특별히 중요한 것은 한국의 고대사를 원천적으로 다시 쓰게 만든 파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이는 중국인들의 역사와도 관련있다. 중국은 그동안 황하유역에서 태어난 선진 문화가 각지로 전파되었다는 황하중심문화를 기본 정설로 견지해 왔다. 따라서 문명화된 세계로서의 중국의 이상형은 통일된 ‘하나의 천하대국’ 중국이다. 황하의 풍부한 물을 이용해 문명을 이룩해 가면서 점차 주변의 야만국들을 흡수했기 때문에 중원(中原)은 중국의 중심지라는 견해이다. 이는 중국 문명이 오늘날 산서성(山西省) 남부 및 하남성(河南省) 서부인 이른바 중원지역에서 발전했으며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으로도 설명된다. 이..

한국(동이)과 중국(화이)(2) :빗살무늬 토기

https://youtu.be/LD6urxLUd54 youtu.be/kAOESt7gwdM 학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그동안 고조선과 직접적으로 연계되는 하가점하층문화에서는 고동북유형과 고화북유형이 섞여서 나온다는 점이다. 남산근, 흑석구, 용두산 등 하가점상층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의 경우에도 고화북유형으로 발견되어 홍산문화나 소하연문화 단계와는 뚜렷한 차별성을 보인다. 중국에서는 그동안 동이족으로 거론되는 동호-선비-거란의 체질인류학적 특성으로 고몽골고원유형-현대 북아몽골인종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농경 생활을 유지하던 하가점 하층문화를 대체해서 새롭게 출현한 유목생활인인 이들이 하가점상층문화를 대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가점상층에서 고몽골고원유형이나 현대 북아몽골인종과 유사한 모종의 집단(선(先)동호-선..

한국(동이)과 중국(화이)(1) : 유전자분석

https://youtu.be/LD6urxLUd54 youtu.be/QvveLBMWw_w 중국은 국경 안에서 일어났던 모든 과거사를 자국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들의 주장은 그야말로 놀라운데 동북공정의 연구물인 『고대 중국 고구려 역사 속론』에서 고구려인이 중국의 고대 국가인 은나라와 상나라의 씨족에서 분리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인과 중국 한족은 혈연적으로 한 핏줄이란 이야기다. 중국은 역사적이나 문화적으로 동이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진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쌓은 것도 큰 틀에서 흉노와 동이의 침입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며 화하와 동이가 다르다는 것은 근래까지 견지했다. 그러나 중국의 복잡성은 결국 동이의 역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앞장서고 있다. 문제는 중국..

세조의 문종 살해?(II)

youtu.be/ohkenXtOZHY 조정에서는 전순의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전순의의 방면은 사건을 오히려 확대케 하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동년 4월 27일 본격적인 상소가 들어오는데 이때부터 과거와는 달리 의관 전순의에 대한 의학적 처방이 옳지 않았다는 전문적인 죄상이 낱낱이 밝혀진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전순의의 죄상은 다음과 같다. ‘허리 위에 종기는 비록 보통 사람이라도 마땅히 삼가고 조심하여야 할 바인데, 하물며 임금이겠습니까? 움직이는 것과 꿩고기는 종기에는 금기하는 것인데, 전순의가 문종께서 종기가 난 초기에 사신의 접대와 관사(觀射) 등 모든 여러 가지 운동을 모두 해로움이 없다고 생각하였고, 이어서 구운 꿩고기를 바치기에 이르면서도 꺼리지 않았습니..

세조의 문종 살해?(I)

youtu.be/vOVOaeVhPW8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격변 중 하나는 계유정난(癸酉靖難, 1453)이다. 어린 나이에 단종이 즉위하자 삼촌인 수양대군이 난을 일으켜 왕권을 손에 넣었으며 이에 불복한 사육신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무자비하게 처형당하는 등 정치세력 간의 갈등은 큰 상처를 남겼다. 단종의 아버지인 문종은 조선왕조의 황금시대를 연 세종의 맏아들로 세종 32년간의 재위기간 중 마지막 8년을 섭정했다. 그는 평소에 학문을 좋아하였고 집현전 학자들을 아끼는 등 성군의 자질을 보였으나 어려서부터 병약했다. 세종이 그로 하여금 서무(庶務)를 결제하게 하였으나 신하들이 각종 질환을 이유로 반대했을 정도였다. 1450년 세종이 사망하자 문종이 왕으로 등극했다. 조선왕조의..

황금보검이 알려주는 신라와 훈족

끄새-TV의 끄새에게 신라의 고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출토품 두 가지를 꼽으라면 금관과 황금보검(장식보검)을 든다. 그 중에서도 한 가지를 꼽으라면 국보도 아닌 황금보검(보물 635호)을 이야기하곤 했다.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금관보다 황금보검을 선정한 이유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곧바로 어떤 이유로 황금보검을 제일 처음으로 꼽느냐고 다시금 질문한다. 이에 대한 답을 신라에 조예가 깊은 요시미츠 츠네오의 글로 적으면 다음과 같다. ‘보로워에(현 카자흐스탄)의 귀금속 상감검의 장식은 얼핏 보면 신라의 황금보검 장식과 전혀 무관해 보일 정도로 디자인이 다르다. 그러나 제작 기법은 모두 공통적으로 복스 세팅법에 의한 귀금속 상감법이고 상감한 귀금속 주위에 금알갱이를 장식하는 누금세공 기법도 동일하다...

위기에 처한 독도 생태계 살리기

youtu.be/dtJXum7A10w 근래 독도의 생태계 변화는 한국인들을 놀라게 했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로 나뉜 작은 섬이지만 바닷속에 잠겨 있는 부분까지 포함하면 독도 전체 높이는 2,300m에 이르는 거대한 화산체다. 그러므로 상부 대지 면적이 여의도의 10배나 되는데 독도 주변은 차가운 물과 따뜻한 물이 서로 만나는 구조 및 환경 특성 때문에 독도 주변 해양 환경 및 생태계는 동해의 다른 지역과 판이하게 차별화된다. 독도에 서식하는 식물은 울릉도 특산식물인 섬장대를 포함, 도깨비쇠고비 등 59종으로 보고되었으며, 각종 단체들이 그간 심어온 보리장, 동백, 섬괴불, 향나무, 사철나무, 후박나무 등의 울릉도 향토수종을 포함하여 현재 약 80여 종의 식물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있다. 육지에서 200km..

세종 조, 세계 최초의 과학영농온실

youtu.be/n-oJHWh17Ec 유럽보다 170년 빠른 세계 최초의 과학영농온실 조선 세종 때 세계 최초로 온실을 만들었다고하면 곧바로 국수주의적인 주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 한국인들이 자주 써먹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훈민정음, 금속활자, 측우기 등은 물론 비거(飛車)와 로켓 등을 만들어 세계인을 감탄하게 한 우리 민족의 지혜가 농업 분야에도 반영됐을 수 있다는 생각한다면 다소 생각을 달리할 지 모른다. 그런데 이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내용이 알려진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1990년대 말 의 이훈석 선생은 청계천 고서점에서 『산가요록(山家要錄)』이라는 헌 책을 구입했다. 고서수집이 취미인 그는 워낙 오래된 책 같아서 무조건 사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