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 158

킬링필드의 크메르 루즈(1)

youtu.be/Hhd-5G_ctsk 1860년 초. 프랑스의 박물학자 알베르 앙리 무오는 진기한 나비를 채집하기 위해 현지 주민 4명과 함께 캄보디아의 밀림 속을 계속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 도착하자 4명의 안내꾼들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들은 정글 안에 몇 백 년 동안이나 주술에 걸린 수많은 유령들이 들끓고 있으며 그들은 밀림 속의 텅 빈 도시에 있다고 했다. 무오는 나비채집보다 도시가 있다는 말에 흥미를 느끼고 그들의 이야기가 진실인지 밝히고 싶었다. 전설의 대부분이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무오는 자신이 직접 진위를 확인하고 싶었다. 안내인들을 설득하여 밀림 속으로 들어가던 무오는 갑자기 펼쳐지는 장관을 보고 자신이 꿈을 꾸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안내인들은 ..

731부대(6)

youtu.be/GXlnJdxUjuw 중국 정부는 헤이룽장(黑龍江)성 성도 하얼빈(哈爾濱)시 근교 핑팡(平房)지구에 있었던 일본 관동군 731부대 유적지에 조성한 을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지정해 달라고 신청했다. 폴란드의 아유슈비츠 수용소, 일본의 히로시마 평화박물관이 이미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이 박물관에는 731부대 본부 건물을 그대로 옮겨 놓았으며, 731부대의 잔학상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당시 실험에 쓰였던 집기류, 모형을 이용한 생체 실험 장면, 비디오 영상물 등도 전시돼 있다. 이 박물관에는 또 온도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테스트하기 위해 수감자들을 고온과 저온에 노출시키는 실험을 했던 방도 그대로 옮겨 놓았다. 박물관에는 731 부대의 책임자인 이시이 시로와 다른..

731부대(5)

youtu.be/UMftgrHRIds 이시이가 거론한 원자폭탄에 의한 피해 상황은 다음과 같다. 1945년 8월, 세계에서 최초로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졌을 때 히로시마 인구는 34만 3,757명이었다. 원자탄은 시내 중심지에 투하되어 군사공원 일대의 시민들이 모두 사망했는데 사망자는 7만 8,150명, 부상자와 실종자는 5만 1,408명으로 총 사상자는 12만 9,558명이다. 여기서 실종자란 시체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뜻한다. 히로시마엔 원래 7만 6,327채의 건물이 있었는데 이중 전파된 것이 4만 8,211채, 반파된 것이 2만 2,178채, 나머지는 지붕이 날아가거나 벽에 금이 가거나 무너졌다. 히로시마의 구조에 참여했던 군의관은 자신이 목격한 히로시마의 참사를 다음..

731부대(4)

youtu.be/-6htTWF-2n0 1945년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고 소련이 일본에 전쟁을 선포하여 100만 소련군이 극동으로 진격했을 때 이시이는 마침 도쿄대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 그는 731부대를 떠나 일본에 귀국하면서 그의 큰형인 이시이 도라오에게 당시의 자료를 21개 나무상자에 넣어 봉한 후 관동군이 패배한다면 직접 비행기에 실어 일본으로 운반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시이의 부탁을 받은 큰형은 일본군이 절대로 패배하지 않는다며 운반할 준비를 하지 않았고 막상 자료들을 운반하려 할 때는 비행장을 소련군이 장악한 후였다. 이시이 도라오는 관동군 총사령관 야마다 오토조에게 자료의 처리방안을 묻자 그는 실험기지의 중요한 건축물과 시설은 물론 자료들을 모두 소각해 버리라고 지시했다. 그제서야 야마..

731부대(3)

youtu.be/04gOgju8M9A 다방면에 걸친 인체실험 중에서도 독가스 반응에 관한 실험은 독일과 함께 매우 중요한 비중으로 다루어졌다. 전쟁터에서 독가스를 사용했을 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람이 불면 적군이 아니라 아군에게도 피해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독가스는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연구되어야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잘못되어 아군에게 독가스가 퍼졌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였다. 독가스로 사용될 수 있는 많은 종류를 일일이 구분하여 사람은 몇 초 만에 숨을 거두는가, 특히 유독성 물질이 들어갔을 때 육체가 어떻게 썩어서 문드러지는가를 실험했다. 독가스실에 어린아이와 부모를 함께 넣은 실험은 매우 충격적이다. 기록에는 독가스가 유리방 안에 가득 퍼지자 여자는 주저앉으면서도 아이를 품에서 놓지 않고..

731부대(2)

youtu.be/z4dhjyEMU3M 〈세계에서 가장 잔악한 군의관〉 군사법정의 피의자로 체포된 이시이 시로(石井 四郎, 1892〜1959)는 증거가 워낙 적나라하고 죄상이 극히 나쁘므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지목된 도조 히데키 등 다른 피의자보다 먼저 예심을 받았다.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세균무기와 화학무기에 의한 피해가 워낙 심한데다가 각국에서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었다. 이와 같이 당초에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시이 시로는 1892년 치바현에서 출생했다. 22살에 교토대학 의학부 병리학과를 졸업하고 근위사단에서 2년간 군의관으로 복무한 후 육군성의 추천으로 독일에 유학하여 세균과 독가스 연구 제조에 관해 공부할 때 ‘세균전만이 일본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731부대(1)

youtu.be/h38wIdprAOA 한국에서 1990년에 개봉된 중국 모돈불 감독의 「마루타」는 원제목이 「黑太陽 731(Men Behind The Sun)」인데 그야말로 충격적인 역사 드라마를 영화로 옮긴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이 모든 전선에서 일본군이 패하고 있을 무렵 뇌물수수로 예편 당한 의학박사 이시이 시로 박사가 731 부대장으로 부임한다. 동시에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일본인 소년병들을 모집, 731 부대의 특수임무 수행을 위한 엄격한 훈련이 시작된다. 소년병들의 교육 과정은 냉동 실험, 세균 실험, 독가스 실험, 폭파 실험 등 살아있는 인간 마루타를 대상으로 온갖 잔혹한 실험을 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비인간적이고 변태적인 소장의 명령에 따르면서 소년병들은 내심의 ..

세기의 재판 아돌프 아이히만(3)

youtu.be/WsS8hvlnENY 아이히만 재판은 세계에 인간의 본성을 놓고 아직까지 끊이지 않는 화두를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잡지 의 특파원 자격으로 아이히만 재판을 참관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1963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에서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제대로 된 비판정신 없이 상부의 명령에 맹종하면 어떻게 된다는 걸 보여준 중요한 표본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역사학자들이 발끈했다. 아이히만은 언제나 유대인을 독일의 적으로 간주했으며 유대인을 전부 죽여야 한다는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나치당원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아렌트가 이에 반격을 가했다. 아렌트는 수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아돌프 아이..

세기의 재판 아돌프 아이히만(2)

youtu.be/KJ0KeIxI0I8 아이히만은 1960년 5월 11일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의 추적으로 납치되었다. 사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민간인 ‘나치 사냥꾼’ 시몬 비젠탈 등의 추적은 종전 직후부터 시작됐다. 비젠탈은 54년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 있다는 첩보를 모사드에게 전달했고, 60년 아이히만의 아버지 장례식에서 아이히만과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동생의 사진을 몰래 찍어 건네기도 했다. 철저하게 은신하던 아이히만이 발각된 것은 그의 장남 클라우스가 1957년 여자친구인 유대계 실비아 헤르만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유럽에서 '유대인 제거'에 앞장섰다고 자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비아의 아버지는 아이히만의 희생자로, 부모를 잃고 자기 역시 수용소에서 수감되었던 경력이 있었다. 그는 이 말을..

세기의 재판 아돌프 아이히만(1)

youtu.be/RHWCxnHnzkM 1961년 4월 11일, 예루살렘에서 세계 최초의 TV 생방송이 세계를 상대로 '세기의 재판' 생중계가 계획되었다. 생방송의 주인공은 600만 유대인의 추방과 학살을 주도한 나치전범 아돌프 아이히만(Karl Adolf Eichmann, 1906〜1962)으로 그의 생방송 재판을 37개 나라에 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기의 생방송을 위해 미국에서 벌어진 매카시즘에 의해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TV감독 허위츠, 프로듀서인 프루트만이 재판정에 3개의 카메라를 설치코자 했다. 그런데 생방송까지 남은 시간은 단 3일밖에 남아있지 않는데 이스라엘 정부는 아직 생방송 촬영을 허가하지 않았다. 특히 법원에서는 TV카메라로 인해 재판이 방해될지 모른다며 우려를 제기했는데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