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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스타샤 공주(5)

youtu.be/0B6IR_EJ6T0 질리아르와 올가 여대공의 가짜 판정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진짜 아나스타샤라는 주장도 끊이지 않았다. 이 당시 아나스타샤를 올가 여대공보다 훨씬 잘 알 만한 인물로 안드레이 대공이 있었다. 아나스타샤의 숙부인 안드레이 대공은 차이코프스키 부인이 자기의 조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안드레이 대공 이외에도 많은 친척들이 차이코프스키 부인을 진짜 아나스타샤 공주라고 생각했다. 아나스타샤는 안드레이 대공이 1916년 러시아를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드레이 대공은 이 방문을 극구 부인했고 시릴대공은 그녀를 ‘뻔뻔스러운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1949년에 전 러시아근위연대 연대장이었던 라르스키 대령이 아나스타샤가 주장한 바로 그 시기에 그가 비밀리에 러시..

아나스타샤 공주(4)

youtu.be/dQOYKgWs3Fo 아나스타샤는 처형될 때인 1918년 당시 17세였다. 그런데 1920년 2월 17일 저녁, 나이 20세 정도의 여자가 베를린의 란드베르 운하에서 투신자살을 기도한다. 러시아 억양의 독일어를 썼던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을 살해할 우려가 있다며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경찰은 여자를 ‘프로이라인 운베칸트’ 즉 ‘미지의 여인’이라고 불렀다. 특히 그녀의 몸에는 많은 외상이 있었다. 귀 뒤쪽에 총알이 지나간 찰과상으로 보이는 흉터가 있고 발에는 러시아식 총검에 찔린 듯 별 모양의 흉터가 있었다. 그 밖에도 몸 전체에 상당수 흉터가 있었고 가슴과 팔에도 심한 흉터가 있었다. 병원에 수용된 다음에도 그녀는 6주일 동안 말문을 열지 않았다. 더구나 음식조차 먹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

아나스타샤 공주(3)

youtu.be/wr4MMsKQjuE 1970년 영국의 BBC-TV는 앤소니 섬머즈와 톰 맨골드를 조사위원으로 위촉하여 이 사건에 대한 집중적인 밀착 취재에 나섰다. 그들은 소콜로프가 조사 목적으로 촬영했다는 사진 자료가 파리의 골동품상 다락방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는 소문을 우연히 듣고 추적하기 시작했다. 광범위한 조사 끝에 사본 중 한 벌이 영국 사의 로버트 윌턴이라는 저널리스트에게 맡겨졌음을 확인했다. 그들은 윌턴의 미망인이 1937년 서류를 경매에 내놓았고 그 서류는 메이페어가의 한 고서적상에 들어갔다는 것도 파악했다. 고서적상은 다시 벨 전화 회사의 임원에게 팔았고 그는 모든 자료를 하버드 대학의 호크톤 도서관에 기증했다는 것도 밝혀졌다. 소콜로프의 자료를 조사하던 두 사람은 백러시아군이 사건 내..

아나스타샤 공주(2)

youtu.be/4tXUXnhM0Hk 〈니콜라이 2세의 퇴위와 재판 대기〉 러시아가 계속 독일에 패배하자 로마노프 왕조로서는 더 이상 독일과 싸워 승산이 없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전쟁에서 계속 패배하면서 러시아의 민심이 흉흉해질 때 1917년 2월 23일 ‘2월 혁명’이 시작되었다. 원래 2월 23일은 ‘국제여성의날’인데 페트로그라드의 여성들이 ‘빵을 달라’, ‘우리 아이가 굶주린다’를 외치며 거리 행진을 했다. 여기에 공장에서 나온 노동자들이 합세하여 사태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위대의 주장도 ‘빵을 달라’에서 점점 ‘차리즘 타도’, ‘전쟁 중지’, ‘평화와 자유’로 확대되었다.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려 했지만 반대로 사병들은 혁명의 편으로 돌아섰다. 시위가 일어난 지 9일 만에..

아나스타샤 공주(1)

youtu.be/Wr_Ldg_qR0Q 영화에 나오는 러시아 궁정은 정말로 화려하다. 궁정의 화려함은 물론 참석자들 모두 사치의 극치를 누리고 있는데 그것은 현재 박물관으로 개봉되고 있는 과거 러시아 제국의 궁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지구 영토의 10분의 1을 차지하고 있지만 도저히 인간이 살 수 없는 황무지 땅이 대부분인 제정 러시아가 이와 같이 사치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시베리아가 그야말로 러시아의 보물창고이기 때문이다. 17세기말에 러시아의 계몽군주 피터 대왕이 시베리아에서 은광산을 발견했고 반세기 후에 시베리아 북서쪽 끝에 위치한 베르요조프에서 금광맥을 발견했다. 그런데 금은 100미터 깊이에 묻혀 있었다. 이것이 시베리아의 비극을 갖고 오게 한 요인이다. 곧바로 러시아의 농노들과 유배된 범죄자..

어린 왕자, 드 생텍쥐페리 동화(4)

youtu.be/IRGPPBW-11Q 새 기지에서도 나이가 많아 부대의 주력기인 초현대식 항공기 록히드 P-38 일명 번개인 쌍발기를 조종하는 것을 거절당했으나 그의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과 귀족이라는 연줄을 이용해서 또 다시 출격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두 번째 출격에서 착륙하던 중 활주로에서 벗어나 기체에 심한 손상을 입히자 출격정지 처분을 받아 지상근무 명을 받았다. 계속적인 비행기 사고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날겠다는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아 개인적으로 지중해 지역 연합공군사령관 이라 C. 이커 미 육군 중장을 만나 비행을 할 수 있도록 호소하여 1944년 5월, 정찰비행만 한다는 조건으로 비행중대에 다시 복귀했다. 비행대로 복귀한 후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조종과 독서 그리고 글씨기를 재..

어린 왕자, 드 생텍쥐페리 동화(3)

youtu.be/6uBOhqqHHts 드 셍텍쥬베리가 귀족 중 귀족이라는 것이 그의 생애를 계속 따라다니는데 이는 전통을 중시하는 유럽 사회에서 귀족이라는 신분이 가지는 의미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프랑스의 대통령이었던 샤를르 드 골, 죠르즈 드 퐁피두, 지스카르 데스텡 등 앞에 ‘드’자가 붙는 사람은 모두 귀족이다. 유럽 언론이 대서특필감 기사로 입맛다셔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어느 왕족 또는 유명한 귀족이 평민과 결혼한다더라 하는 기사이다. 자유와 평등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잘 확보되어 있는 듯 보이는 유럽에서 귀족이나 왕족이 평민과 결혼했다는 것이 뭐 그렇게 중요한 일이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들만의 사회에서는 보통 일이 아니다. 실제로 평민 출신의 프랑스와 미테랑이 1981년에 재선을 노리는 프랑..

어린 왕자, 드 생텍쥐페리 동화(2)

youtu.be/Yhmj2QUL7VM 학자들은 『어린왕자』에서 드 셍텍쥐베리가 소설의 중요 등장인물로 뱀을 등장시켰다는 점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어린왕자가 방문한 여섯 째 별을 방문했을 때 어느 별로 가야 친구도 찾고 지혜도 얻을 수 있을지 묻는 어린 왕자에게 지리학자는 지구의 평판이 좋다며 지구 방문을 권유한다. 지리학자의 말을 믿고 지구를 찾은 어린 왕자는 사람 하나 없는 지구 모습에 적잖이 실망하지만 달빛 고리처럼 모래 속에서 꿈틀거리는 뱀을 보고 엉겁결에 뱀과 인사를 나눈다. 뱀과 다정히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이 지구의 아프리카 사막에 떨어진 것을 알게 된 어린 왕자는 아무도 없는 사막의 돌 위에 홀로 앉아 하늘을 올려 보며 말한다. ‘별들이 환히 빛나는 건 언젠가 저마다 자기별을 다시 찾아낼 수 ..

어린 왕자, 드 생텍쥐페리 동화(1)

youtu.be/YzDhprQ0GCI 정식 판매부수는 8,000만부가 넘고, 해적판까지 합치면 전 세계적으로 1억 부 이상 팔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는 16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오늘날에도 널리 사랑 받고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사실 『어린 왕자』는 책을 읽는 어린아이들의 통과의례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도 전 세계의 어린이들로부터 꾸준히 읽히고 있는 『어린 왕자』는 본명이 앙투안 장밥티스트 마리 로제 드 생텍쥐페리(Antoine Jean-Baptiste Marie Roger de Saint-Exupéry, 1900〜1944)라는 긴 이름을 갖고 있는 작가가 쓴 작품이다. 그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비행기 조종사로 아프리카·남대서양·남아메리카..

토리노의 수의(예수의 수의)를 둘러싼 진짜ㆍ가짜 공방(6)

youtu.be/t4bPWxzKEfA 교황청의 발표가 있었음에도 이를 믿을 수 없다는 주장도 계속 봇물을 이뤘다. 우선 탄소14 측정을 위한 조건들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건은 모두 6가지였는데, 이 중 4가지 조건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또한 오염이 아주 많은 부분이 검사를 위한 표본으로 선택됐다는 점이다. 수의는 화재를 당했고, 물을 뒤집어썼으며 150회 이상 일반에 공개돼 대기에 노출됐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맨손으로 천을 쥐었다. 그런데 측정을 위한 표본을 사람 손이 제일 많이 가는 곳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또한 채집된 샘플은 16세기에 제작된 면을 섞어 원본 아마포와 구별되지 않도록 새로 짠 부분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미국 로스알라모스국립과학연구소의 레이먼드 로저스 박사..

토리노의 수의(예수의 수의)를 둘러싼 진짜ㆍ가짜 공방(5)

youtu.be/c7-KPKTnBkk 20장에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는 기록을 놓고 앞에서 독일 작가 쿠르트 베르나는 수의가 진짜임을 전제로 매우 놀랄만한 견해를 밝혔다는 것을 앞에서 설명했다. 그는 수의가 예수의 수의가 틀림없다면 피의 얼룩으로 보아 ‘그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후에도 심장이 아직 뛰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여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예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사망한 후 내려졌다면 상처에서 흐르던 피는 이미 멈춰 있었기 때문에 체외의 피는 수의에 싸기 전에 말라붙어 있어야 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의 주장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숨졌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되므로 곧바로 신성모독이라는 비난까지 받았다. 베르나의 주장은 케레스텐 박사에 의해 더욱 ..

토리노의 수의(예수의 수의)를 둘러싼 진짜ㆍ가짜 공방(4)

youtu.be/SbYPyn3TI20 반면 과학자들은 진정한 예수의 수의로 인정받으려면 수의의 제조 연도가 예수 시대임을 증명하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탄소연대측정을 꼭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의가 유럽에 공개되기 시작한 시기가 14세기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황청의 허가는 쉽사리 내려지지 않았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1968년 바오로 2세는 가톨릭 교회의 가장 유명한 성유물 중 하나인 제1대 교황인 성 바오로가 사용하였다고 알려진 의자의 연대를 측정하도록 허가하였다. 이 의자는 상아로 상감된 참나무 재질의 고가구로서 유명한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베르넹에 의하여 1657년에 시작하여 1666년에 조각이 완성된 금박입힌 청동 기념물 안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탄소연대측정을 해..

토리노의 수의(예수의 수의)를 둘러싼 진짜ㆍ가짜 공방(3)

youtu.be/pYdqRWJQiZY 수의가 진짜냐 아니냐로 설전을 벌이는 와중에서 미국 수의 연구 조사팀은 1981년 자신들이 분석한 결과에 대해 발표했다. 수의의 천에 대한 몇 가지 간단한 실험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밝혀 주었다. 우선 이 천이 예수 시대에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사용되었던 직조 기술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천에 사용된 섬유는 아마였으며 현미경 검사에 의해 목화도 발견되었다. 이것은 이 천이 목화를 사용하였던 직조기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는 고대 이집트부터 재배되어 직조되었고 목화는 4,000년 전부터 인더스의 계곡에서 번성하였다. 그러나 V자가 거꾸로 박힌 형상의 직조 방법은 시리아와 관계되는 예수시대에 한정되어 있다. 1973년 스위스의 범죄학..

토리노의 수의(예수의 수의)를 둘러싼 진짜ㆍ가짜 공방(2)

youtu.be/akMhkm4PmsA 과학자들의 공식적인 발표를 설명하기 전에 미국팀이 수의를 조사하기 전에 진행되었던 수의에 대한 조사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수의의 인영을 설명하기 위한 과학적인 첫 번째 시도는 프랑스인 폴 비뇽에 의하여 20세기 초에 이루어졌다. 그는 당시의 빈약한 자료 제공에도 불구하고 수의의 인영은 조작된 것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인영이 증기 이미지(Vaporagraphiques)라는 작용에 의해 생겼을지 모른다고 하였다. 즉 방부제로 사용하였던 미르라는 올리브 몰약과 노회의 혼합 용액이 시신에서 발산되는 암모니아와 결합되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의 요한복음 19장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

토리노의 수의(예수의 수의)를 둘러싼 진짜ㆍ가짜 공방(1)

youtu.be/Z-A1TlwDYbY 모든 종교의 성스런 유물들이 신비적인 환상을 자아내고 있지만 이탈리아 토리노의 지오바니 바티스타 성당에 보관된 예수의 수의처럼 호기심을 자아낸 것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는 아리마데 요셉이 본시오 빌라도 로마 총독에게 청하여 그 시체를 받아온 뒤 자신의 매장지로 미리 준비해둔 동굴 무덤에 안장했다고 한다. 당시 유태인들은 시신을 세마포로 말아서 매장하므로 예수의 시신도 세마포로 싸서 매장되었다고 알려진다. 그런데 3일 후 여인들이 예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러 찾아가보니 동굴 무덤의 문은 활짝 열려있고 예수의 시신을 덮은 세마포만 접혀져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이 세마포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 것이 바로 예수의 수의라는 설명이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지구인 카사노바(4)

youtu.be/Cc8o2qNFb0E 카사노바는 베네치아에 돌아와 출판업에 열중했다. 당시 베네치아는 정부 체제만 비방하지 않으면 모든 분야에서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었으므로 다른 나라에서 금지된 책들을 비교적 자유롭게 출간할 수 있으므로 활황을 누리고 있었다. 유럽 각국의 많은 이방인들은 책을 구하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그로 인해 출판업은 활기를 띠었다 카사노바는 프랑스 배우들과 연계하여 연극비평 주간지 도 창간하여 훗날 예술계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다. 또한 카사노바는 프란체스카 부라키니라라는 가난한 처녀와 평범한 가정을 꾸리게 된다. 물론 그의 정적들과 빚쟁이들이 카사노바를 괴롭히긴 했지만, 카사노바는 비교적 평온한 생활을 견지하는데 또 다시 불행이 찾아온다. 카사노바가 1883년에 쓴 『사랑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지구인 카사노바(3)

youtu.be/9T7gkIw9r-0 카사노바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평할 때 그가 뛰어난 사업가였다는 점을 꼽아준다. 특히 경제의 맥을 잘 짚어내는 벤처사업가 기질이 많았다는 것이다. 베네치아에서 탈출하여 1757년에 파리에 도착한 카사노바는 베니스에서 사귀었던 프랑스 외교관 베르니스 공사의 주선으로 파리의 사교계에 자연스럽게 데뷔했다. 베니스의 감옥을 탈출했던 무용담과 해박한 지식으로 파리 귀부인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명성을 얻은 카사노바는 루이 15세의 정부 퐁파두르 부인에게도 인정을 받게 된다. 어느날 오후 사저(私邸)를 나서던 퐁파두르 부인과 마주친 카사노바는 인사만 나눈 뒤 빨리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매우 반가운 기색으로 카사노바에게 말을 건네더니 그가 프랑스에 정착했..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지구인 카사노바(2)

youtu.be/xtSgHEWHScc 놀라운 것은 그가 1742년 즉 17살의 나이에 베네치아 인근의 파도바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카사노바가 수학한 파도바대는 지금도 유럽의 명문 대학으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있었던 곳이기도하다. 그는 선천적으로 언어 능력을 갖고 있어 베네치아 인근의 파도바 대학에서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히브리어에 능통했고 스페인어, 영어도 어렵지 않게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더구나 대학교 때 학습 능력이 대단하여 고전 문학을 줄줄이 꿰고 있는 것은 물론 신학, 법학, 자연과학, 예능 등 다방면에 뛰어난 성적을 유지했다. 가난하면서도 똑똑하고 융통성이 뛰어나 훗날 경제, 정치,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엘리트들과 교류할 수 있는 밑걸음이 되었다. 특히 그는 춤, ..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지구인 카사노바(1)

youtu.be/C4nVDPSJFvQ 자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 데 세인갈트(Giacomo Girolamo Casanova de Seingalt, 1725〜1798)라면 모르는 사람도 카사노바라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8세기의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성을 표방하여 ‘섹스’를 연상하면 곧바로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알려진다. 카사노바라는 이름이 여성 편력가로 워낙 유명하자, 그의 이름은 ‘(여성을) 유혹하는 기술’과 동의어로 남아있으며 ‘세계 최고의 연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남다른 생애가 감독들의 눈을 끌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대한 영화가 수없이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라는 신기한 기술이 태어난 후 수많은 바람둥이에 관한 영화들이 제작되었는데 바람둥이를 다루는 영화들의 기본 소..

설인 예티와 빅풋 사스콰치(6)

youtu.be/f4Vobx5fUXE 만우절 사건은 백두산에서도 나타났다. 2007년 3월 30일 중국은 ‘설인’으로 추정되는 괴생명체가 발견됐다고 사진과 함께 발표했다. 백두산 해발 1,250m 지점에서 한 중국 산악인이 촬영한 것으로 키가 2.5m에 달하고 온 몸이 털로 덮여 있다. 괴물은 똑바로 서서 걷는 데다 보행 속도도 사람과 비슷한 시속 4km 수준이었다고 기염을 통했다. ‘설인’ 논란에 일부 사람들은 사진조작 가능성을 검증해야 하며 곰과 같은 대형 포유류와 혼동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물론 ‘설인’의 존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백두산의 원시 자연림에 대한 연구결과가 거의 없으므로 알려지지 않은 생명체가 있을 수 있다는 시각이다. 베이징대의 류더화 교수는 한술 더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