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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7) : 행궁 및 을묘원행(I)

youtu.be/P4UgBOTUzQk 정조가 착착 자신의 계획을 추진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높힐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마침 그에게 절호의 순간이 찾아왔다. 1795년은 정조가 왕위에 오른 지 20년을 맞는 해이고 화성 신도시 건설이 준공을 앞둔 시점이었다. 또한 아버지 사도세자가 1795년에 주갑(周甲),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회갑을 맞는 해였다. 정조는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에서 치르면서 국민들을 위무하는 동시에 그에 반대하는 신하들에게 경종을 주기로 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혜경궁 홍씨의 환갑연을 열었다. 외부적으로는 진찬례다. 진찬례란 왕실의 어른께 음식을 올린다는 뜻으로 정조가 자신의 어머니의 환갑연을 차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굳이 화성에서 진찬례를 할 필요가 있..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6)

youtu.be/Yops3lCLefk ⑥ 봉돈(봉화대) 봉돈은 횃불을 올리는 봉화대로서 성곽 높이보다 높게 쌓았고, 성곽 밖으로 5.5미터나 돌출되어 있다. 봉돈에는 5개의 불구멍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매일 저녁 동쪽의 석성산의 육봉(陸烽)과 연락했고 바다로는 홍천대의 해봉(海烽)과 사이에 간봉을 두고 연락했다. 나머지 불구멍은 비상 때에만 쓰였다. 그런데 화성의 봉돈은 봉화 시설의 기능만 가진 것은 아니다. 봉돈을 성벽에 붙여서 돌출되게 축조하였고 내부는 비워두고 3층으로 나누어 각 층에 대포와 총을 장착하고 발사할 수 있도록 했다. 대포 구멍과 총구멍이 각각 무려 18개나 되는 것을 볼 때 공격적인 방어 진지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봉돈은 외벽과 내부 계단까지 모두 벽돌로 만들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5)

youtu.be/fRVp3tOdPtQ 화성의 높이가 고작 4미터 정도로 여장을 합해도 5미터에 지나지 않아 외국의 일반적인 성들이 보통 10미터를 넘는 것을 볼 때 다소 작게 느껴지며 실제로 성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화성은 18세기의 군사 기술적 측면을 고려해 만들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문중양 박사는 설명했다. 그의 화성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동아시아에서의 전쟁 양상은 종래와 상당히 달라졌다. 즉 18세기 이후 대형 화포와 같은 화약 병기의 파괴력이 막강해지고 성능도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사용되던 ’불랑기‘에 이어 영조 때 들여온 서양식 화포인 ’홍이포‘의 등장 등이다. 그에 따라 전체 전투력에서 차지하는 화약 병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4)

youtu.be/xp5zw-Hgkws 화성의 건축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다산 정약용(丁若鏞)이다. 정조는 실학자 다산에게 '삼남의 요충이요, 서울의 보장지지(保障之地)로서 만세에 길이 의지할 만한 터'인 수원화성을 건설토록 한다. 당시 30세이던 다산은 왕실 서고인 규장각에 비치된 첨단 서적들을 섭렵하고 기존의 여러 문헌을 참고하여 새로운 성곽을 설계했다. 다산의 계획안은 5편으로 「성설(城說)」, 「옹성도설」, 「현안도설」, 「누조도설」, 「포루도설」로 되어 있다. 이중에서 「성설」은 성의 전체 규모나 재료, 공사 방식 등 전반에 관한 내용을 적었다. 「옹성도설」은 옹성, 「현안도설」은 현안, 「누조도설」은 적이 성문에 불을 붙였을 때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성문 위에 벽돌로 오성지(五星..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3)

youtu.be/m7V9L2nFCls 〈철저한 설계도면에 의한 다양한 건축〉 화성에 대한 기본 계획이 수립되자 조선 역사상 한양 건설 이후 가장 큰 도시의 건설을 명령한다. 성역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정조17년(1793) 1월 수원을 유수부로 승격시킨 전후의 일이었지만 정조14년 6월에 수원화성에 견고한 성곽을 갖춘 대도시를 건설하는 구상은 부사직(副司直) 강유(姜遊)의 제안에서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현륭원 천봉 직후 강유는 수원에 축성설참(築城設塹)할 것을 제안하였다. ‘수원(水原)은 곧 총융청(摠戎廳)의 바깥 군영으로서 국가의 중요한 진(鎭)이고 더구나 또 막중한 능침을 받드는 곳이니, 의당 특별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새 읍을 옮겨 설치하였으나 성지(城池)의 방어설치가 없습니..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2)

youtu.be/vjBMAD4_CfM 정조가 이렇게 활발하게 내외적인 업적을 쌓아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정조에게는 한 가지 개인적인 걸림돌이 있었다. 그것은 불명예스럽게 뒤주 속에서 사망한 사도 세자의 아들이라는 멍에였다. 그래서 정조는 통치 기간 내내 아버지 사도 세자에 대한 효성과 추모 사업을 가장 중요한 정치적인 명분으로 내세웠다. 1762년 영조(英祖) 38년 윤 5월 21일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한여름 뒤주 속에 갇힌 지 8일 만에 죽었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왕세자로 책봉되어 한때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국정을 돌보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 쟁취를 위해 대립하고 있던 노론과 소론 간의 권력 다툼에서 패배하여 부친의 미움을 사 28세란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1)

youtu.be/z0ve2tQ32tQ 정조 22년(1798) 8월, 정조는 수원화성과 관련된 상소문을 받았다. 상소의 주인공은 임장원(任長源)이란 60세를 넘긴 언관으로 그는 정조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적었다. 임장원은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에게 효도를 다하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 때문에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켜 나라를 동요시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임장원은 정조의 능묘 조성과 신도시 개발을 분명하게 비판했다. 그는 사도세자가 생전에 수원에 묻히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없다고 지적하면서 수원에 능묘를 만들고 신도시를 개발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의 유언비어 중에는 정조가 ‘중국의 진시황제처럼 성을 쌓는다’라는 말도 있었다. 정조는 ‘소인(小人)과는 이루어진 성과를 함..

버뮤다 삼각지대, 비밀의 진상(6)

youtu.be/l9UflQRBWuc 〈메탄수화물이 원인?〉 근래에 대두된 학설로 이 지역에서 메탄수화물(가스 하이드레이트)이 방출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1997년 12월에 해양 생물학자 챨스 휘셔는 잠수정을 사용하여 멕시코 만 550미터 깊이의 메탄수화물 층에 살고 있는 벌레를 발견했는데 이들이 메탄가스의 방출을 유도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메탄수화물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이 가설에도 약점이 있다. 또한 기포 실험 결과에 의하면 예측과는 반대의 작용도 일어났다. 기포가 위로 올라가면서 주위의 물도 함께 올라가고 이 힘이 배를 띄우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매우 격렬한 기포를 제외하고는 위로 올라가는 수류(水流)에 의해 가해지는 힘이 물체를 떠있도록 하기에 충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버뮤다 삼각지대, 비밀의 진상(5)

youtu.be/NeOdfi6-TdM 〈버뮤다 삼각지대의 실종사건이 태어난 것은 60년도 안 돼〉 버뮤다 삼각지대의 실종사건이 알려진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는데 모두들 놀라게 마련이다. 버뮤다 삼각지대에 대한 실종 사건은 1959년에 헤럴드지의 에드워드 반 윙클 존스가 그 당시까지 일어난 몇몇 실종 사건을 수집하여 처음으로 발표했지만 이 기사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버뮤다 삼각지대의 실종사건이라는 어휘를 만들고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기 시작한 계기는 1964년 빈센트 가디스가 모험잡지인 〈아소시〉에 발표한 『죽음의 버뮤다 삼각지대』부터 유래한다. 그는 사라진 섬이나 사라진 선원, 유령선 등 온갖 종류의 실종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버뮤다 삼각지대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하..

버뮤다 삼각지대의 비밀의 진상(4)

youtu.be/8ZJD2F8-QPo 버뮤다 삼각지대에서의 실종사건이 많아지자 이들 원인에 대해 과학자들이 도전했다. 제일 먼저 제기되 것은 이들 지역에서 생기는 자기장 이상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사실 자기장 이상에 대해서는 버뮤다 삼각지대의 사건 때문이 아니라 군에서의 활용을 목적으로 극비리에 연구하고 있었다. 1943년 10월 28일, 미 공군에 의해 필라델피아의 해상에서 벌어졌는데 인간이 탑승한 배에 강한 자장을 걸었을 때의 효과를 측정하는 것이다. 「필라델피아 실험」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이 실험은 레이더에서 발생하는 특수 전자파를 이용하여 구축함 엘드리지 호가 적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는 목적으로 2개의 자장발생기가 사용되었다.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실험이 진행되자 녹색의 빛이 나타..

버뮤다 삼각지대 비밀의 진상(3)

youtu.be/bM-K4_BgBKc 〈실종 사건의 보고〉 버뮤다 삼각지대와 같은 호재를 영화계에서 가만둘 리 만무다. 이들 소재로 아틀란티스 대륙과 함께 연계되어 많은 영화가 제작되었지만, 삼각지대 즉 트라이앵글 만을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는 버뮤다 삼각지대가 아닌 소재로 많은 영화들이 제작되었다. 버뮤다 삼각지대만 이야기한다면 버뮤다 삼각지대에 대한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가 주제다. 2005년에 개봉된 크레그 R. 벡슬리 감독의 「트라이앵글(The Triangle, 2005)」은 전형적인 버뮤다 삼각지대의 비밀을 다루었다. ‘미국 화물선 회사는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화물선들이 자꾸 사라지자 그 의문을 풀기 위해 하워드를 비롯한 각 분야의 전문가를 모아 미스터리를 해결할 경우 엄청난 거액을 주기..

버뮤다 삼각지대의 비밀의 진상(2)

youtu.be/Ar-KynDBM_o 〈실종사고의 보고 버뮤다 삼각지대〉 버뮤다 삼각지대에서의 실종 사건이 특별한 주목을 끄는 것은 매우 가까운 지역을 항해하면서도 대부분 SOS를 발신하지 않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설령 교신하였더라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보고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조난 당할 때 제일 먼저 SOS를 보내는 것은 누구 나도 잘 아는 상식인데도 그렇지 못한 이유가 바로 미스터리의 핵심이다. SOS조차 보내지 못할 정도라면 무언가 급작스러운 사건에 휘말린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몇몇 실종 사건의 경우 최후의 통신을 보내오기도 하였지만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화물선 라이후꾸마루(來福丸) 호는 1924년 겨울, 바하마 제도와 쿠바 사이에서 행방불명될 때 매우 이상한 통신을 보냈다. '..

버뮤다 삼각지대의 비밀의 진상(1)

youtu.be/4Q3gB3ykyy8 ‘버뮤다 삼각지대’와 같이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것도 드물다. 소설이나 SF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일이 실제로 버젓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버뮤다 삼각지대를 횡단하는 선박이나 항공기가 SOS 신호조차 변변히 보내지 못하고 감쪽같이 사라진다. 더구나 이 지역은 선박과 항공기의 왕래가 세계적으로 가장 빈번한 지역이다. 내가 이 버뮤다 삼각지대를 통과할 때는 안전할까? ‘마(魔)의 삼각지대’라고 불리는 버뮤다 삼각지대는 미국의 플로리다, 버뮤다, 그리고 푸에르토리코를 연결하는 삼각형 모양의 바다를 가르킨다. 대략 북위 20도에서 40도선과 서경(西經) 55도에서 85도에 이르는 4백만 평방킬로미터의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항해 사상 가장 ..

플랫폼(4) : 플렛폼 성공요소

youtu.be/Ygc4uCro7YI 플랫폼에 근접하면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이란 말이 나온다. 크라우드소싱이란 클라우드 컴퓨팅과는 전혀 다른 말로 대중과 아웃소싱의 합성어로 대중이 참여하여 아이디어, 콘텐츠, 제품, 서비스 등을 만들어가는 프로세스를 뜻한다. 이것이 폭발적일 수 있는 것은 본업 외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가진 사람들이 여가 시간을 이용해 크라우두소싱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자신의 관심사 및 전문성에 따라 생각을 공유하고 협업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크라우드소싱이란 말은 2006년에 제프 히우 박사에 의해 소개되었다. 당시는 참여ㆍ공유ㆍ개방을 표방하는 웹2.0 시절로 정보 소비자가 정보 생산자가 되어 가는 현상이 두드러질 때이다. 이 ..

플랫폼(3) : 플렛폼 기술

youtu.be/YCFZwqaFEHA 플랫폼 주요 기술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사물에 대한 연결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지에서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되어 개발되고 운용되는데 박종현 박사는 중요 기술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① 대규모 이종 사물 간 연결 기술 인터넷은 사물의 사양, 운용정책 등에 따라 다양한 사물 연결 프로토콜을 활용하게 된다. 하부단에는 현재 가장 많이 이용되는 WiFi, ZigBee, Bluetooth, Ethernet, 3G, 4G를 거쳐 한국의 경우 5G 등의 다양한 통신 기술이 이용된다. 이러한 통신 기술 위에 응용 레벨의 통신 프로토콜 역시 다양하게 존재하며 다양한 사물 연결 기술이 연동되어 대규모 사물 연결에 맞는 분산 구조의 사물 연결 프레임워크가 작동한다. 대규모 이종..

플랫폼(2) : 플렛폼 광장

youtu.be/MG5Wg-ZnYVk 학자들은 IT 생태계에서 플랫폼을 광장으로 비유하는 것은 다양한 서비스와 콘텐츠를 제공하고, 많은 사용자가 거쳐 가며 사용자들의 취사선택에 따라 자연스럽게 좋은 콘텐츠와 서비스가 선택되고 진화하는 선순환 구조가 되는 곳이 바로 플랫폼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특히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플랫폼은 소수의 특정 사업자가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생태계의 원리에 따라 움직여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실히 한다. 컴퓨터의 운영 체제를 의미하던 플랫폼이 최근 하나의 장(場)이라는 광의의 의미로 확대된 것은 스마트 혁명의 역할이 크다. 는 말 그대로 아무나 수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전자 백과사전 플랫폼‘을 제공한다. 특히 는 새로운 지식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면서..

플랫폼(1) : 알아보기

youtu.be/Ioqu7XdyCCM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WrH-17DCY3GfHip2JJaMR3ytQGPlFqnt 4차산업혁명 일자리 www.youtube.com 제4차 산업혁명에서 빅데이터어의 중요성은 사물인터넷(IoT), 이어서 유비쿼터스 시대로 진입할 수 있는 기본 요소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제까지의 지구촌이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변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사물인터넷이란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비쿼터스는 이런 상황이 보다 세밀하게 업그레이드되어 전지구가 하나의 정보 세계로 묶여 움직인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미래를 담보하는 것이 빅데이터인데 빅데이터가 제대로 효과를 얻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어디..

아틀란티스 대륙의 전설(13)

youtu.be/enh5bSOqKBg 다행한 것은 천문학자들은 지구에 대형 소행성이 충돌할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름 10킬로미터 정도의 혜성이나 소행성은 1억 년에 한 번, 1킬로미터의 혜성이나 소행성은 100만 년에 한 번 정도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다. 실례로 1993년 목성에 21개의 혜성이 충돌했다. 핵이 분열하여 직선상에 염주처럼 길게 늘어선 기묘한 모습의 이 혜성은 겉보기 움직임이 목성과 거의 같다는 점에서 원래 하나이던 것이 목성에 접근하는 바람에 21개의 파편으로 분리된 것으로 본다. ‘슈메이커 제9혜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혜성은 1994년 7월 17일 오전 4시 57분부터 7월 22일 오후 5시까지 초속 60킬로미터라는 엄청난 속도로 목성에 충돌하였다. 충돌 ..

아틀란티스 대륙의 전설(12)

youtu.be/FcLH-QARsak 〈미노아 문명과 아틀란티스〉 에반스에 의해 발견된 크레타의 문명이 더욱 학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은 것은 미노아 문명의 유적은 플라톤이 설명한 아틀란티스라고 인정해도 될 만큼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아틀란티스 대륙이 크레타 섬이라는 프로스트의 가설은 다른 가설보다도 많은 자료와 증거가 있다. 고고학자 마리나토스는 기원전 15세기경(기원전 1477년으로 추정) 크레타에서 160킬로미터 북쪽에 위치한 산토리 섬에서 갑자기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면서 미노아 문명의 중심지인 크레타 섬이 황폐화되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마리나토스도 슐레이만처럼 플라톤이 말한 아틀란티스 대륙은 산토리 섬이 틀림없다고 단정하고 그 유적을 찾기 위해 크레타 섬 주위를 고집스..

아틀란티스 대륙의 전설(11)

youtu.be/aXgdZC4KQzI 학자들은 이들 사건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천재지변이 미노아 문명의 단초가 되었다는 시나리오는 테라섬의 화산 폭발 외에도 계속되는 크레타의 강력한 지진이 더욱 큰 치명타를 날렸다고 주장한다. 즉 여러 번의 천재지변에 의해 크레타의 지배력이 약해졌을 때 아카이아 인들이 크레타를 침입하여 점령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1450년 경 크레타에서 강력한 지진이 일어났다는 증거가 있다. 크레타의 신전 유적에서 사제와 인신 공희의 대상자로 보이는 유골이 발견되었다. 한 어린아이는 희생되기 직전으로 생각될 정도로 묶여 있었는데 사제는 건물의 파편으로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이는 사람을 신에게 바치기 위해 의식을 치루는 도중에 강력한 지진이 일어나 집전하던 사제가 현장에서 즉사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