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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14) : 신과 신전의 나라 이집트(6)

youtu.be/YBUkU29gSD4 아부심멜 신전이 현대인들 앞에 나타난 것은 2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1813년 5월 스위스인인 탐험가인 요한 루드비히 부르크하르트(요르단의 페트라를 발견)에 의하여 그 존재가 처음 보고되었다. 그는 일기에 짧은 글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네 좌의 거대한 조각상이 드러난 부분들만 눈에 띄였다. (중략) 조각상들은 언덕 비탈을 깊이 파내어 우묵한 곳에 있었다. 애석하게도 조각상들은 마치 물이 수반에 떨어지는 듯 바람에 실려 온 모래에 거의 묻혀 있다. 한 조각상은 모래 위로 머리와 가슴이 보인다. 그 곁에 있는 조각상은 머리가 없는데다 몸통이 어깨까지 모래에 덮여 있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른 두 조각상은 머리쓰개만 볼 수 있다.’ 부르크하르트가 극히 일부밖에 보..

피라미드(13) : 신과 신전의 나라 이집트(5)

youtu.be/LGyK5tjvvRc ③ 람세스 2세 신전 이집트를 방문하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집트 공항부터 카이로로 들어갈 때까지 곳곳에 있는 람세스 2세의 유물들이다. 거의 20미터나 되는 대형 조상들인데 근래에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거의 전부 진품이라는데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놀란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 전의 삼국시대 초기의 유물이 많지 않은 것에 비하면 이집트의 유물들이 왜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는 지 알 수 있다. 기자에 있는 쿠프의 대피라미드의 경우 기원전 2500여 년 전, 즉 4500년 전에 건설된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크기를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엄청난 숫자와 규모의 람세스 2세의 유물들을 생각하면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다. 람세스 2세는 제18왕조의..

피라미드(12) : 신과 신전의 나라 이집트(4)

youtu.be/KupVWmDJB6g 이집트에서 카르나크 신전이 그 어느 곳보다 중요했던 것은 파라오가 외국 원정으로 획득한 전리품과 세금 등으로 받은 막대한 국가 재산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로운 파라오가 정상적으로 파라오 역할을 하려면 아몬 신전을 반드시 장악해야 했다. 카르나크 신전을 얼핏 보면 매우 복잡하게 보인다. 그것은 여러 세기에 걸쳐 많은 파라오들을 기리는 신전 즉 기둥으로 구성된 안마당이 하나둘씩 늘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안마당이 생길 때마다 그 앞에 파일론이 세워졌는데 이는 권좌에 오른 파라오들이 자신의 신전 용도로 연이어 건설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통로도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거대한 기둥의 숫자만 해도 134개나 되는데 모두 상형문자로 장식되어 더욱 사람들을 ..

피라미드(11) : 신과 신전의 나라 이집트(3)

youtu.be/P0CIviMYXsM 이집트의 신이 700여명이나 된다는 것은 그만큼 신전이 많다는 뜻이다. 이집트야말로 신전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다. 나일 강은 매년마다 홍수가 진 후 물이 물러갈 때마다 진흙 섬을 드러냈다. 이집트 신화에 따르면 메마른 대지의 언덕이 ‘태초의 혼돈’이 가져온 홍수에서 솟아나 최초의 신 아툼이 존재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 이집트에 산재한 많은 신전들은 바로 이러한 태초의 섬을 건축물로 구현했다고 볼 수 있다. 이집트의 신전이 다른 나라의 신전과는 달리 위압감을 느끼는 것은 이집트의 건물들이 건축 계획상 본질적으로 길고 곧으며 위로 향하는 통로로 구성된 상인방식 건물이기 때문이다. 이 통로는 햇빛이 들어오는 열린 마당과 다소 어두운 내부 구조를 갖는 출..

피라미드(10) : 신과 신전의 나라 이집트(2)

youtu.be/KaO2HyAIbKs 이집트에 700여 신이 있지만 이 중에서도 주력신이 있게 마련이다. 이집트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하게 신봉된 주요 신들은 다음과 같다. ① 오시리스 이집트의 많은 신들 중 으뜸으로 나일 강을 상징하며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와 동일시된다. 오시리스는 그리스인들이 붙인 이름이며 이집트어로는 ‘아사르(Asar)’이다. 그의 별명은 ‘운 네페르(Un nefer)’인데, 아사르는 ‘눈의 위력’이라는 뜻이고 운 네페르는 ‘아름다운 사람’이란 의미다. 오시리스가 이와 같은 이름을 얻은 것은 상하 이집트의 지배자로서 곡물과 과수 재배 방법, 포도주와 맥주를 빚는 양조법, 광물 제련법, 무기를 사용하여 수렵하는 방법, 종기구로 밭을 경작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등 이집트인들이 생활할..

피라미드(9) : 신과 신전의 나라 이집트(1)

youtu.be/wGhtpvNkuSg 이집트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 가장 놀라는 것은 이집트의 신들이 매우 많다는 점이다. 각기 다른 성격을 갖고 있는 이집트의 신들은 무려 700여 명에 이른다. 이집트에 이렇게 많은 신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신들의 탄생이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집트 신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존재한다. 하나는 어떤 종족이나 지역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신들이고, 다른 하나는 파라오나 신관들이 자신들의 권위와 지배를 위해 창조 혹은 변형시킨 특수 신들이다. 이집트의 신들은 그리스 로마의 신들처럼 전지전능하지도 않고 영원불멸하지도 않다는 특징이 있다. 그들은 인간들처럼 늙고 병들고 죽으며 사랑과 증오와 분노, 기쁨의 감정에 지배받는다. 인간이나 동물, 식물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이집트의 ..

피라미드(8) : 상형문자 해득하기(3)

youtu.be/UtKGMUwT25M 수많은 당대의 천재학자들이 상형문자 해득에 투신했음에도 모두 실패하고 최후의 승자는 샹폴레옹이다. 언어 해독의 천재 샹폴레옹은 처음부터 토머스 영이 예상했던 가설을 채택하고 상형문자 해득에 들어갔다. 샹폴레옹은 탁본 복사판만을 가지고 로제타석 원문을 한 번도 본 일 없이 해독작업에 들어갔다. 샹폴레옹은 어려서부터 언어적인 면에서 천재성을 보였는데, 일설에 의하면 고대 언어의 구조를 잘 알고 있는 샹폴레옹이 탁본을 보자마자 해독에 성공했다는 설도 있다. 샹폴레옹은 그리스어로 써진 로제타석의 글이 프톨레마이오스 왕을 칭송하는 것이므로, 이집트 상형문자로 써진 글에도 ‘프톨레미마이오스’ 왕의 이름이 반드시 들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샹폴레옹은 기호들 가운데 유독 타원형으..

피라미드(7) : 상형문자 해득하기(2)

youtu.be/GcnHKKV8Aqo 1799년에 나폴레옹은 이집트에서의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리아에 출격하여 하이파를 점령하기도 했으나 풍토병 등에 의해 수많은 장병들을 잃어버리고 카이로로 돌아온다. 카이로로 돌아온 나폴레옹은 계속 재기의 기회를 엿보지만 국제 정세는 그에게 더욱 불리해질 뿐이었다. 유럽 대 프랑스 동맹 간에 선전 포고가 선언되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이 소식을 듣자 더 이상 이집트 원정은 의미가 없다고 결론짓고 본국의 승낙을 받지 않은 채 추후에 암살당하는 클레베 장군에게 뒷일을 맡긴 후 부하 400명만 데리고 1799년 8월 22일 알렉산드리아항을 출발하였다. 그리고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로 등극하였다. 여하튼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점령하기 전부터 유럽 사람들..

피라미드(6) : 상형문자 해득하기(1)

youtu.be/zuNrEqDMndY 이집트의 놀라움은 그리스나 로마가 아직 암흑시대에 있을 때, 나일 강 주변에서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문명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집트인들은 이미 기원전 3000년경에 법률을 갖고 있었고 정치도 알았다. 이집트를 방문하거나 세계의 유수 박물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더욱 놀라는 것은 돌이나 나무, 헝겊, 파피루스 등에 수많은 글자가 기록된 자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이다. 물론 이들 자료들이 길고 긴 이집트 역사 전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위대한 고대 문명이 후대에 의해 망가지고 소실된 예는 무수히 많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수많은 자료들이 파괴된 것은 64..

피라미드(5) : 고대 이집트 들여다보기(5)

youtu.be/B-ZuzBZyOno 학자들은 선사시대 이집트인들을 지중해 민족으로 추정한다. 길쭉한 두상에 달걀형의 섬세한 얼굴을 가진 호리호리한 민족이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종족적 특징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입된 민족과 혼합되면서 변해갔다고 생각된다. 넓적한 두상에 강한 뼈, 굵은 손목과 발목이라는 신체적 특징을 갖게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집트인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살았다. 이집트는 동시대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과일, 잠두콩, 제비콩, 아마 등이 풍부했고 밀, 기장 등의 곡물은 인근지역으로 수출할 수 있을 만큼 부유했다. 그런데다 이집트인들은 금⋅은⋅동 등 금속을 다루는데 매우 능하여 일찍이 고왕국 시대부터 반지, 팔찌, 귀걸이, 목걸이와 같은 금속장신구 착용을 즐겼다...

피라미드(4) : 고대 이집트 들여다보기(4)

youtu.be/lXBjtY0ygWA 기원전 1550년부터 기원전 1070년까지를 ‘신왕조’라고 부른다. 신왕국은 이집트의 전성기로 기원전 15세기경 북쪽으로는 유프라테스 강, 남쪽으로는 하르툼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의 패자로 군림했다. 17왕조의 대를 이은 제18왕조의 아흐모세는 약 20년 동안 정복전쟁을 벌여 이집트를 세계의 강자로 부상시킨다. 그를 이은 투트모세 1세는 이집트 최초의 위대한 정복자로 누비아의 제4폭포까지 진입하여 완전히 복속시켰다. 근동에서는 미탄니 왕국을 제압하고 팔레스티나와 시리아를 거쳐 유프라테스강 유역까지 진출했다. 이 당시 이집트 역사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동안 견지되던 피라미드를 건설하여 파라오를 매장하는 관습을 폐지하고 암석을 이용한 묘실을 테베 좌측에 건조하였다..

피라미드(3) : 고대 이집트 들여다보기(3)

youtu.be/qAn6XiO_SxU 제3왕조는 수도를 멤피스에 두었으므로 멤피스조라고도 부르는데 4대에 걸쳐 약 50년 계속되었다. 이집트 최초로 거대한 석조 건축인 사카라의 마스타파 즉 계단식 피라미드를 건설한 조세르가 창시자다. 제4왕조와 대피라미드는 스네루프에 의해 시작되었다. 대피라미드들이 이 기간에 건설된 것을 보면 경제적 번영과 강대한 왕권이 유지되었다고 추정하지만 당시의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제3왕조에서 제6왕조까지를 이집트에서 가장 번성하였던 피라미드 혹은 파라오 시대라고도 부르는데 유명한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 및 스핑크스도 이 시대에 건조되었다. 세계7대불가사의로 지목되는 쿠프의 대피라미드는 대체로 기원전 2550년경에 건설되었다고 추정한다. 이 시기는 전세계..

피라미드(2) : 고대 이집트 들여다보기(2)

youtu.be/fwd3w6jAzLM 지구 상의 많은 문명 중에서 특이한 이집트 문명을 탄생시킨 나일강의 이집트는 고대 이집트어로 검다는 뜻을 가진 'kem'의 여성형 명사 케메트(Kemet)이며 이후에 등장한 이집트의 콥트어로는 케머(Ⲭⲏⲙⲓ /kʰeːmə)라 부른다. 이는 이집트에서 나일강이 범람하게 되면 상류에서 기름진 토양이 쓸려내려 왔는데 이 토양의 색이 검은색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집트를 애급(埃及)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로마에서 이집트를 부르던 호칭인 ‘아이깁투스’의 한자 음차 표기다. 세계 4대 문명중 하나인 고대 이집트 문명이 나일강 연변에서 탄생한 것은 나일강이 매년 정기적으로 범람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제일 긴 강으로 알려진 나일 강은 에티오피아에서 발원하는 청나일(Blue ..

피라미드(1) : 고대 이집트 들여다보기(1)

youtu.be/R2NFMh3ZOmA 기원전 225년 경에 작성한 필론은 『세계7대불가사의』의 목록을 열거하면서 피라미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멤피스의 피라미드는 인간의 힘을 초월하여 건설한 것이므로 그들에 대한 설명도 상상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산 위에 쌓여진 산으로서 그곳에 놓여진 돌들을 멀리서 운반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제일 먼저 어떤 거중기를 사용하여 그 높은 곳까지 돌들을 옮겼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중략) 정상까지 올라가는데는 하루가 꼬박 걸리며 정상에서 아래를 바라다보면 마치 발 아래를 보는 것과 같다. 왕국의 힘은 이러한 놀라운 작품을 조화롭게 건설할 수 있을 만큼 튼튼했다. 그렇게도 엄청난 경비를 지출하면서 인간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피라..

네안데르탈인(67) : 나도 네안데르탈인(9)

youtu.be/tXaCvMWT0aI 그동안 한마디로 야만적이고 으르렁 거리는 하위 인간으로 묘사되었던 네안데르탈인이 현재 현대 인간과 같거나 비슷한 수준의 지능을 가졌으며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도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현재까지 도출된 자료를 주제별로 설명하면서, 그동안 ‘한국인과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한다. 앞에서 설명된 내용도 다소 있음은 물론이다. 참고적으로 이곳에서 설명되는 연대나 서술은 고고학을 다루는 정보이므로 앞으로 수많은 변동요인이 있음을 감안하기 바란다. ① 네안데르탈인 사용한 도구 2010년대 만해도 고고학계에서의 지배적인 믿음은 네안데르탈인이 예리한 돌과 같은 매우 단순한 도구만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래의 고고학적 증거는 이를 완전히 부정한다. 프랑스의 론 ..

네안데르탈인(66) : 나도 네안데르탈인(8)

youtu.be/CaIE8q1WQFE 진화론의 견지에서 볼 때 같은 종 안에서도 생식적 격리를 통해 독특한 신체적 형질이 발달한다. 호미니드가 다른 영장류들로부터 생식적으로 격리된 후 수백만 년이 흐르자 호미니드와 영장류 사이의 차이는 지리적 격리에 의해 더 크게 벌어진다. 여하튼 호미니드는 독특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서서히 현생인류로 변화했다. 인간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에 근거한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작은 규모의 호모에렉투스 집단이 지구상의 여러 곳으로 제각기 이동했고 다른 집단과 격리된 채 생존을 위해 호락호락하지 않은 환경과 싸우며 현생 인류를 향해 진화해 갔다. 그러나 그러한 격리 기간은 종 분화를 일으킬 만큼 다시 말해 다른 종이 갈라져 나올만큼 길지는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인..

네안데르탈인(65) : 나도 네안데르탈인(7)

youtu.be/shMYcp9Nk5M 파올로 빌라 박사의 발표를 다른 각도로 생각하면 곧바로 이해된다. 인간과 침팬지 등 몇몇 영장류는 매우 유사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데 인간과 챔팬지는 약 98%, 오랑우탄과는 97%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 별종이 아니라면 이들보다 더 많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이 유전적으로 99.84% 동일하다는데 충격을 받을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말은 그동안 세계의 수많은 학자들이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에 대한 차이점을 찾기 위해 그렇게도 노력했지만 근본 가설 자체가 원천적으로 틀렸기 때문에 엉뚱한 길을 헤매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파올로 빌라 박사가 당당하게 이와 같이 폭탄 선언을 할..

네안데르탈인(64) : 나도 네안데르탈인(6)

youtu.be/LoUl3gW94FY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하고 크로마뇽인은 살아남았다는 질문에 대해 앞에서 여러 각도로 이유를 설명했는데 한국인들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발표에 놀라는 사람들을 위해 그동안 앞에서 설명된 내역을 포함하여 제시된 가설을 부연하여 설명한다. 가장 먼저 제기된 것은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간의 전쟁으로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자들은 두 종이 혼잡하였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경쟁이 커다란 원인의 하나였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만 적어도 두 호미닌 종이 전투 등의 직접적인 경쟁으로 한 쪽이 전멸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당대에는 한 명이라도 귀하므로 전쟁이란 생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둘째는 현생 인류 즉 크로마뇽인과는 달리 네안데르탈인에..

네안데르탈인(63) : 나도 네안데르탈인(5)

youtu.be/iWo3fcpv3fc 우리의 선조에 관한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이를 말끔하게 설명하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현장을 일일이 확인하면 간단하지만 타임머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로 이를 재구성해보는 것이 최선인데 그동안 이를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했다. 우리 현생인류가 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호모에렉투스가 약 100여 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난 후 약 20만 년 전에 다시 아프리카이브가 아프리카를 떠나 그동안 지구 각지에 퍼져있던 선조들을 대체하여 현생인류가 되었다는 아프리카이브설이다. 둘째는 호모에렉투스가 떠난 것은 사실인데 이들이 각지역에 분포되어 각지의 특성을 계속 유지하면서 발전..

네안데르탈인(62) : 나도 네안데르탈인(4)

youtu.be/i8LHG_ogTKc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원시 도구들의 정체도 혼동을 주었다.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도구들은 자르거나 긁는 용도의 단순한 것들뿐이다. 두개골과 함께 발견된 다른 화석과 도구들도 기존 학설을 뒤집을 만큼 많은 의문을 제기하자 ‘땅 속에 다시 묻어버려야겠다’는 학자의 말도 있을 정도로 고인류학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동안 학자들은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호모 에렉투스가 손도끼처럼 정교한 석기들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대륙을 건널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또한 손도끼로 짐승을 잡고 고기를 손질해 이동에 필요한 에너지원을 섭취했고 이 과정에서 두뇌와 키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들 화석의 발견으로 인류 진화사 전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믿어왔던 가설이 모두 엉망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