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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 창덕궁(3)

https://youtu.be/G2nCFbM2ouA ② 금천교(錦川橋) 금천교는 창덕궁의 돈화문과 진선문(進善門) 사이를 지나가는 명당수(明堂水)위에 설치되어 있다. 창덕궁의 명당수, 즉 금천(禁川)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려 돈화문 오른에서 궁궐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이 어구(御溝)물가에는 화강석 6〜7단으로 축대를 쌓아 여기에 금천교를 설치했다. 황기영 박사는 조선왕궁에는 북쪽인 현무(玄武)에서 발원하여 외당을 회유하면 극히 길하다는 개울을 금천(禁川)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궁궐의 안과 밖을 구별하는 의미와 배산임수의 뜻을 살리기 위한 명당수의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므로 금천과 어도가 만나는 지점에 다리가 놓이는 것이 기본으로 이런 다리를 일반적으로 금천교(錦川橋)라고 한다. 태종 11년(1..

유네스코 세계유산 : 창덕궁(2)

https://youtu.be/hDKc-gq6628 선조가 정궁인 경복궁 대신에 창덕궁을 먼저 재건한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조선왕조 초기부터 제기된 길지설(吉地說)이다. 왕자의 난 등이 일어난 경복궁은 불길한 곳이라는 인식이 종종 제기되었고 특히 세종 조에는 경복궁에 대한 신료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표출되기도 했다. 둘째는 임진왜란으로 피폐한 상황에서 경복궁보다 규모가 작은 창덕궁 일대를 복구하는 것이 민력의 소모를 줄일 수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에서라는 것이다.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중건은 워낙 큰 역사이므로 계속 미루어지다가 결국 대원군이 중건을 시작한다. 그동안의 조선왕조의 상당 부분이 사실상 창덕궁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여하튼 창덕궁은 계속 수난을 당하는데 인조반정(16..

유네스코 세계유산 : 창덕궁(1)

https://youtu.be/B1NU7C9Qxxo 한국과 중국, 일본을 모두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세 나라의 궁궐 중에서 어느 나라 건물들이 가장 아름다우냐고 질문하면 단연코 한국의 궁궐이 가장 아름답다고 대답한다. 기다랗게 늘어져 버선코 마냥 날아갈 듯 오른 추녀선이며 아름다운 색으로 칠해진 단청을 보면 한국인들의 심미안이 놀랍다고 칭찬을 주저하지 않는다. 한국의 건축물이 다른 나라 목조 건축물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한국의 자연적인 풍토와 잘 어우러지는 형태를 찾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으뜸으로 든다. 건물의 배치에 있어서도 굳이 자연적인 지형을 깎거나 변형시키지 않았으며 나무나 돌도 자연을 그대로 이용했다. 건축물 재료조차 자연을 변형시키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한국 건..

킹스맨, 라스푸틴 복권(3)

https://youtu.be/Mk0gGXINE14 라스푸틴이 혈우병을 갖고 태어난 러시아 제국의 황태자 알렉세이의 내출혈을 어떻게 치유했는가는 수수께끼 중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라스푸틴의 전설 전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사건 중 하나인데 일부 학자들은 라스푸틴이 최면술을 걸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최면술이 혈우병과 같은 유전병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놀라운 것은 황태자의 혈우병이 완전히 치료된 행적을 보인다는 점이다. 정말 황태자의 혈우병이 치료되었는지 논란의 대상이지만 학자들은 라스푸틴이 장기간 순례기간 중 혈액응고 효과가 있는 약초를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라스푸틴이 티베트 치료사인 바드마이에프(Badmaiev)라는 사람과 어울렸다..

킹스맨, 라스푸틴 복권(2)

https://youtu.be/Mk0gGXINE14 라스푸틴은 스스로를 동방 교회의 교리 강사로 뜻하는 스타레츠(starets) 또는 ‘거룩한 사람(holy man)'이라고 칭했다. 그가 강조하는 죄를 통한 구원이라 하는 것은 여자와 남자가 자유롭게 섹스를 해야 하며 육체의 죄는 신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최면술에도 능해 여자들에게 자신의 유혹에 저항하지 말고 굴복할 것이며 자신을 유혹의 수단이자 죄악으로 미끄러지게 하는 매개자로 사용하라고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1902년경 볼가 강가에 있는 카잔 시에서 성직자는 아니지만 경건한 신도로 명성을 얻었다. 말끔하고 주변 좋은 언변과 최면술을 겸한 신비한 능력은 그를 만나는 여자들마다 반하게 만들었는데 이것이 그를 슈퍼스타로 만들었다. 그의 ..

킹스맨, 라스푸틴 복권(1)

https://youtu.be/Mk0gGXINE14 세계사가 상식적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20세기 초까지 세계 최강국 중 하나인 러시아제국이 허망하게 멸망하고 공산국가가 되는 데에는 요승이라고 불리는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Grigory Efimovich Rasputin, 1869〜1916)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원래 떠돌이 수도사인데 황제 니콜라이2세의 아들인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 황태자의 병을 호전시킨 일로 황후의 탄탄한 신임을 얻은 후부터 국정을 제멋대로 휘둘러 결국 제정러시아가 몰락하였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내용을 토대로 만든 영화가 할리우드 마블사에서 2021년 말 공개하여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한 「킹스맨」시리즈 3편 「킹스맨 : 퍼스트 ..

친일파 을사오적 (4)

https://youtu.be/AdqrFOQ5GRM 을사오적의 중요성은 한국인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외국에 나라를 팔아먹은 적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사에서 왕조가 바뀌는 많은 격변이 일어났지만 그것은 정권교체 차원이었다. 그런데 을사오적은 조선을 일본에 팔아먹는 당사자들로 이들이 일본에 헌상한 을사조약은 조선과 일본 간에 공식적으로 처리된 공식 문서라는 점이다. 이 서류의 심각성은 국제사회가 일제의 조선 지배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단초를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엄밀하게 보면 조선이 일본에게 국가를 선위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조선인들이 일본의 통치를 서류로 확인해주었으므로 일본이 조선을 마음대로 해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이덕일 박사는 우리나라 역사를 읽으면 하나같이 망하는 순간 비장미가 없다고 ..

친일파 을사오적 (3)

https://youtu.be/iXe5UoPDROE 〈권중현(1854~1934)〉 충청북도 영동에서 1854년에 태어난 권중현(1854~1934)은 일찍부터 일본어를 습득하여 개화파 중에서도 일본통으로 주목을 받았다. 1883년에 부산감리서 서기관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1888년에는 조정의 명을 받고 일본을 방문하여 각종 문물을 시찰하고 귀국했다. 1891년 인천항 방판통상사무를 지냈고 주일공사로 동경 재임 중 1892년 6월에 오스트리아와 수호통상 조약을 체결하였고 1894년 갑오개혁기에 군부협판으로 승진했으며 1897년 고종이 황제로 즉위해야 한다고 건의하여 그 공로로 정2품에 올랐다. 1899년에는 법무와 농상공부대신을 겸임했고 1904년에는 육군부장으로 당시 러일전쟁중인 일본군의 위문사가 되어 ..

친일파 을사오적 (2)

https://youtu.be/mf4l-dRXlkQ 〈이완용(1858~1926)〉 을사오적은 이완용(1858~1926), 박제순, 권중현, 이지용, 이근택이지만 이중에서 괴수는 당연히 이완용이다. 합방 당시 내각 총리대신으로 한‧일 외교사의 중심이 된 이완용은 원래 미국통에서 친러파로 변했다가 친일파로 변질된 대표적인 매국노로 거론된다. 이완용은 1858년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에서 이호석과 신씨 사이에서 태어나 1882년 병과로 급제했다. 이후 규장각 대교 검교, 우영군사마, 해방영군사마 등을 거쳐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배운 후 1887년에 주차미국참찬관이 되어 미국에 갔다가 이듬해에 귀국하여 이조참의를 지냈고 우부승지, 내무참의, 외무협판 등을 거쳐 1895년에 학부대신이 되었다. 아관파천(1896) 당..

친일파 을사오적(1)

https://youtu.be/u6RIQIUCd0Q 일제강점기(1910~1945)를 거쳐 해방된 이후 한국 정치사를 거론 할 때마다 지적되는 것은 친일파란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가이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정확한 규정을 내리려면 더 많은 연구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은 친일파란 ‘일본제국주의에 의식적으로 협력한 자의 총칭이라고 명백하게 규정했다. 한편 민족반역자는 이 친일파 중에서도 극악한 부분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친일파라는 말 대신에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 반민족행위자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도 말하기도 한다.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자 유럽은 뉘른베르크에서 나치전범들을 재판했고 프랑스의 드골장군은 나치협력자들을 철저하게 숙청하여 나치즘의 잔..

피라미드(104) : 피라미드 맺음말

https://youtu.be/_yCYK59xBEU 끄새는 세계7대 불가사의인 대피라미드 건설, 대피라미드의 보물, 피라미드 과학은 물론 ‘파라오의 저주’ 등에 대해 103장에 걸쳐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도 고대 이집트에 대한 의문점이 수없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많은 연구에 의해 보다 충실하게 우리들에게 전해줄 것이다. 그러나 장구한 이집트 역사를 다루려면 몇 가지 장애물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고대이집트를 자신의 입맛에 맞는 내용으로 변용시키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여 대피라미드를 외계인이 건설했다는 것은 논외로 치지만 이집트의 실상을 완전히 오도하면서 고대이집트를 막무가내로 자신의 입맛에 맞는 내용으로 변용시키는 것이다. 가장 단적으로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물론 ..

피라미드(103) : 파라오의 저주(14)

https://youtu.be/WsMG7PGX0N8 카이로의 기자에 있는 미이라의 무덤 중에서 2000년 동안 단 한 번도 외부와의 접촉이 없었던 석관이 발견되었다. 영국 만체스터대학교의 밀러 박사 팀이 이에 도전했다. 연구 내용은 간단하다. 석관 속에 있는 미라에 생존해 있을 곰팡이가 유독물질을 품고 있느냐인데 연구원들의 기대대로 미라에 있는 곰팡이가 포름알데하이드와 같은 유독물질을 함유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포름알데하이드는 냄새가 자극적이고 물에 잘 녹는다. 이것을 물에 녹인 용액이 유명한 포르말린이다. 소독이나 방부제로 사용하는데 해부학 실습실에서 특히 악명 높은 물질로 매운 음식에도 이 성분이 들어간다. 메탄올을 잘못 마셨을 때, 실명이나 사망을 일으키는 것도 이 포름알데하이드 때문이다. 특히 포..

피라미드(102) : 파라오의 저주(13)

https://youtu.be/dtpEIEcvTec 2005년에 실시된 CT촬영은 그동안 제기되었던 상당수의 의문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1968년 전에 실시되었던 X선 측정에 의해 투탕카문의 사망 원인은 세 가지로 압축되고 있었다. ① 사냥 등 마차를 타다가 낙상으로 인한 사고 ② 전투 중의 부상 ③ 살해. 세 가지 중에서도 학자들이 가장 관심을 기우린 것은 ③ 번째의 살해로 인한 사망이다. 여러 가지 정황을 보면 19살의 어린나이로 사망한 투탕카문의 사망이 살해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방대한 자료를 세밀하게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특이점들을 발견했다. 우선 투탕카문의 두개골 아래쪽에 뼈가 없는 원형 구멍을 하나 아미드 박사가 발견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흉기에 의해 가격 ..

피라미드(101) : 파라오의 저주(12)

https://youtu.be/JLVs1Akk65g 파라오의 저주가 세계에서 가장 흥미있는 미스터리로 부각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투탕카문의 일생이 다소 극적이기 때문이다. 투탕카문의 어린 시절은 수수께끼에 둘러싸여 있지만 앞에서 설명한 것을 간략하게 정리한다. 투탕카문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키야는 아케나톤의 제2왕비로 1959년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발견될 때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아케나톤과 6명의 아이를 낳은 네페르티티가 있기 때문이다. 키야의 출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아멘호테프 3세에게 시집왔던 미탄니 왕 투스라타의 딸이라는 추정도 있다. 이는 아케나톤의 제2왕비임에도 ‘위대한 파라오의 부인’이라는 칭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집트 태생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

피라미드(100) : 파라오의 저주(11)

https://youtu.be/Oil6orrHw5s 파라오의 저주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1966년 투탕카문의 무덤에서 나온 유물을 관리하던 아브라함은 유물의 전시회 문제로 카이로에서 정부 관리들과 회의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의문의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였다. 1969년, 투탕카문의 무덤 발굴대원 중에서 유일한 생존자였던 아담슨이 영국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여 “나는 한순간도 파라오의 저주라는 터무니없는 전설을 믿어본 적이 없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그는 출연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교통사고로 간신히 목숨만 건졌다. 또한 그 사고 이후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그의 부인이 죽었고 아들도 등뼈를 다쳤다. 그후 그는 “지금까지 나는 우리 가정에 닥친 모든 불행이 파라오의 저주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피라미드(99) : 파라오의 저주(10)

https://youtu.be/mC_N7fWrwQc 정작 투탕카문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호화로운 유물도 유물이지만, 발굴에 관계된 사람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소위 ‘파라오의 저주’라는 전설 때문이었다. 이집트 파라오의 관에는 일반적으로 ‘왕의 영원한 안식을 방해하는 자에게 벌이 내릴 것이다’라는 저주의 글이 쓰여 있다. 이것이 이른바 파라오의 저주로 비약된 배경이다. 카터가 묘소 입구에서 돌을 주웠는데 이 돌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었다고 알려진다. ‘나의 집을 향하여 쳐든 손은 말라서 비틀어질지어다. 나의 이름, 나의 주춧돌, 나의 모습, 나의 상(像)에 손을 대는 자들은 파멸의 운명에 떨어질 지어다’ 또 다른 상형문자로 된 점토판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죽음은 그 날..

피라미드(98) : 파라오의 저주(9)

https://youtu.be/5RpOS5otqxI 앙크에스엔아멘이 강력하게 평민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역사는 그녀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결론은 아이와 앙크에스엔아멘은 결혼하고 아이가 파라오가 된 것이다. 이들 결혼이 기록에 없으므로 정황으로만 설명되는 상황에, 1930년 이집트 학자인 뉴베리 교수가 그야말로 놀라운 발표를 했다. 그가 카이로에 있는 골동품 상점에서 반지를 발견했는데 여기에 아이와 앙크에스엔아멘의 이름이 카르투슈 안에 있다는 것이다. 파라오에 한하여 카르튜수 안에 이름을 상형문자로 적었다. 이는 아이와 앙크에스엔아멘이 결혼했고 아이가 이집트의 파라오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뉴베리 교수는 자신의 발견을 하워드 카터에게 편지로 전했다. 카터가 아이의 무덤을 방문했는지 또한 앙크..

피라미드(97) : 파라오의 저주(8)

https://youtu.be/CiST62pYw7o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암살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므로 투탕카문의 살해는 상당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투탕카문이 파라오가 되었을 당시는 정통 이집트인들로 볼 때 아케나톤이 이집트를 17년이나 엉망으로 만든 후다. 때문에 전 이집트 사람들이 강력한 군주의 등극을 열망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아케나톤의 후계자였던 세멘크카레(재위 기원전 1334~1333년)가 즉위 후 곧장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겨우 10세의 투탕카문이 파라오에 오른 것이다. 소년왕 투탕카문에게 거는 이집트인들의 기대는 컸다. 그 기대가 얼마큼인지는 카르낙의 돌기둥에 적힌 그의 선포로도 잘 알 수 있다. ‘폐하께서 왕위에 오를 즈음, 신들과 여신들을 모신 신전들은 황폐해졌고. (중략) 이..

피라미드(96) : 파라오의 저주(7)

https://youtu.be/nOqogzq96gM 투탕카문이 살해되었느냐 아니냐가 상당한 관심을 끌었는데 이는 이집트 역사에서 실제로 파라오의 살해가 벌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철저한 위계에 의해 움직이는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살해라는 말은 매우 어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이집트에서 파라오는 신들에 의해 권능을 부여받은 반신(半神)과도 같은 존재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백성은 그를 신으로 생각했고 파라오는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절대 권력으로 백성을 다스렸다. 이집트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파라오가 필요했다. 그러므로 유일무이한 존재인 파라오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지위를 누렸으며 700여 신으로부터 보호받았다. 파라오의 백성들은 그런 존엄한 존재에 감히 도전한다는 생각을 꿈에서도 ..

피라미드(95) : 파라오의 저주(6)

https://youtu.be/N5ZGAYpVNCY ⑥ 옥좌 옥좌는 상단부에서 하단부까지 모두 금으로 덮였고 유리와 도자기, 보석으로 상감 장식을 했다. 옥좌의 다리는 고양이과 동물의 다리 모습이며 다리 맨 위는 사자머리 모양으로 장식했다. 팔걸이는 화려한 관을 쓰고 날개가 달린 독사의 형태다. 옥좌의 뒤판을 지지해주는 세로대 사이에는 나무에 조각을 하고 금박을 입혔으며, 보석으로 상감 장식한 여섯 마리의 코브라 수호신들이 있는데 모두 머리에 태양 원반을 이고 있다. 옥좌의 장식널에는 왕이 한 팔을 등받이에 아무렇게나 걸친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그 앞에는 앳된 모습을 한 왕비가 서서 왕의 몸단장을 마무리해주고 있다. 장식널의 배경을 이루는 옥좌의 다른 뒷면은 금판으로 덮여있다. 카터는 ..